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공부하는 아빠, 그림책 [언젠가 너도]
첫 째가 태어나고, 조리원에 있을 때였다. 나는 모든 게 처음이어서 서투르기만 했고, 새로운 경험들은 신기했다. 나는 가제손수건이 이렇게도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조리원에 젖병소독기가 필요했던 이유도 알았고, 아이가 왜 하루종일 잠을 자는지, 자다가 깨서는 왜 우는 건지도 배웠다. 대청문이 있어서 아이의 숨이 오가는 것까지도 알게 되었다. 새로이 알게 된 것들 중 압권은 바로 모유수유였다. 수유가 이렇게도 엄마의 수고로움이 가득한 건지 정말 몰랐었다.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젖을 찾는 아이에게 젖을 물려야 했고, 아이도 엄마도 서로가 가장 편안한 자세를 찾기 위한 시행착오들을 거쳐야 했다. 모르는 게 투성이었지만 서툰 아빠와는 달리 아이엄마는 이미 열 달 동안 아이를 만나왔기 때문이었는지 자기의 직관을 믿고, 차분하게 하나씩 엄마로서의 일들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오빠! 하이미 여기가 좀 달리 보이지 않아?"
"하이미가 좀 오늘은 열심히 무는 것 같지 않아?"
"하이미 목욕하고 오니까 진짜 깨끗해졌지!"
"잘 먹었는지 잘 잔다."
"오물오물하고 있다 아 귀여워"
"손가락 좀 봐바 히히"
"손톱이 진짜 작다"
내 눈에는 뭐가 특별히 다른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이엄마는 매 순간 달라지는 게 보이는 듯 아이의 모든 걸 눈에 담으려고 했다. 아이의 모습들이 엄마의 눈에 담기니, 늘 들리는 울음소리도, 가지고 태어난 손가락마저도 특별해졌다.
그림책 [언젠가 너도]에는 아이가 태어나서 조금씩 자라나는 순간들을 가만히 지켜봐 주는 엄마의 시선이 가득 담겨 있다.
"어느 날 네 손가락을 세어보던 날 그만 손가락 하나하나에 입 맞추고 말았단다."
"첫눈이 오는 어느 날, 가만히 지켜보았지. 네 고운 뺨 위에 흰 눈이 내려앉는 걸."
그림책을 읽다 보면, 아이의 아주 작은 사소한 행동에도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동시에, 엄마도 누군가로부터 이렇듯 소중한 시선을 받으며 자라왔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손 끝에서부터 발 끝까지 누군가의 따스한 시선이 가 닿지 않은 곳이 없었을 것이다. 그 시선들은 어디엔가로 흩어지지 않고 엄마의 안에 잘 쌓여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생명이 엄마의 배속에 생겨나는 순간, 엄마는 자기 안에 있던 시선들을 하나둘씩 꺼내 아이에게 닿게 됐다. 그건 오로지 엄마만이 줄 수 있다. 아빠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변화를 엄마만이 느낄 수 있었던 건 열 달, 200일도 넘는 날 동안 아이와 충만하게 교감해 온 엄마의 헌신이 그 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태동에도 온 감각을 사용해 반응하던 엄마의 민감함 마음도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끊임없이 상상했을 것이다. 어떤 아이일지, 눈은 어떻게 생겼을지, 코는, 귀는, 손가락은 어떨지, 아이의 머리끝부터 발끝을 상상해 가며 열 달을 지내왔다. 지나온 상상의 시간은 태어난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그림책 덕분에 조리원에서의 아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의 작은 변화에도 왜 그리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는지 더 깊이 이해할 수가 있었다. 모성애라는 게 왜 그리도 특별할 수밖에 없는 건지, 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다 안다는 게 왜 진실인지를 알 수가 있었다.
이 땅에 모든 엄마들은 위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