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뻔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감사하라'
지난 주일은 추수감사절이었다.
교회에서는 추석 명절 같은 날이 추수감사절이다.
이때가 되면 교회 대청소도 하고
잔칫날이다 보니 손님 초대도 한다.
그래서 교회를 더 예쁘게 단장하곤 한다.
부서별로 행사도 이것저것 하는 경우들이 많다.
풍선 달고 선물 준비하는 건 기본.
큰 교회에 있을 땐 내가 맡은 부분만 하면 되었지만
개척한 후로는 이 모든 걸 남편과 내가 해야 했다.
여기에 음식 준비까지 하고 나면 녹초가 되어
정작 나는 추수감사절 예배를 어떻게 드렸는지도 모르고 휙 하루가 가곤 했었다.
남편도 교회도 없어진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다른 교회들이 하는 걸 유튜브를 통해 엿보기만 하고 있을 뿐이다.
내 지금 상태는....
네가 사모라는 인간이 그렇게 살아서 결국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큰소리를 치고,
네가 무슨 투사라도 되는 것인 양 행동하냐고.
주제 파악이나 하라고.
끊임없이 나를 책망하는 소리들로 너무 괴롭다.
여기저기서 얻어맞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집은 무너져버린 상황같다.
이찬수 목사님께서 이번 주에는
"마음이 짧아져 길이 보이지 않을 때"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다.
우리는 모두 광야를 지나고 있으며, 마음이 상해서 그 길을 가고 있다고.
왜 나는 돌아봐주지 않고, 이렇게 험한 광야에 혼자 내버려 두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이 상태인 우리가 회복이 될 수 있을까?
비결은
1. 믿음의 시야를 회복하라
2. 감사했던 순간을 떠올려라
3.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라
였다.
부부간에 권태로움에 감사하라고도 하셨고,
조금 마음에 안 드는 배우자여도 감사하라고 하신다.
나는 없는데...
그리고
모세의 인도로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로 드셨다.
광야로 인도하셨으나 그 모든 길 속에 불뱀에 물려 죽지 않고 살려주시는
그 은혜를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물려 죽은 이들도 있는데...
가족들 중에 물려 죽은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나는 안물리게 해 주시고 살려주셔서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내 남편은 주님의 도우심으로 광야를 빨리 탈출한 것인가
나 때문에 엉뚱한 길로 가다가 불뱀에게 물린 건 아닐까.
피할 길을 주시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일까?
내 마음이 꼬여있는 것이 분명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심하게 엉켜버린 실타래를 보는 기분.
우리 삶의 시작은 장례식이라는 말씀은 인상 깊었다.
장례식 이후가 진짜 우리 삶이며 여기는 광야와 같은 곳이라는 말씀이었다.
그나마 희망적이다.
광야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
눈물을 쏟는 것도 의미가 없다.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내 몸만 힘들다.
그러니 삶을 멈출 수 없다면 계속 울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은 어쩔 수 없다.
지난 일들을 돌아보며 감사하라고 하시니까.
감사할 거리를 찾다 보면
그리움에 목이 메는 것이고
원망의 마음도 드는 것이고
현실의 공포로 무서운 것이고
미래의 불확실로 떨리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오늘 부른 찬양은
내가 요즘 가장 두려워하는 찬양을 하필.
[찬양제목 : 오 신실하신 주 /김명식]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후렴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 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아멘을 목놓아 우는 걸로 대신했다.
얼마 전 큰 아들이 이야기했던 것이 떠오른다.
'감사' 찬양은 좀 안했으면 좋겠어.
찬양 인도할 때 너무 힘이 들더라고.
앞에서 울면 좀 그렇잖아.
서울대학교 합격 할 줄 알고 있다가 안되어 마음이 무너지던
그 주일에 아들이 우리 교회에서 '감사' 찬양을 특송으로 불렀었다.
