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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연어 Oct 21. 2022

서울 네안데르탈인의 1,685대 손

(50대, 인생을 바꾸는 100일 글쓰기)


사피엔스들은 우리가 절멸한 줄 안다 

삼만 년 전에 우리를 완전히 지구에서 몰아냈다고 희희낙락했다. 우리 조상들은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쫓겨 아시아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겨우 오만 년 전에 일이다. 다행히 몸을 건사한 선조들은 유럽으로(특히 독일의 네안데르 계곡 일대로) 피신해서 기나긴 은둔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만 년을 더 숨죽여 지내다 대륙에서 완전히 거세됐다. 하지만 나의 직계 조상은 달랐다. 그들은 아시아, 지금의 한국에 남아 다른 방법을 찾았다. 사피엔스 흉내를 내고 그들처럼 행동했다. 겉으로 봐선 구별이 안 되는 지점까지 우리를 진화로 이끌었다. 그건 선조들이 후손을 지키기 위한 다윈의 '종의 기원'과도 같은 행보였다. 다행히도 현대 사피엔스들에게는 우리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4% 가까이 심어져 있다. 그것이 종족보존의 최후의 비밀이다. 적확히 표현하면 그런 유전자를 가진 인간은 사실 사피엔스가 아니라 우리 네안데르탈인들이다. 


지금의 사피엔스들에게 불행히도 우리 종족이 진 이유는 알려진 바와 좀 다르다. 마치 우리를 키는 작고 미개한, 그래서 원숭이에 더 가까운 별개의 종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우리와 그들 간의 유전적 차이는 불과 1.5%에 불과하다. 사촌 정도의 아종임에도 우리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사피엔스들의 몸에는 포악함과 모험심이 강력하게 장착되어있다. 그들에 비해 네안데르탈인들은 '감성적인 심장'을 지녔다. 이것이 우리의 패배에 기인한 진짜 이유다. 남을 공격하고 지배하기 싫어한다. 우리는 현생인류보다 10만 년을 먼저 가이아(지구)에서 살아왔지만 뒤늦게 출몰한 인류에게 무참히 짚 밟혔다. 단지 따듯한 가슴을 가졌기 때문이다. 살면서 특히나 여리고 감성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건 대가 약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심장을 가졌기 때문이다. 감성이야말로 우리 종족임을 인증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공개적으로 네안데르탈인이라고 표시할 순 없지만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를 금세 알아본다. 이만 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종족의 DNA에 표식이 되었다.




나는 서울 네안데르탈인의 1,685대 손이다

종족의 미래를 열어야 한다. 사피엔스들과 2차 전쟁을 통해 또다시 운명을 걸 수는 없다. 얼마 전 17,263회 종족회의를 개최했다. 지부의 대표들이 모여 내린 결론은 인류의 정신과 문화를 보이지 않게 찬탈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각자 문화를 선도하는 분야로 가열하게 진입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 지부는 음악은 젬병이고 미술은 명랑만화 수준이라 그나마 글쓰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누군가 매일같이 글을 쓰면 호모 사피엔스의 영혼을 훔쳐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게 될까 싶지만 시도는 해보기로 했다. 


우리 종족의 목표는 가이아(지구)에서 인류를 내모는 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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