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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Nov 21. 2024

글 친구가 된다는 것

중1 청소년기 아이와 글을 나누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틈만 나면 문장을 읽는 아이가 있었다.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 아마도 아이는 섬세한 소녀감성을 지니고 있겠지. 글쓰기와 글이라는 기호가 나와도 비슷해서 아이와 친해지고 싶어졌다. 나는 누군가 책에 빠져있는 모습이 보일 때면, 그건 누가 썼고, 어떤 책인지 알고 싶어지는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아이가 편안해할 만한 마음의 거리를 나름 계산해 보고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글 쓰는 게 좋은지, 요즘은 어떤 책에 빠져 있는지, 얼마나 자주 글에 잠겨 있는지' 

자기가 좋아하는 걸 물어와서였을까, 아이는 즐거이 대답했다. 아이는 요즘 '항해'를 테마로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소설로 쓰고 있다고 했다. 너의 글을 읽고 싶다고 말하려다 꾹 참았다. 적당했던 거리가 깨질 것 같아서. 


어느 한 날, 우리는 같이 모여서 '읽고 쓰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아이 엄마는 거절하는 법을 잘 아는 청소년기 아이가 흔쾌히 수락하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했다.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수다로, 아이와 나는 글쓰기로 각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어서 써 내려갔고, 나는 아껴둔 문장을 필사했다. 아이는 한 공간에서 진득하게 앉아 문장을 고쳐보고, 이어가 보고, 지웠다가 써보는 일이 익숙했다. 얼마큼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글'을 가지고 아이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적당한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다, 노트들을 꺼냈다. 지금까지 써왔던 노트들이 아이와 나의 매개체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삼촌이 어떤 기록을 했는지, 노트별로 어떤 종류의 글이 적혀있는지를 설명했다. 펜으로 드로잉 했던 그림일기도 함께. 나의 세계에 아이를 초대하는 느낌이었다. 설명은 그리 길지 않게 했다. 노트에 닿았던 아이의 호기심이 사그라들 즈음, 내 필통을 공개했다.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필통에 자리하고 있던 네 자루의 만년필 덕분이었다. 나는 종이와 펜촉이 닿는 느낌이 남다른 만년필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다. 아이의 감성을 이끌어낸 것 같아 괜히 뿌듯했다. 

'만년필은 정말 매력적인 펜이야. 다른 볼펜은 쓰고 나면 버리곤 하잖아? 근데 만년필은 잉크를 채우면 다시 쓸 수가 있어. 잉크를 스스로 채워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긴 하지만, 그 마저도 만년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내 손으로 직접 잉크를 채울 수 있으니까. 색깔도 달리할 수 있어. 이건 블루블랙이라는 색이야. 나는 조용한 밤에 혼자 만년필로 슥슥 그림을 그릴 때 그 소리가 너무 좋더라.'

아이는 네 자루의 만년필을 번갈아가면서 계속 끄적였다. 우리 두 사람이 즐거워 보였는지 아이 여동생도 달라붙었다.  며칠이 지나, 우리는 다시 만났다. '브런치스토리' 작가플랫폼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어느 지원서가 그러하듯 자기소개를 채워야 했고, 글의 주제와 소제목을 써야 했다. 지원하는 곳 입맛에 맞게 나를 소개하는 건 언제나 부담이 되는 일. 나는 아이에게 몇 개의 주요 키워드부터 적어보고 그 단어에 문장을 입히는 걸 추천했다. 아이는 열심히 지원서를 작성했다.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부담을 느낄까 괜히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이번엔 알려준 대로 다 써봤다며 아이가 먼저 찾아왔다. 지원서 초안이 어느 정도 완성됐다. 이제 에피소드 3개 정도를 추려서 지원서를 제출해야 했다. 아이에게 3 편의 글을 선택해 보라고 했다. 나도 두 번이나 떨어졌으니, 혹시 불합격하더라도 괜찮다는 격려도 함께.


아이는 홈스쿨링을 하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다소 무료했던 아이의 일상에 좋은 자극제가 된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나도 글친구가 생긴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다. 글의 힘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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