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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어쩐다

by 모래쌤

삶은 굽이굽이 산을 오르는 것 같다.

위기의 순간이 오면 나는 멈추고 생각한다.

'자, 이제 어쩐다'






전에도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그 순간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곤 했다. 사람과의 관계든 일이든 그렇다. 당황스럽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래. 이렇게 저렇게 됐구나. 그렇다면 이제 어쩐다? '하고 생각을 한다.


간절하다면 밥 먹다가도, 머리를 감다가도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렇게 생각난 것들을 이것저것 시도해 본다. 그러면서 한 고비 한 고비 넘겼다.








무슨 일이든 계속 좋을 수는 없어서 한 번씩 안팎으로 위기가 온다. 2020년 1월 20일 코로나 19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대구에 확산되던 2월 19일 이후 갑작스럽게 일상이 중단되었을 때도 그랬다.

수업이 없었지만 아침부터 아이들이 당장 오는 것처럼 수업모드로 앉아서 생각했던 것이다.

'가만있자 그럼 이제 어쩐다...'


그때는 집에서 공부방을 할 때였는데 가족들은 그런 나를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갑자기 모든 것이 중단되고 나니 당장 생계가 걱정되었던 내 속은 모르고. 나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들을 했다. 국어 문법 노트 정리, 한국사 노트 정리, 세계사 노트 정리 그런 걸 했다. 그리고 누군가 스카이프로 수업을 한다더라 하는 소릴 듣고는 곧 졸업을 시켜야 할 친구와 먼저 스카이프로 수업을 해 보았다. 해보니 생각보다 서로가 만족할 수 있었고, 곧 누구보다 빠르게 ZOOM 수업을 도입하여 모두가 격리되어 있던 그 상황에서도 회원 수의 70%가량 수업을 하며 삶을 이어갔다.


학교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독서가 끊기지 않길 바라는 부모님들이 많이 계셨고, 아이들도 화상 수업으로 책 이야기 나누고 글 쓰고 하는 시간을 신기해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했다. 이동 시간 없이 컴퓨터만 켜고 연결만 하면 되니 은근히 편했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없는 화상 수업에 매력을 느꼈던 기간이었다. (물론 장난치는 친구들도 있고, 점차 노하우가 생겨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나쁜 버릇이 생기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건 좀 문제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메타버스 안에서 수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던 중 어느덧 일상이 회복되었다. ) 등교가 시작되고, 서서히 마스크도 벗었고, 오프라인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온라인 수업을 하겠다는 친구들도 있어 한동안 온라인으로 수업을 이어갔을 정도로 반응은 좋았던 것 같다.









2024년 1월에는 내 인생 최대의 위기가 왔다. 갑자기 남편이 세상을 뜨자 심각한 침체에 빠졌다. 그러나 일상을 내려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어서 한 달 만에 수업을 재개했지만 힘들었다. 내 삶의 모든 상황을 뒤집어 버릴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18년 동안 잘해오던 한우리 독서논술을 그만두었다. 뭐든 바꾸면 뭔가 나아질 것처럼 버리고, 바꾸고 했다. 그런다고 바뀌는 게 아닌데 말이다.


독서 수업의 지경을 넓혀서 어른들과도 모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아이들 독서지도도 온라인 수업을 통해 전국적으로 어디에 있든 연결해서 수업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생각일 뿐 현실은 달랐다. 모든 내 계획은 무모한 것이었고, 지난 1년여 기간 동안 숨 쉴 틈 없이 바쁘게 보냈다. 책만 읽으면 본사에서 주는 교사용 교재와 해제를 참고하여 떠들기만 하면 되던 수업과는 달리 책 초등 1학년부터 고등 1학년까지 책 선정부터 발문을 만들어 교재를 완성하는 일까지 오롯이 혼자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눈 뜨고 있는 시간은 모조리 책 읽고 생각하고 교재 만들고 수업하고 그것만 하며 보낸 것 같다. 물론 나의 생각을 온전히 묶어둘 수 있도록 해 주어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사고 치지 않았으면 지난 1년 어떻게 버텼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회원들이 1년이 안되어 그만두는 사례가 속출한 것이다. 신규회원이 그보다는 많아서 전체적으로는 회원이 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몇 달 안돼서 그만두는 건 충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돌아볼 체력도 마음도 없었고, 책을 안 읽거나 못 읽거나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한 학부모님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원장님. 엄마들이 피드백이 너무 없어서 조금 불만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그만둔 엄마들 중에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혹시 도움이 되실까 하여 말씀드립니다. 저는 선생님 잘 알고 믿으니까 괜찮은데 또 요즘 엄마들 그렇지가 않잖아요. 피드백이 전혀 없으니 뭘 하는지를 모르겠더라. 근데 그만두고 포트폴리오 들고 온 것 보니 뭘 많이 하긴 했더라.라고 하는 거예요. 마음 상하진 마시고 참고하시면 좋지 않을까 해요."


이 어머님도 이제 논술을 시작하며 만난 어머님이라 오래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소개해 주신 분 덕분에 나를 철석같이 믿으시는 분이시고 진심 어린 말씀을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둔 엄마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섭섭한 마음이 몰려들었다.

"그래? 그럼 이제 어쩐다?"


인정하고 다음을 생각하기 시작하니 답답하셨을 어머님들께 진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브랜드도 없는데 내가 뭐라고 나를 믿고 아이들을 맡기시는 분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샘솟았다. 더 열심히 수업준비를 하고 더 열심히 수업에 임해야 하겠지만 그다음 순위로 중요한 일에 '피드백'을 넣어 루틴을 만드는 중이다. 시도해 보니 루틴만 잘 만들면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서 인플루언서가 되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잔뜩 써서 종이책으로 펴내고 싶다.

'이렇게 바쁜데 무슨 블로그야. 간단하게 인스타에 홍보할 수 있는 짧은 글이나 영상을 올려.' 이런 조언들을 많이 한다. '요즘은 스레드 해야 해요. 거기는 지역의 팔로워를 모으기 좋더라고요.' 하는 의견도 이야기하는 분도 봤다. 하지만 나는 긴 글이 좋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시간이 없는데, 블로그를 어떻게 해.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거지. 좀 안정되면 그때 다시 열심히 하는 걸로 하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정말 나중이 있나? 인생 마음대로 안 되는 걸 다 봐와 놓고. 그래서 '그냥 지금 하자'로 마음을 바꿨다. 내가 매일 읽고 수업준비하고 수업한 내용들, 소감들 그런 걸 그냥 올려보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매일 글 하나씩을 올리고 있다.



나와 세계관이 같고 독서지도에 대한 철학이 같은 후배를 만나 내 방식을 전수하고 더 발전된 형태를 만들어 '이제 독서 논술'을 잘 키워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직원을 뽑을 여력은 없으니 일을 배우고 함께 성장할 사람을 찾아보려 한다.



앞으로 나는 읽고 쓰는 일에 더욱 전념하고 싶다. 내 글에 힘 얻는 이들이 생기면 좋겠다. 사람들이 무서워 피하고 싶었으나 연대의 필요성을 다시금 느끼는 요즘 함께 책을 읽고 나눌 수 있는 동지들이 생기면 좋겠다. 읽고 토론하고 글 쓰는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다. 살아있는 나날을 살아있는 듯이 살다가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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