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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연어 Oct 22. 2022

사랑의 언어

(50대, 인생을 바꾸는 100일 글쓰기)


사람에겐 5가지 '사랑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게리 채프먼의 동명 저서 중에 나오는 얘기인데 사람마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제1의 키워드를(사랑의 언어) 가지고 있다. 저마다 사랑(광의의 의미)을 주고받는 방법이 다른데 자기 기준으로 남을 이해하면 소통의 문제가 생긴다. 결국 상대방의 제1 언어를 알아야만 온전히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다섯 가지의 언어를 살펴보면 인정, 함께하는 시간, 선물, 헌신, 스킨십이다. MBTI의 설문을 통한 성격유형 분석처럼 30가지의 체크 항목을 통해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 그 사람의 제1 언어가 되는 셈이다. 게리 채프먼은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문제는,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서로의 주파수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극히 합리적인 분석이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만으로 타인을 재단한다. 서로의 언어는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와 같다.


'사랑의 언어 알아보기' 테스트를 해보니 총점 30점 중에 인정(9) > 스킨십(9) > 함께하는 시간(6) > 헌신(3) > 선물(3) 순서대로 나온다. 점수가 낮다고 그 성향이 없는 건 아니다. 나의 제1 언어가 인정이나 스킨십이라는 얘기다. 내가 가장 듣고 싶어 하고 감동받는 언어가 인정 또는 스킨십이라니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할 시기에 (유년~청소년 시기) 집안 형편상 일정 부분 그 시기를 놓치고 지나간 것들이 있다. 아마도 그것에 기인하여 공허함과 인정 욕구가 생긴 것 같다. 사랑을 충분히 받은 사람에게 묻어나는 여유와 충만함이 부러웠다. 후천적 노력이나 잠재돼 있는 원래의 성향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지금은 어느 정도 삶의 균형을 이룬다. 아무튼 나에겐 믿음과 지지가, 사랑한다는 말보다 때론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리고 가벼운 신체접촉에 친밀감을 느낀다(오해는 마시길-악수나 라이트 한 터치). 그런 행위에 안정감과 유대감이 생기니 이 또한 공허함에 발로인가?





한국, 미국, 독일, 일본, 스페인 사람 다섯이 모여 상대의 언어를 전혀 모르는 가운데 이야기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소통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배려라는 건 결국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것을 알아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왜 상대는 나를 이렇게 모를까? 내 마음을 어째서 못 채워주지? 란 감정이 든다면 서로의 언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친구 중에 한 명은 유독 선물에 집착한다. 공적이건 사적이건 두 개가 가면 최소한 하나가 돌아오길 바란다. 눈에 보이는 현물(선물)이 그 친구의 언어다. 코드가 그러니.. 그걸 빈정 상해하는 친구도 있지만 선물은 어쨌든 그의 언어다. 그럼 이런 상대의 언어를 어떻게 알아차릴까? 눈치껏 캐치할 수도 있겠고 영 짐작이 안된다면 직접 물어봐도 될듯하다. 너의 제1 사랑의 언어가 무언지를. 이 모든 행위가 복잡해도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니 무인도에 안 가려면 어쩔 수가 없다.


이럴 때 글은 참 편리한 도구다. 글에는 그 사람의 성향과 생각들이 담겨있다. 글이 그 사람의 얼굴인 셈이다. 더욱이 픈하여 글쓰기를 해오면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 글의 얼굴이 어느 정도 보인다. 직접적인 대면은 없었으나 '복면가왕'처럼 얼굴 없이도 더 선명한 글(노래)을 감상할 수 있다. 앞으로 대학을 가거나 입사지원을 하거나, 결혼을 할 때 그동안 써온 글을 제출하라는 세상이 올 수도 있겠다.


당신의 사랑의 언어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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