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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연어 Jul 11. 2020

(일상) 1인 기업의 하루

< 일 년이 한 달처럼, 한 달이 하루같이 >



아침에 눈을 뜨니 고객사에 주기로 한 견적이 먼저 떠오른다 


A건설 김 과장이 며칠 전 보낸 견적서의 내고가를 요청해온 참이다. 단가가 높은 장비다 보니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처음 준 견적도 나름 신경 쓴 금액인데 과장의 상사까지 한번 더 전화해서 오늘 중으로 최종 금액을 달라고 한다. 무언의 압박을 받으니 신경이 쓰인다. 결론은 팔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고객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격을 줘야 한다. 얼마가 최적의 단가일까?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는다. 일어난 지 얼마 안돼 식탐이 나진 않다. 그래도 매번 밥을 챙겨주니 고마운 일이다. 식사를 하는 동안 아이들 학교생활, 일, 집안 이야기 등을 압축해서 대화를 나눈다. 그래도 하루 동안 집안 돌아가는 이야기는 이 시간에 제일 많이 하는 것 같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지하철을 탄다. 직장인들처럼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게 아니라서 마음은 편하다. 그러나 가는 시간, 오는 시간은 대체적으로 일정하다. 17년 동안 이어온 루틴이다. 집은 강서 쪽이고 사무실은 강동 쪽이라 서울 안에서도 이동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 차로 다니자니 막히고 기름값도 부담스러워 가능한 지하철을 이용한다. 가는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이 시간엔 주로 책을 읽는다. 어느 역을 지나는지도 모르게 빠져들다가 스마트폰 벨소리에 놀라 책을 덮는다. K시스템에 박 대리가 오전 중에 컴퓨터를 보내달라고 한다. 직원에게 준비해서 오전에 다녀오라고 카톡을 보낸다. 연이어 거래처 담당들의 전화가 울린다. 아무래도 오늘 독서는 이대로 끝을 내야 될 참이다. 





아침에 늘 하던 데로 장유산균 음료를 사 마신다
6개월 이상 복용했더니 속이 한결 편안해졌다 


사무실로 들어와 컴퓨터를 겨니 여기저기 메일이 들어와 있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기억력에 의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루 동안 할 일을 우선 순위데로 노트에 적는다. 그래도 당장 급하게 처리할 일들이 열 가지는 된다. 일단 발주가 난 3건의 구매를 먼저 하기로 했다. 매입처에 발주서를 보낸다. 이번에는 주문 수량이 많아서 납품단가를 낮춰달라고 했더니 총판 담당자가 고맙게도 3%나 DC를 더 해줬다. 마진이 늘어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매입처 주문을 끝내고는 오픈마켓에서 주문해야 할 자재들을 사기 위해 가격비교 사이트를 들어간다. 모델명을 치니 판매처 정보가 쭉 올라온다. 그중에 가장 조건이 좋은 업체에 재고 확인을 하고 남은 주문을 완료한다. 고객사에 빠르게 납품하기 위해선 매입도 서둘러서 해놔야 한다. 정기적으로 나가는 제품들은 미리 재고를 확보하고 그때그때 내보내고 있다. 


매입은 끝냈으니 이제 밀린 견적을 줄 차례다. 아침에 깨자마자 생각났던 A건설의 견적단가는 이미 지하철 안에서 정해놨다. 경험적으로 구매 확률이 가장 높은 마진율의 단가를 택했다. 견적을 줄 때는 고객이 사던 안 사던 마음속에 미련이 남아선 안된다. 견적가가 높아서 고객사가 타업체로 구매를 돌릴 때는 마음이 쓰리다. 그런데 미련 없이 준 가격에 대해서 할 만큼 했기에 속이 후련하다. 그다음 일은 하늘의 뜻대로(?) 간다고 스스로에게 위안한다. H대학교에서 서버 견적 의뢰가 들어왔다. 서버는 아다르고 어다른 대표적 품목이라 신중을 기해서 견적을 작성해야 한다. 서버 안에 부품 하나라도 견적에 오차가 생기면 크게 벌 것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일이 생긴다. 초창기에는 경험이 부족해서 이런 일이 몇 차례 발생했다. 마진이 좋다고 신나했다가 납품 시 스펙에 착오가 생겨서 다시 맞추느라 웃다가 울었다. 어쨌든 오늘 안에 서너 건에 견적을 작성해서 보내야만 한다. 금방 작성되는 견적도 있지만 제조사에 의뢰해야 하는 품목은 시간이 걸린다. 고객사 담당이 급하다고 하니 따라서 마음이 급해진다.


