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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Aug 02. 2023

누구나 실수는 어렵다

우당탕탕 성장하는 아빠, 아들

우리는 오래간만에 장난감 도서관에 갔다. 장난감도서관은 시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관할 주민에게 2주 동안 원하는 장난감을 빌려주는 곳이다. 하남매는 그곳에 가는 걸 좋아한다. 연령에 따른 다양한 장난감들이 있어서 평소에 가지고 놀지 못하는 걸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는 이따금씩 새로운 장난감이 입고되는데 시기를 잘 맞추면 손때 묻지 않은 새 장난감을 경험해 볼 수도 있다. 이번에 아비가 빌린 장난감이 바로 새 장난감이었다. 마켓놀이, 누나하고 역할놀이를 하면서 사장님이 되기도 하고 손님이 될 수도 있는 장난감이었다. 조그만 계산기와 작은 카트 그리고 식재료들이 부속품이었다. 


늘 그렇듯 새 장난감을 빌린 아이들은 집에 오자마자 손만 간단히 씻은 채 장난감에 몰입했다. 아이들이 장난감에 빠져있는 잠깐의 순간은 나에게 집안 이곳저곳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어디에선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아비가 이거 부러뜨렸어!"


어찌 된 영문인지 하성이가 마켓놀이 카트를 발로 밟아서 바퀴 이음새 부분이 부러지고 말았다. 아비는 무심코 발로 밟았는데 퍽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나니 자기도 놀랐나 보다. 동그란 눈으로 이 사실을 나에게 알려왔다.


'이를 어쩌지. 이건 우리 실수라서 변상해주어야 할 텐데. 아.. 이런 데 돈 쓰는 게 제일 싫은데.'

'아오! 하성이도 놀라서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한 건데, 표정관리가 안되네..'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하임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이럴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아. 짜증나..'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러다 내게 붙잡힌 한 가지 생각은 아이의 실수에 대해서 그냥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보다 실수를 어떻게 책임지는지 알려줘야겠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한 실수를 대수롭게 넘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나는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하성이에게 되물었다. 


"하성아~ 이거 카트 부러져서 어떻게 하지? 방법이 있을까? 아이고."


하성이는 부러진 카트를 뒤로한 채, 딴짓을 하다가 진지하게 묻는 아빠를 보고서는 자기가 생각한 최선의 방법을 말했다. 


"그거, 테이프로 붙이면 돼! 그러면 되잖아!"


나는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로 해서 부러진 카트의 국면을 마무리했을 텐데, 이 상황을 조금 더 이어나갔다. 나는 부러진 부분을 만지작 거렸고, 이렇게 장난감을 함부로 사용하면 다음번에 못 빌릴지도 모른다며 괜히 겁을 주기도 했다. 아비의 어색한 미소와 내 앞에서 보이는 멋쩍은 행동들이 다행히 이 상황을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입에서 이 말이 나왔다. 


"괜찮아. 하성아."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실수를 잊고 자기만의 시간을 다시 시작했다. 아빠의 괜찮다는 말이 아이에게 안도감을 주었나 보다. 잠깐이지만, 하성이는 아빠 뒤에 숨지 않고 자기가 저지른 실수하고 대면해 봤다. 하성이는 실수의 무게를 얼마큼 느꼈을까.


부러진 카트의 날 이후로 아이가 저지르는 실수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5살 아이가 경험하는 세상에서의 실수들은 장난감 카트를 부러뜨리거나 물건을 떨어뜨리기, 옷을 거꾸로 입는 것들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좀 더 자라 힘이 세지면 더 커다란 물건을 넘어뜨릴 수도, 어쩌면 누군가를 넘어뜨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초등학생을 지나 청소년이 되어 마주하는 세상에서는 지금과는 또 다른 차원의 실수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이가 살아가면서 맞닥뜨릴 숱한 실수들 앞에 나는 과연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그저 괜찮다며 모든 실수를 끌어안아 주는 게 좋을까? 아니면 아이가 스스로 책임져야 할 몫은 감당하도록 기다려줘야 할까? 때로는 '괜찮아'가 정답일 때도, 어떤 때는 '조금만 기다려서 생각해 보자'가 필요할 때도 있겠다. 나는 생각이 이리저리 확장되면서 어떤 반응이 지혜로운 건지 갈피를 못 잡다가 이런 공감이 아이에게 더 와닿을 거라 생각했다.  


'하성아, 아빠도 실수 많이 해. 어쩔 때는 아빠가 한 실수가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더라. 아빠는 지금보다 더 어른이 되어서도 아마 실수를 할 것 같아. 아빠랑 같이 고민해 보자. 우리를 기다리는 많은 실수들에 어떻게 맞설지!'


나는 장난감 도서관에 장난감을 반납하러 가는 날, 하성이 손 꼭 잡고 부러진 카트를 함께 내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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