남편이 뒷자리에 앉아 눈물을 훔치던 기억이 난다.
[찬양제목 : 감사 / 손경민]
오늘 숨을 쉬는 것 감사
나를 구원하신 것 감사
내 뜻대로 안 돼도 주가 인도하신 것
모든 것 감사
내게 주신 모든 것 감사
때론 가져가심도 감사
내게 고난 주셔서 주뜻 알게 하신 것
모든 것 감사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입니다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
항상 주안에 있음 감사
참된 소망주심도 감사
나 같은 사람도 자녀 삼아 주신 것
모든 것 감사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입니다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은혜입니다
주님 감사해요 주님 감사해요
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
나를 사랑하신 주 사랑 감사합니다
광야 길 아들들도 나도 잘 버티고 믿음 지켜서
진짜 인생 제대로 살게 되길 기도한다.
목사님께서 지난날 감사할 거리를 찾으라 하셔서
울며 불며 지난날을 떠올려 본다.
교회 개척하고 주일학교 한창 재미있게 하던 시절을 기억해야겠다.
큰 아이 초등학교 2학년 올라갈 때쯤 우리는 교회를 개척했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주일 예배드리는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주일 점심과 주일학교 아이들 간식을 만들기 위해 남편과 장을 보러 갔다.
주일에는 아침부터 남편은 차량 운행을 했다.
교회 바로 앞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라면 걸어오지만
한두 블록만 떨어져 있어도 차량 운행은 필수다.
남편은 전날까지 설교를 준비하고, 아침에는 차량 운행을 했다.
나는 예배를 인도했다.
일주일 중 가장 예쁘게 차려입고,
찬양 MR을 틀어놓고 아이들과 함께 율동을 하며 찬양하고 나면
남편 목사님의 설교 시간.
이 시간에 나는 예배 반주도 하고,
영상 촬영도 하고, 아이들을 살폈다.
예배를 마치면 2부 순서는 레크리에이션. 그 시간에 간식도 먹고,
좁은 예배당 안에서 아이들이랑 같이 놀았다.
가까운 공원, 청도 야영장, 경주 등으로 야유회 같은 행사도 많이 했다.
그러면 먹거리 준비와 아이들 치다꺼리하느라 더 힘들었다.
바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바쁜 게 감사했다.
어쩌다 주일학교 아이들 결석이 많은 날이면 내 기도가 부족한가 보다 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교회가 부흥이 되나 마음이 힘들었다.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숨 가쁘게 살았던 것 같다.
때때로 친구 초청 잔치나 달란트 잔치 같은 걸 하게 되면
일주일 전부터 선물 마련을 위해 도매로 문구 완구를 판다는 곳들을 찾아다녔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포장하느라 늦게까지 꼬부리고 앉아 있었다.
행사 때는 교회 장식도 필수여서 토요일 오후에는 대청소도 하고,
풍선도 달고, 예쁜 글귀도 써서 붙이고 하느라 바빴다. 그게 끝이 아니다.
주일날 쓸 음식 재료를 손질하고 대충 해 놓을 수 있는 것들은 해 놓아야
순식간에 해 낼 수 있기 때문에
준비를 해 놓느라 늦게까지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밤에 미리 해 놓을 수 없고 아침에 해야 하는 음식들도 늘 있는 법이라
아침에도 서둘러야 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시절이었는데 그 기억들이 이렇게 소중하다니...
우리는 고향에서 너무 멀리멀리 떠나오다 보니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온전히 내 손으로 다 해야 했었는데,
그래도 그게 내가 사는 이유라 생각했기 때문에 보람이 있었고,
몸이 힘들어야 '아 내가 그래도 주님의 일을 좀 했나 보다' 하는 마음이 들어
자꾸 일을 더 만들었던 것 같다.
그중 하나로 몇 년간 여름 사역에 힘을 썼었는데,
서울 역사 체험과 여름 성경 학교를 같이 진행해 보기로 했던 것이다.
