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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Jul 12. 2023

우리들의 영웅

아비 vs 하미

아비가 하미를 밀친다. 벌써 몇 번째, 아니 며칠 째다. 누나를 밀치면서 장난기가 가득한 아비 얼굴을 보니 누나하고 놀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진다. 하미는 몸으로 표현하고 장난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자꾸만 건드는 하성이가 힘들다. 자기보다 말도 잘하고, 글씨도 잘 쓰고, 종이접기도 잘하는 누나를 툭툭 건드려보는 하성이의 속마음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동생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인지, 자기가 누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것(힘)으로 누나를 넘어서려고 한다. 나는 갈등이 더 커지기 전에 아비를 데리고 집 앞으로 잠시 나간다. 아비와 진정바위(집 앞에 있는 의자처럼 생긴 바위를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에 앉아서 잠시 숨을 고른다. 재미난 것은 아빠에게 안겨서 밖으로 나갈 때 하성이는 또 신나 한다. 보통은 아비와 하미가 잠시 거리 두기를 했을 때 상황이 해소가 될 때도 있지만 아비가 다시 누나를 건드리게 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날은 주말 오전이었다. 하미는 엄마아빠에게 배운 대로 하성이에게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이렇게 말한다.


"하지 말아 줄래! 하! 지! 말! 아! 줄! 래!!"


생각보다 민감한 성격을 지닌 하성이는 누나의 단호한 태도에 상처를 받고 울부짖는다.


"누나가 안 친절하게 말했어. 누나 싫어, 누나 평생 미워할 거야. 누나 감옥에 가버려. 누나 맨날 싫어."


그럼 인정하는 말이(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중에서) 사랑의 언어인 하미는 그런 하성이의 말들에 또 상처를 받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면서 운다. 나는 조금 먼발치에서 재빠르게 양측의 과실을 따져본다. 그래야만, 누구 한 명 서운하지 않게 상황을 해결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둘 사이의 갈등이 또 생겨났던 아침이었다. 하성이가 또 누나에게 자기만의 표현을 했는데, 유독 아침에 저기압인 하이미는 나름의 단호하고 친절한 태도로 하성이에게 말했다. 그날은 우리가 봐도 하이미의 말이 좀 거칠게 들리긴 했다. 그래서 엄마는 6대 4 정도로 하성이의 편에 서서 조금 더 친절하게 말해보라고 하미를 타일렀는데 하미가 울음이 터졌다. 약간 억울한 울음 같았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진짜 하이미는 노력했다는 게 느껴졌다. 아침이 힘든데 하성이가 와서 또 건드리니 짜증이 날 법도 했다. 내가 중재자가 되어서 하미가 정말 노력했다는 게 느껴졌다고 더 악쓰면서 말하지 않고 최대한 노력하면서 말한 게 보였다고 하니 하이미의 표정과 마음이 풀어졌고 스르르 내 옆에 와서 누웠다. 최대한 객관적이면서도 아이들의 마음이 억울하지 않게 사건일지를 기록하는 게 포인트가 된다.

일단, 또 갈등상황이 생겨났으니 하미에게는 누나하고 놀고 싶어 하는 하성이의 마음을 설명해 주면서 하성이에게 너무 이렇게 표현해 보면 어떨까 일러준다. 우리는 하미에게 이런 완곡한 표현을 알려주면서도 이게 하성이의 행동을 올바르게 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는 마음이긴 하다.


"하성아, 누나가 지금 뭐 하고 있으니까 이따가 놀자."


하미는 단호하면서도 친절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듣는 하성이에게는 그냥 쫌 싫어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는 걸 잊지 않는다. 하성이에게는 몸으로 밀고, 때리고, 누나에게 함부로 행동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그 말을 또 한다. 누나가 하고 있는 걸 아비도 같이 하고 싶으면, 먼저 물어보고 하는 거고 누나하고 몸으로 장난치고 싶다면 커다란 쿠션을 안고 침대에서 놀라고 알려줘 본다.


그날 오후, 나는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각자만의 시간'(엄마는 독서, 아빠는 글쓰기, 애들은 간식 먹으면서 영상 보기)을 보낼 때 오전의 일을 다시 떠올렸다. 우리는 어디선가 배운 대로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로 반복해서 말해주곤 한다. 그런 행동은 옳지 않다고, 그와 같은 행동은 하면 안 된다고, 우리 집의 규칙을 기억하라고. 그런데, 엄마 아빠가 자주 하는 말들이 자칫 아비에게 이렇게 들리지는 않을지 바꾸어 생각해 보게 된다.


"너는 지금 조절이 안 되고 있구나. 너는 이 순간 조절을 못하는 아이야."


그래서 스스로를 '조절이 안 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을지 보게 된다. 우리가 바란 것은 에너지가 넘치는 이 아이가 스스로를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넘치는 에너지를 올바르게 쓰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너무 아이에게 줄곧 하면 안 된다는 말만 했었지 넘치는 에너지를 다른 방식으로 써보라고는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흐르니 아비가 스스로의 넘치는 에너지마저 부정하게 되지는 않을지 괜한 염려를 해보기도 한다.

또 한편, 하미가 하성이 때문에 힘들어하곤 하는데 이런 상황이 반복이 되다 보니 아비를 '자기를 힘들게 하는 동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을지 염려를 해본다. 더불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고, 그중에는 아비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하미처럼 언어로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친절한 사람도 있고, 배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서툰 사람도 있다는 걸 하미가 알기를 바라본다. 하미가 자기에게 친절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며,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더불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도 함께 어울려 지낼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본다.

이렇듯 서로 도우면..

아비하고 잠자기 루틴을 마치고 함께 눕는다. 그리고 아이가 그날 하루를 성공의 기억으로 마무리하도록 잠자리 대화를 해본다.


"하성아! 그런데 아까 보니까, 누나하고 다투었을 때, 진짜 힘이 세더라. 악어 같았어."


"그래?"


"응! 그리고 아빠가 보니까, 하성이가 또 몸으로 표현하려다가 멈추려고 노력하더라? 되게 멋졌어!"


아비 입가에 미소가 번지더니 스르르 잠든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아비가 또 몸으로 표현하려는 게 보여서 엄마가 이렇게 소리친다.


"오! 하성아! 하성이가 우리 가족 중에서 힘이 세니까 엄마하고 누나를 보호해 주는 거야! 그러려면 그 힘을 아껴 써야 하는 거야! 누나가 저기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데?"


"알겠어! 엄마! 아비가 달려갈게!!"


아비는 그날 스스로가 영웅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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