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가만 보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쉽게 넘어지거나 포기하지 않는 것 같아.
절망적인 순간이라고 느껴지는 어떤 순간이 되어도 너는 침착한 것 같아.
비록 눈물은 하염없이 쏟을지언정 말이야.
남편이 갑작스럽게 뇌지주막하출혈로 쓰러졌던 2024년 1월 8일
정신을 잃지 않았던 너를 칭찬해 주고 싶어.
신규회원 상담을 준비하며 분주히 움직이던 네가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무슨 일인지 몰라 허둥댔지만
침착하게 병원으로 가는 모습이 기특했어.
가면서 아이들한테 연락하고, 엄마한테 연락하고 그랬지. 덜덜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으며 운전했지만
안전하게 잘했어. 진짜 기특해. 가능 도중 병원에서 또 전화가 왔지. 어디쯤이시냐. 얼마나 걸리시냐.
위험한 상황이냐는 너의 질문에 병원에서는 조심히 운전해 오시라는 말만 거듭하며 오시면 말씀드린다고
했지. 그때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큰일이 났나 봐'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하지만 그 큰일이 그런 큰일일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지. 그래서 안 울고 침착하게 가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매일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잖아. 운동 간다고 나갔던 사람이 운동하던 곳에서 119 구급대에 실려 동네 병원으로 옮겨지고, 다시 대학병원으로 옮겨가는 동안 저녁이 되었어.
그러는 동안 네가 본 것만 해도 심폐 소생을 세 번이나 했잖아. 동네병원에 옮겨진 후 네가 갔을 때 이미 심폐 소생을 두 번이나 했다고 했었고. 그때는 누구라도 붙잡고 제발 좀 살려달라고 할 판이고, 간절하고도 간절한 마음이라 그저 잘 의사들이 무슨 말을 해도 '네네' 소리만 나오고 그랬어.
대학병원으로 옮기고 좀 있으니 119 구급대가 할 일을 다 마쳤는지 가면서 남편의 짐이라며 큰 비닐을 안겨주었어. 남편의 한쪽 발에 양말이 안 신겨져 있어서 내내 그게 마음에 걸렸는데, 거기 남편의 양말이 있었지. 한겨울이라 남편 발이 너무 시려 보여서 얼른 한쪽만 신기면 되니 양말 좀 신기면 안되냐고 했더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소생실 의사들이 딱 자르더라고. 아니 꼼짝도 못 하고 누워있는 사람이 추운 날 얼마나 발이 시렸을 거야. 그런데 그거 잠깐 신기면 되는 걸 못하게 하냐고. 화내지 않고 잘 참은 너를 칭찬해.
실컷 남편 몸에 이것저것 갖다 대고, 꽂고 달고 하는 그 의사들한테 한마디 했어야 헸는데...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고. 특히 그 영남대학교병원 소생실에서 의사 가운을 입고 있던 젊은이 하나는 그것도 의사라고 자기네들끼리 뭐라 뭐라 하면서 실실 웃기까지 했잖아. 그러다 너랑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쳤는데 네가 지금 그 표정은 뭔가요?라는 눈빛으로 봤었는데 아차 싶은 눈치로 너의 눈을 피했어. 경황이 없어 곱씹거나 항의할 새가 없었는데, 나중에 큰 아들도 그런 소릴 하더라고. 네가 몇 번이나 봤는데 설마 잘못 봤겠지 했는데 아니었던 것이야. 그 사람한테 " 저기요. 지금 웃는 거예요? 왜 웃어요? 이게 지금 웃을 상황입니까? 뭐 하는 겁니까? 당신이 그러고도 의사야? " 막 이러고 소리 지르고 울고 싶었는데 참았어. 그냥 소리 지르고 욕이라도 하지 그랬어. 어차피 살려 주지도 못했잖아. 그래도 잘 참은 네가 대단해.
그날 밤 중환자실 앞에서 너는 생각했어. 그날의 일부터 옛날 옛날의 일들까지 도대체 어디서 잘못되었을까 복기하고 또 하던 시간들.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 이미 의사가 뇌사라고 봐야 한다고 했지만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중환자실로 옮기는 것을 보고 깨어날 수 있으니 저렇게 하는 것 아닌가 했지. 이렇게 갑자기 사람이 간다고? 아니 이게 말이 돼? 그 와중에도 학부모들께 연락해서 수업을 당분간 못하게 되었다는 안내를 했지. 앞이 캄캄해도 할 일은 해낸 것을 칭찬해.