사무실에 다른 직원에게 MRO사이트를 통해 발주 난 제품을 납품하도록 지시한다. 택배로 보내는 것들도 있지만 MRO사이트의 물류센터로 직납 해야 되는 품목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몰아서 납품을 한다. 오늘이 그 날이다.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도 받아가면서 업무를 하다 보니 오전이 훌쩍 간다. 한 시간 지난 듯 반나절이 흘러간다. 직원들이 복귀하면 12시가 좀 넘을 듯하다. 더운 날씨 탓에 입맛도 없는데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이 앞선다. 아무래도 시원한 콩국수가 좋을 듯 싶다. 


오후엔 부가세 정리를 하기로 했다. 이제 곧 신고기간이라 미리미리 준비해놓지 않으면 막판에 급해지기 때문에 준비를 해놔야 한다. 예전엔 미루고 미루다 한 번에 하려고 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요즘은 실시간으로 매입 매출장을 기입하기 때문에 일이 많지는 않다. 국세청 홈텍스도 전산이 잘 돼있어서 일하기는 쉬어졌다. 그래도 세무 정리만큼은 꼼꼼히 해야 한다. 앞으로 벌고 뒤로 세는 일은 없어야 한다. 17년 동안 쌓인 자료만 해도 사무실에 한자리를 차지한다. 지나온 시절의 유물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업자는 폐업할 때 자료를 남기려나. 



B전자에 방 부장이 전화가 왔다


급하게 미팅을 하자고 한다. 오늘 바로 들어올 수 있냐고 묻는다. 구매 관련으로 의논할 게 있다는 고객사의 요청인데 안될 이유가 없다. 다른 일보다 우선해서 가야 한다. B전자는 지금 나에게 가장 우수한 고객사다. 매출의 절반을 B전자가 하는 것 같다. VIP인 셈이다. 어디든 불러만 주면 고마울 따름이다. 아무래도 부가세 정리가 하루 밀릴 듯하다. 방 부장은 일에 대해서 철저한 사람이다. 올해는 본인의 회사가 계약한 프로젝트가 많으니 서포트에 더욱 신경써주기를 요청해온다. 말 안 해도 당연한 이야기다. 난 준비가 되어있다. 많이만 불러주시라. 


복귀하는 길에도 여전히 벨이 울린다. 지난번 나간 장비가 안된다고 한다. 뭐가 안된다고 하면 일단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이럴 때 빠르게 처리해주면 고객사 담당의 신뢰는 높아진다. 직원에게 바로 제품 수거 및 AS를 하도록 전달한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벌써 오후도 기울어져 어느덧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나갔던 직원도 복귀하고 또 하루가 마무리되어 간다. 때로는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겠지만 이 삶을 선택한 이는 나다. 이런 라이프스타일에 후회는 없다. 




지인을 만나다


사당역에서 후배를 만났다. 맥주 두세 병이면 족하다. 

지금은 직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1인 기업으로 출발한 회사라 얘기를 나눌 동료가 많지 않다. 철저히 혼자인 1인 기업가는 자기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것이 수다를 떠는 일이라도 좋다. 감정의 해소가 될만한 꺼리를 찾아야 하다. 오늘도 후배와 일 얘기, 요즘 트렌드, 온갖 알쓸신잡한 수다를 떨다 보니 업무적으로 쌓인 스트레스가 풀려나간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때로는 운동과 같은 효과를 준다. 


2차로 아메리카노 한잔을 더하며 아쉬운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오늘의 일과를 마친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간다. 변함없이 편안한 나의 전용차, 지하철이 있어서 좋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시키고 핸드폰을 꺼내 유튜브를 본다. 저녁에는 피곤하니까 지하철에서 책 보다 직관적인 유튜브를 보게 된다. 몇 가지 영상을 보다 보니 벌써 내릴 때다. 집에 들어가니 아이들과 아내가 반긴다.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았다. 


일 년을 한 달같이, 한 달을 하루처럼



일 년이 한 달처럼, 한 달이 하루같이

일 년이 한 달처럼, 한 달이 하루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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