아침과 저녁으로 성경학교를 하고 낮에는 서울의 곳곳을 다니며 견학하는
3박 4일 프로그램을 계획한 것이다.
그 행사를 치르고 나면 일주일을 꼬박 쉬어야 목소리가 다시 돌아와 줄 정도로
극심하게 체력을 써야 하는 일이었지만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면
그 평안함과 뿌듯한 감동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고,
서울 견학도 원하는 친구들이 많아 괜찮겠다 싶어 진행을 했고,
매년 관광버스 한 대는 꽉 채워 행사를 치렀다.
우리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모든 일정을 전화로만 확인하고
사전답사는 엄두도 못 냈기에 행사 당일 종종 변수가 생겼다.
가려던 곳이 문을 안 열거나 길이 너무 밀리거나 예상 밖으로 한 곳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오후에 과천 어린이 대공원 동물원 관람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무슨 일정 때문인지 늦어졌다.
동물원 관람 시간이 6시 30분까지였는데
우리는 6시가 막 넘어갈 때 도착한 것이다.
나는 관람을 못하고 돌아서게 될까 봐 온 신경이 곤두섰었다.
매표소로 막 뛰어갔는데 이미 매표는 끝났다고 입장이 불가하단다.
'오 마이 갓! 이 일을 어쩌지? 무조건 들어가야 해 어떻게든!'
그래서 내가 제일 못하는 걸 했다. 급하니까 되더라.
"어머. 정말 죄송한데요. 저희가 OO에서 왔어요. 저기 애들 보이시죠?
저렇게 다 데리고 왔는데 못 보면 아이들이 너무 실망할 것 같아요.
잠깐만 보고 나오면 안 될까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매표원이 "잠시만요." 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이윽고 "저희가 6시 30분 폐장하거든요. 30분까지 얼른 보고 나오셔야 해요.
매표는 지금 할 수가 없어서요 그냥 들어가시면 됩니다."
헉. 이렇게 감사할 데가. 할렐루야~
나는 아이들한테 외쳤다.
"얘들아. 뛰어!" 우리는 우르르 동물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홍학들이 잔뜩 있었고, 기린이 있었고, 그걸 지나 언덕 쪽으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스테레오 사운드를 켜 놓은 것처럼
사방을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가 들렸다.
서울이 고향인 나도 어릴 적부터 동물원 많이 와봤지만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그 시간이 맹수들이 밥을 먹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높은 사다리에 올라선 사육사가 시뻘건 고깃덩어리를 공중으로 던져 올리면
그걸 공중까지 뛰어올라 낚아채는 맹수들의 모습을 보았다.
'쟤들 언제나 축 늘어진 모습만 보였는데 와 저런 애들이었구나. 대단하다.'
나도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했던 날이었다.
그 시절을 하나하나 기억 속에 담아 두고 싶다.
그때 우린 젊었고, 교회에 대한 소망도 있었고,
주일학교 아이들이 커서 장년이 되고 교회가 더 풍성해지는 시간들을
마음으로 그려보기도 했으며
모든 사역을 마치고 둘이 오붓하게 보낼 노년에 대한 꿈도 꿨었다.
그 시절 참 행복했다.
남편이 예고도 없이 먼저 천국으로 부르심을 받고 난 후 교회는 폐쇄되었고,
나는 홀로 남았다.
그 시절의 기억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면 더 외로웠으려나?
아니면 그 기억이 없는 편이 더 홀가분한 것인가..
주님께서 내게 확실하게 이건 이래서 이렇게 한 것이고
저건 저래서 저렇게 한 것이니 그리 알아라!
하고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내 속에서 더 이상 어떤 말도 안 나오게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방법밖에 없다.
내가 이 광야를 버티려면
불평불만 원망 실망 좌절 그런 걸로는 버틸 수가 없잖나.
감사밖에 방법이 없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잖아.
그러니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