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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인생 영화처럼 살자

by 모래쌤

"야, 무슨 영화 찍냐?"

"아, 인생이 무슨 영화 같냐."


이런 이야기가 괜히 회자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지난 인생을 돌아보니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떠오르는 장면들이 많다.



십 대의 나는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나 작은 아씨들의 조처럼 살고 싶었다.

당당하고, 도전적이고, 열정이 넘치는 삶을 꿈꾸었다.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들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소리도 잘했다. 말도 말이지만 '투서'도 많이 썼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데 선생님께서 이걸 저렇게 하시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뭐 그런 식으로. 그래서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OOO"이었다. 지극히 내향적인 성격인 것 같지만 내 안에는 늘 펄펄 끓는 열정이 있었다.




이십 대의 나는 델마와 루이스, 포레스트 검프의 제니처럼 되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델마와 루이스> 마지막 장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디디고 보니 추악한 인간들이 너무 많았다. 어리바리한 나는 이리저리 이용당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여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그런 행동들은 친구들의 인기를 얻었던 학창 시절과 달리 요주의 인물이 되게 했고. 앞뒤 없이 들이받기만 하다 어느 날 폭삭 망가진 나를 발견하던 날. 델마와 루이스처럼 세상의 끝으로 달려가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30대와 40대의 나는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처럼 살고 싶었다.

<앵무새 죽이기 >

결혼, 두 아이의 엄마, 15년 다닌 회사 퇴직, 교회 개척. 목사 남편만 바라보고 오직 기도로 살아야 하는 개척교회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웠다. 개척하면서 가졌던 마음, '세상 의지 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갔던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처럼 그런 당당히 나아가보자. 주님께서 일하신다.'와 같은 마음은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실패자, 낙오자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남편은 어땠을까? 나의 몇 곱절 더 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그만 나는 둘째 출산과 더불어 독서지도사라는 새로운 일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내 일에 전문가가 되고자 밤 잠을 설쳤다.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아이들의 선택이 아니니 이 아이들이 기죽지 않고 살게 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물심양면 챙겨보려 애썼다. 두 아이들에게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길 소망했었다. 하지만 40대 중반. 두 살 위 언니를 먼저 천국으로 보낸 나는 강박에 시달린다.




'시간'이라는 강박. 엄마 아버지와 더 많이 함께 해야 한다는 강박. 돈으로 시간을 샀다. 그래도 자신 있었다. 남편과 함께였고, 나도 능력이 있다고 믿었으니까. 책 읽고 수업 준비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공부하고 실행했다. '줄리&줄리아'의 주인공들처럼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고 싶었다.





50대의 나는 '아메리칸 셰프'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또 도전했다.

아직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를 인생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살아낼 수 있을지 늘 고민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54세에 내 인생은 갑자기 장르가 바뀌었다. 재난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사실은 지질한 쫄보가 호가호위하고 있었음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지켜주던 보호막이 사라지고 나니 적나라한 세상이 눈에 들어왔고 두려워 벌벌 떠는 나 자신이 보인다. 보호막이 사라진 직후 그나마 얼마 없던 돈을 보이스 피싱으로 날렸다. 둘째 아이를 데리고 있다는 말, 아이의 우는 목소리 거기에 그만 '또 나에게 이런 끔찍한 일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심지어 아이가 학교에 있다는 말을 들어도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으니.



그 뒤로 더 심해졌다. 사람들을 보면 무섭다. 집 현관 비밀번호를 자꾸 바꾸게 된다. 큰 남자, 거친 사투리를 보면 소름이 끼친다. 엘리베이터에서 남자를 만자면 겁부터 나고 두근두근 가슴이 뛰고 조여 온다. 그래서 더 그런 걸까? 보호막이 너무 그립다. 징징댈 곳이 사라졌다. 언제든 말만 하면 달려와 주던 그이가 없는 내 앞으로의 인생은 어떤 영화가 될 것인가?



지금은 하루만 무사히 넘기길 기도한다. 지나가겠지. 나아지겠지. 그리움과 아픔은 어쩔 수 없지만 살아가지겠지.


앞으로의 인생이 하루가 됐든 50년이 됐든 아름다운 영화로 만들고 싶다. 혼자 남았지만 믿음 잃지 않고, 맡은 소임 다하는 사람으로, 한 길로 끝까지 가서 우아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떠나게 장면을 연출하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 교수님처럼 유쾌하게, 남은 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는 사람으로 살다가 가고 싶다.


'스토너'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루하루 최선을 하다는 사람, 당당하고 강인하지만 조용한 사람. 그래서 만나면 가슴이 시원해지는 그럼 멋진 주인공으로 내 인생의 영화를 만들자. 어차피 영화 같은 인생인데, 영화처럼 멋지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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