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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연어 Oct 21. 2022

 글쓰기에 물드는 시간

(50대, 인생을 바꾸는 100일 글쓰기)


글쓰기를 하루 멈췄다

그 느낌이 어떤지 알고 싶었다. 더불어 지금 글쓰기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했다. 애초에 백일 글쓰기의 목표는 '의미' 보다는 '쓰기'였다. 그런데 글쓰기가 기술서를 쓰는 게 아니다 보니 감정이 배제되지 않는다. 일기라면 그 어떤 끄적임도 혼자만의 유희로 남지만 같이 쓰다 보니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적으면서 글 한자에 힘을 싣고 문맥에 집착하고, 써놓은 글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이런 기분이 약간은 당혹스럽다. 강제적인 백일 쓰기 훈련을 통해 습관만 들이려 했던 나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다. 메모나 일기가 나와의 대화라면 요즘의 글쓰기는 타인과의 대화다.


글이란 게 희한해서 읽거나 쓰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단어가 가진 의미와 조합은 사람의 감정을 손쉽게 공략한다. 말은 흘러가고 잊혀지지만, 글은 흘러가지도 잊혀지지도 않는다. 매번 다른 얼굴로 다가와서 다른 색깔의 파동을 일으킨다. 내가 글쓰기 프로가 아니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남에게 보여주는 글을 써보지 못했기에 감정을 절제하는 글쓰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감정을 누르는 글쓰기가 꼭 합당한 건지는 모르겠다. 어디서 어떤 글을 쓰느냐에 달린 듯하다. 


목표를 과하게 잡은 느낌이다

글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걸 나도 모르게 높게 잡은 건 아닌지 스스로 묻게 된다. 무얼 얻고자 글을 쓰는 걸까? 당장에 작가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유명해지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를 만나기 위해서 시작한 글쓰기다. 체력단련처럼 글의 단련을 위한 선택이었다. 밥을 먹는데 의미를 두진 않는다(밥은 최고의 의미인가?) 글도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글을 쓰는데 의미를 앞에 두니 뒤 따라가기가 버거워진다. 일단 가볍게 가보는 게 좋겠다. 자기 검열보단 지금은 자유로운 글쓰기가 우선이다. 완성품의 품질까지 따지기엔 아직 이르다. 먼저 써놓고 볼일이다. 아직 이 여정의 삼분의 이가 남았으니 계속해서 글의 생산이 필요하다. 거기에 초점을 맞추니 다소 글쓰기에 부담이 덜어진다.



어쨌든 쓴다

꾸준히 써보려고 도전한 백일 글쓰기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확실히 다르다. 수다는 뇌의 특별한 공정 없이 뽑아낼 수 있는데 글쓰기는 글감과 말을 풀어내는 설계과정을 거쳐야 한다. 글이란 게 때론 물 흐르듯 써지다가도 때론 삶은 고구마를 먹는 것 같다. 왜 써야 하는지 해답을 아는 문제에 다시 의문이 든다. 생각을 정리하고 사고의 흐름을 조절하는데 글쓰기는 탁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안 쓴다고 불행해지거나 삶이 비루 해지는 것도 아니다. 혹시나 고급진 삶을 위해 괜한 치장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글 쓰는 한 달 동안 독서를 못했다. 글만 쓰기도 버겁다고 말하기엔 장문의 글을 쓴 적도 없고 통찰이 넘치는 글을 써본 적도 없다. 짤막한 글만 끄적이고 있는 중이다. 다만 지난 한 달이 유독 바빠서 이래저래 쓸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만들고 있다(더 이상 이 핑계도 대기 힘들지만)


다이어트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자기와의 혹독한 싸움을 이겨내야 비로소 멋진 몸매와 젊어진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글쓰기도 다이어트와 같아서 고통이 수반된다. 사고의 조각들을 모아서 짜집고 흘러 보내고 마무리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헉헉거리며 어떻게든 따라가다 보니 작은 변화들이 생긴다. 말하는 동시에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전에보다 이야기도 논리적인 흐름을 타는 것 같은데 이래서 글을 쓰는 걸까?(뇌피셜 돌리는 중)


백일이 지나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운동을 배울 때면 지겹도록 듣는 말이 힘 빼란 얘기다. 글도 힘을 빼야 하는데 아직 서툴러서 힘이 들어간다. 잽을 날려야 할 상황에 계속 어퍼컷만 날리는 형국이다. 가볍게 치고 나가야 하는데 버퍼가 걸린다. 안 써본 티가 난다. 그래도 이렇게 붙잡고 있는 걸 보니 신기하다. 일단은 아무 글이나 내놓고 봐야겠다. 밭에 뭐라도 뿌려놔야 거둘 일도 생길 테니 말이다.


언젠가 글 쓰는 하루가 일상이 되는 날을 기대한다면 지금은 글의 곳간을 채워야 할 시간인 것 같다. 

천고마비의 계절이 있다면 지금은 글쓰기에 물드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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