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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연어 Oct 24. 2022

바둑으로 푸는 인생

(50대, 인생을 바꾸는 100일 글쓰기)



바둑은 가로 19줄, 세로 19줄이 만나는 361개의 교차점에 돌을 놓아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흑과 백을 쥐고 겨루는데 상대방보다 집이 많은 사람이 이긴다. 경우의 수가 무한에 가깝기 때문에 한 번도 같은 바둑이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완벽할 수도 없을뿐더러 한시대가 지나면 새로운 패턴의 강자가 등장하게 된다. 일찍이 인간이 만든 게임(규칙) 중에 가장 고난도라 자부하던 바둑이다. 한중일 위주의 바둑 문화권에서 이젠 세계적인 보드게임이 돼가고 있다. 심지어 대학에서도 바둑학과를 개설해 학문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 상태다. 이런 고차원 방정식인 바둑은 오직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특권이라 여겨왔다. 그리고 애호가들은 바둑을 '반상 위의 펼쳐지는 우주'라고 생각하며 '끝없는 수의 세계'를 여행한다.


구십 년대만 하더라도 컴퓨터와 바둑을 두면 9점을 깔아주더라도 가지고 놀 정도의 낮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2016년 인간과 인공지능(AI)과의 역사적인 대국이 서울에서 벌어졌다. 이세돌 9단과 바로 그 유명한 구글 딥마인드사의 AI '알파고'와의 대결이다. 이세돌은 당대의 걸출한 바둑기사다.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던 바둑의 신 이창호와 2000년대 초중반을 풍미했고 그런 이창호를 이기기 시작한 비금도의 천재기사다. 대국이 있기 전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바둑만큼은 인간이 이길 거라 예상했다. 결과는 딥러닝(스스로 학습하는) 기술을 장착한 알파고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무려 1승 4패를 당하고 말았다. 4국에서만 이세돌의 '신의 한 수'로 알파고가 자멸하며 신승을 거두었다. 알파고는 "AlphaGo resigns. The result "W+Resign" was added to the game information"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패를 인정했다. 


이것이 유일하게, 앞으로도 유일할 인간의 1승이다. 이제 다들 바둑에서는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놀랍게도 그 무적의 알파고 마저 이젠 골동품이 되었다. 기술은 더욱 진화해 간다. 알파고가 이기는 알고리즘을 학습으로 터득했다면 지금의 기술은 학습 없이도 인간의 행동양식을 대체하도록 설계되었다. 무서운 발전이다. 오죽하면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도 인공지능이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을까. 그러나 인간이 바둑을 더 이상 이기지 못하더라도, 바둑에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철학이 담겨있다. 





어려서부터 어깨너머로 배운 바둑이 지금은 아마 1단의 급수를 가지게 되었다. 한동안 2단을 유지하다가 워낙 안 두다 보니 1단으로 내려와 있는데 그마저도 대결을 해봐야 검증될 것 같다. 지금은 대개 온라인 바둑으로 대전이 이루어진다. 전에는 기원 바둑으로 얘기해야 진짜 실력이라고 했는데 시대가 변하니 기원 갈 일도 없어졌다. 중3 때 교내 바둑대회를 나가려고 신청하니까 담임이 천 원(天元)이 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니 천원도 모르고 바둑대회 나가냐고 핀잔을 주었다. 천원은 바둑판의 중앙점이다. 당시엔 9급 정도의 실력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첫째판은 부전승의 행운을, 둘째판은 고수(?)를 상대로 일거에 패를 당했다. 이후 오랜 기간 급수 향상이 이루어졌는데 둘 때마다 바둑은 변화무쌍한 인생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바둑에는 정석, 사활, 포석, 행마, 끝내기 등을 알아야 하지만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기사들의 명언은 공식보다 먼저 인생을 바라보게 한다.



순류에 역류를 일으킬 때 즉각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다. 거기에 휘말리면 나를 잃고 상대의 흐름에 이끌려 순식간에 국면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그러니 나의 흐름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는 자세야말로 최고의 방어수단이자 공격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 이창호 9단


재능을 가진 상대를 넘어서는 방법은 노력뿐이다. 더 많이 집중하고 더 많이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바둑에는 '복기'라는 훌륭한 교사가 있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 이창호 9단



새로운 '류'로 승부해라

"이것은 실력의 차이가 아니다. 이기는 자가 강한 자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바둑에는 실력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이것은 새로운 '류'의 충돌이다. 나의 '류'와 창호의 '류'는 너무나 달랐다. 아니 이창호의 류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류'였다." - 조훈현 9단


아직 바둑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버텼던 이유는 이겨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아직 이길 기회가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승부사라면 아주 낮은 가능성에도 베팅할 줄 알아야 한다. 아직 바둑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조훈현 9단




가끔씩 한두 판 정도는 두어볼 생각이다. 바둑도 글쓰기와 비슷해서 두다 보면 마음이 정리된다. 서두르거나 실수하거나, 우회하거나 저돌적이거나.. 바둑 한판에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 들어가 있다. 

호흡을 가다듬고, 한수 한수의 무게를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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