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티기 May 14. 2024

품위있는 삶의 마무리

'아침 기분이 하루를 결정한다.'

사람에 따라 잠의 질, 꿈자리, 날씨에 따라 달라지고, 심지어 쾌변 여부에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다. 나도 잠이 고픈 근무를 시작하면서 잠의 질에 좌우되는 경향이 많아졌다. 그나마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음에도 도중에 몇 번 깨는 날이면, 몸 컨디션은 물론 기분도 바닥으로 내려간다. 찌뿌둥한 기분으로 출근한 날은 나도 모르게 언행이 정갈해지지 않음을 느낀다. 


요즘 기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하나 더 생겼다. 사나흘에 한 번 꼴로 측정해 보는 공복혈당 수치이다. 피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자리에서, 보건소 의사가 혈압과 맥박, 공복혈당 수치를 기록해 보라고 했다.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이 되어 꼬박꼬박 적어 내려가고 있다. 그런데 혈압은 약을 먹고 있어 문제없게 나오지만, 혈당 수치는 널뛰기를 하고 있다. 부모님들의 혈압이 높고 어머니는 중증 당뇨병을 앓았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 혈압과 혈당은 건강관리의 바로미터가 되었다. 공복혈당 수치가 다른 날 보다 높게 나오면,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한 기분이 된다.


어머니가 영면에 든 지도 사 년이 흘렀다. 자식들 다 장성시키고 여유롭게 지낼 수 있는 시기, 십 삼 년 동안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생을 마쳤다. 두 번째 뇌경색이 온 이후의 어머니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의사표현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결코 살아있다고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의미 없는 생명을 이어갔었다. 영면하기 전, 한 달여 간병을 하면서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은 나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어머니의 뜻은 아니었지만, 가족 모두에게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경제적인 부담은 물론, 곁에서 손과 발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가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좀 더 세밀한 부분까지 어머니를 돌보았던 여동생,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는 간병하면서 버텼던 남동생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군의 주요 보직에 있고 같은 지역에 없다는 이유로 방관자 신세가 되었지만, 늘 마음 만은 괴로웠다. 결국 결혼 초부터 어려운 생활고를 이겨가며 가정을 세워 온 어머니의 인생 역정이 마지막 모습에 묻혀 사그라들어 버렸다. 이 과정은 나에게 '웰 다잉'과 '죽음까지 가는 과정'을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난 후, 곧바로 한 일은 아내와 같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등록하는 것이었다. 아내와 생각이 일치된 것은, '치료 효과가 없는 상태에서 단지 생명만 연장하는 의료행위는 무의미하다는 점'이었다. 앞으로도 존엄성이 지켜진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계속 고민해 볼 예정이다. 그리고 아들들에게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사실을 알려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임종을 앞둔 환자의 통증과 그 가족의 심리적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죽음의 질', '어떻게 죽어갈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아내에게서 오는 문자 메시지 다음으로 반가운 것은 헬스 앱에서 주는 팔천 걸음 넘었다는 알림이다. 근무할 때는 자연스럽게 만 걸음을 넘기지만, 쉬는 날 조금만 게을러지면 알림이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쉬는 날은 아내와 무조건 야외로 나간다. 그동안 천변이면 천변, 둘레길이면 둘레길을 많이도 쏘다녔다. 산도 다녔지만 아내가 무릎에 부담이 간다 하여 주로 평지를 가고 있다. 항상 마무리는 그 지역에 맛있는 먹거리와 막걸리 한 병이다. 덕분에 헬스 앱이 매일 기쁨에 알림을 주고 있다. 또 하나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은 다음 날 아침 공복혈당 수치를 낮춰 준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보면, 부부 중 홀로 남은 한 명의 삶이 얼마나 어려워지는지 알 수 있다. 이것만으로 같이 건강하게 늙어가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부부가 오래도록 같이 늙어가는 것 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건강에 관한 지나친 자신감은 만용이라 생각한다. 취약점을 알고 주기적으로 체크하면서 관리해 나가는게 정답이다. 나의 경우 취약점은 혈압과 혈당이다. 오래전부터 측정기를 구입해서 주기적으로 수치를 확인하고 있다. 혈당이 널뛰기를 해서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이러면 안돼'하는 마음으로 관리 모드를 가동하게 만든다. 분명한 것은 운동 게을리하고 음식을 무분별하게 포식하면 여지없이 수치가 상승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옛말에 '골골팔십'이란 말이 있다. 이는 건강에 자신 없는 사람이 오히려 더 잘 관리하게 되어 팔십까지 산다는 말이다. 자극 받아 마음 다지고 관리하는 것, 이것이 '죽음까지 가는 과정'을 순탄하게 만드는 첩경이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기억 너머 추억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