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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연어 Oct 24. 2022

구내식당

(50대, 인생을 바꾸는 100일 글쓰기)


하루 세끼 중에 거의 두 끼를 해결하는 곳이 구내식당이다 

매일 그런 건 아니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구내식당에서 먹는다. 퇴근 후 집까지 한 시간 반이 걸려서 저녁까지 먹고 가는 게 습관이 붙었다. 집에서 밥을 안 챙겨 주는 말 못 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늦은 시간의 저녁이 부담이 된 탓이다. 건물 내 구내식당은 입주한 여러 사무실 직원들이 이용한다. 점심은 한식, 양식, 일품요리 세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 교차로 먹는 게 허용된다. 입맛 데로 골라 담으면 웬만해선 실패하지 않는다. 단 저녁은 한식만 나온다. 특히나 저염식으로 조리하는 음식들이라 조미료의 달달한 맛이 안 나서 좋다. 가격도 칠천 원이니 요즘 물가에 단비 같다. 가성비로 따지면 어중간한 식당의 만 원짜리 이상이다.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걸 보니 확실히 건강식에 가깝다. 


어머니의 손맛

조미료를 쓰지 않고 재료의 맛을 살리는 어머니의 음식은 여전히 맛있다. 자라오면서 그렇게 미각이 세팅되다 보니 음식의 기준이 어머니로부터 온다. 내 가정을 이루고 살아온 지금도 어머니 집에 가서 식사를 할 때면 이 반찬, 저 반찬을 정신없이 오간다. 내 몸의 결핍을 채우는 느낌이다. (누군가 의문의 일패를 당한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기) 어머니는 항상 따듯한 밥과 반찬을 자식들에게 먹이셨다. 적게 먹는 게 건강이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어머니는 먹는 거에 진심이다. 동네 재래시장 가셔서 사 오는 나물들, 마른반찬 거리들. 그런 소소한 재료들로 만찬을 내놓으신다. 며칠 전에도 이것저것 반찬을 챙겨 주면서 이제는 힘이 든다고 하신다. 너네들이 배워서 당신 없을 때도 잘해 먹으라고 하시니 마음이 애잔해진다. 





집 옆에 구내식당이 있다면

나는 먹는 거에 목숨 거는 스타일이 아니다. 요즘은 밥을 안 먹어도, 고기를 안 먹어도, 빵으로 건너뛰어도 크게 상관이 없다. 원래 그런 건지, 반찬 투정하다간 미사일이 날아오니 조용해진 건지는 비밀이다. 아무튼 지금은 소식이 편하다. 그래도 음식을 해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다만 거기에 투여되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먹기 위해 재료 준비하고, 요리하고, 치우고, 음식쓰레기 버리고. 그러다 인생 다 가겠단 생각이 든다. 나중에 이사를 가게 되면 구내식당이 있는 옆으로 가면 어떨까 싶다. 역세권, 숲세권, 백세권, 학군 등 집을 고르는 기준은 다양하다. 아마도 어느 정도 자식까지 독립해서 자유로와 질 때면 구세권(구내식당 옆)이 뜨지 않을까 싶다. 때 되면 구내식당 가서 식권 내고 밥 먹으면 끝이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딴짓을 하는 게 합리적이다.


식문화와 전통

전에는 김장을 담그고 된장을 만들고 집안의 손맛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제 그런 전통은 마트에서 구매하는 '종갓집 김치'에나 있다. 시대가 변하고 삶의 기준이 바뀐 탓이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낭비되면 버릴 용기도 필요하다. 그걸 원하는 사람들에겐 선택의 자유를 주어야 될 듯싶다. 반대로 전통을 지켜나가길 소망하는 분들은 그 맛스럽고 멋스러움을 유유히 이어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떤 선택도 다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되길 바란다. 


어머니의 손맛처럼

훗날, 구내식당이 그리워 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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