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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Jun 15. 2023

어떤 마음

불편한 어떤 마음

세이니는 유치원에서 만난 하이미의 단짝 친구다. 생일이 빠른 하이미가 월반을 해서 3월 중순에 7세 반으로 가는 바람에 적응이 좀 어려웠는데, 세이니가 편안하게 다가와줬나 보다. 어느 날에는 세이니에게 줄 거라며 색종이로 만든 보석함을 유치원 가방에 챙기는 가 하면, 또 어느 날에는 세이니에게 받은 거라며 편지선물을 고이 챙겨 온다. 얼마나 아끼는 편지선물인지 하이미는 아직까지도 편지를 뜯어보지 못한 채 보관함에 넣어둔다. 한 교실에서 같은 일과 아래 생활을 하고 있다고 친구가 아니라고 한다. 하이미에게 친구란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그 마음을 자기가 원하는 모양(편지, 선물)대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하이미는 유치원에서의 일들을 말하며 세이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엄마가 먼저 세이니에 대해서 물어봐도 하이미는 이렇게만 답을 한다.


"하이미 이제 세이니가 안 좋아졌어."

"아. 그래 하임아? 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엄마에게 알려줄래?"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근데 그냥 세이니가 안 좋아. 하이미도 모르겠어."


우리는 하이미의 뭔가 어정쩡한 대답을 듣고는 하이미가 아직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다가도 혹시 유치원에서 불편한 일이 있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 다시 물어봐도 들려오는 대답은 역시나 비슷하다. 며칠 뒤 나는 아이도 아직은 알 수가 없는 어떤 감정이 하이미에게 찾아온 건지 같이 발견하고 싶어 세이니 이야기를 또 꺼낸다.


"하임아! 혹시, 그냥 세이니가 불편해진 게 아니야?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오! 맞아 아빠. 그게 맞는 것 같아!"


어른도 그럴 때가 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친구에게서 마음이 멀어지기도 하고, 특별한 일 없이 소원해지기도 하는 일들 말이다. 우린 하이미에게도 그런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라고 매듭을 짓는다.


하이미와 세이니의 알 수 없는 마음의 매듭이 풀리게 된 건 하이미 담임 선생님의 세심한 눈썰미 덕분이었다. 그 일은 강당놀이를 할 때 일어났었다. 담임쌤의 말로는 세이니도 하이미도 주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아이들이라고 했다. 강당에서 역할 놀이를 할 때, 세이니가 먼저 주도적으로 역할을 정해주고 함께하는 친구들이 잘 따라오도록 배려했는데 하이미의 뭔가 불편한 기색이 담임쌤의 눈에 띄었다. 담임쌤은 특별한 소요가 일어나지 않아서 그냥 지나갔는데, 교실 안에서 하이미가 세이니에게 불편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아서 따로 하이미를 조용히 불러서 물어봤다고 했다.


"하임아. 선생님이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줄래요?"

"네."

"하이미가 세이니에게 불편한 마음이 있는데, 그게 혹시 예전에 강당놀이를 할 때 하이미도 스스로 역할을 정하고 싶은데 세이니가 먼저 말해주니까 불편했던 거예요?"

"오! 맞아요! 그게 하이미 마음이었어요!"

"그랬구나. 이제 그럼 세이니하고 같이 해결해 볼까요?"


담임쌤은 세이니와 하이미를 함께 불러서 속마음을 들려주게 했고, 약속된 언어표현으로 서로의 마음을 만져주도록 도와주었다. 세이니도 하이미와 좋게만 지내다가 영문도 모른 채 멀어지게 되어 속상했을 수 있는데 다행히 선생님의 세심한 도움으로 관계가 회복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잠자리 준비를 하던 하이미가 이렇게 말했다.


"하이미 오늘 일찍 자야 해! 내일 세이니하고 같이 점심 먹어야 하거든."


원서를 우리말로 번역을 할 때, 원문이 가지고 있는 느낌과 정서가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소실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 번역가는 원문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작가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작가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찾는 부단한 과정을 겪는다. 작가와 원문 그리고 번역본 그 사이 어딘가의 여백을 메꾸기 위한 번역가의 노력이다. 뭔가 불편한 마음이 있지만 잘 모르겠다는 하이미의 원문을 해석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하이미의 입장이 되어 하이미 마음에 여러 질문들을 던졌을 것 같다. 그리곤 하이미의 말과 마음 사이 어딘가에서, 세이니와 하이미 사이에 있는 여백을 메꾸기 위해서 골똘히 고민했을 담임쌤의 마음이 느껴져서 참 감사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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