뇌사 판정을 받는 과정. 진짜 끔찍했어. 뇌 지주막하출혈 단 한 번에 남편의 생이 멈춤 상태가 되었어. 억지로 숨은 붙여놨지만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고 했어. 남편은 분명 그런 짓 그만하라고 할 사람이잖아. 너희 부부는 늘 연명 같은 건 안 하겠다고 이야기했었잖아. 부부가 그 부분에서는 마음이 참 잘 맞았었지. 그렇다면 장기들을 기증할 수 있을 때 기증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그들의 설득에 너도 그렇게 결정했지.
그 모든 순간에 이성을 잃지 않고 침착함과 올바른 생각으로 결정하고 진행한 너를 칭찬해 줄게. 장기기증센터 사람들 굉장히 조심조심 다가오는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흡혈귀처럼 보여서 네가 소름 끼쳐하며 놀랐고, 천천히 생각하라 해 놓고는 빨리 결정하라는 듯한 그들의 조용한 다그침에 목이 조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 너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래서 그 모든 시간을 의연히 넘어온 너를 칭찬하고 싶어.
하지만 네 마음에 떠나지 않는 생각들이 너를 괴롭히는 것 알아.
진짜 칭찬받을 일 맞나? 남편이 깨어날 때까지 계속 버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믿음을 가지고 더 기도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손원평의 소설 '아몬드'의 윤재 엄마는 깨어나던데.
그렇지 않아.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 담당교수가 그때 그랬었잖아. 깨어나실 가능성 거의 제로라고.
만약 깨어나신다 해도 장기들이 이미 다 손상이 되어 생명 연장의 가능성이 없다고. 너한테 어떤 가능성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는걸. 중환자실 앞에서 화요일 아침, 수요일 아침 두 번 담당 교수의 전화를 받았는데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도 별 수 없이 이미 끝난 걸 알면서 너한테 그렇게 빙빙 돌려 말한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분이 계속 반복해서 강조했던 건 '이런 경우 며칠 안에 다시 심정지가 오실 수 있는데 그때 심폐소생술을 또 시도할 것인지 결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였잖아. 그들이 결론을 이미 내놓고, 성의 없이 구는 것 같아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너의 이성이 말했고 너는 견뎠지. 너는 의사가 왜 그렇게 밖에 말을 못 하냐 따지지도 않았고, 그저 '네, 네' 하다가 '그럼 저는 뭘 할 수 있나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했어.
잘 참았어. 잘 견뎠어. 너처럼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 잘 없어.
너는 논리적으로 생각했잖아. 아무 희망도 없는데 저렇게 붙여놓고, 간호사들만 들락날락하면서 남편의 몸 여기저기에 손대는 게 너무 싫었잖아. 남편의 몸이 두부처럼 부풀어 오르는 걸 보고 있는 게 힘들었잖아. 분명 우리는 할 수 있다면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었으니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이잖아.
그런 결정은 아무나 하니? 너니까 그렇게 담대하게 한 거야. 진짜 대단해. 그러고 660일이 넘게 살아왔잖아.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네가 '어머 어머 어떻게 해 악!' 하면서 도로를 나갔던 초보 운전 때처럼 지금 그렇게 익숙지 않은 운전대를 잡고서도 잘 가고 있잖아. 훌륭하다. 삶을 포기하지도 않고, 무섭고 겁나지만 하나하나 해 내고 있잖아.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의 부재가 떠오르고 또 홀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끔찍해 한바탕 눈물을 쏟곤 하지만 눈물을 닦고 또 하루를 시작하는 네가 기특해. 아직은 이 땅에서 할 일이 남아 있는 것 알기에 맡은 바를 다하려 하는 너는 강한 사람이야. 너는 담대한 사람이야. 너는 논리적이야. 너는 울지만 약하지 않아. 잘 해낼거야. 너를 믿어. 힘내서 오늘도 살아보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