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기억은 무표정한 얼굴. 일하는 모습. 두통에 시달리는 모습.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려 하면 뿌리치시던 모습 같은 냉랭한 모습만 생각난다. "엄마, 나도 같이 갈래." 하고 시장 가는 엄마를 따라나서면 "홱" 소리가 날 정도로 뿌리치셨다.
그런데 그때의 엄마보다 더 나이를 먹고 보니 우리 엄마는 참 정갈하시다. 다른 사람 험담을 싫어하신다. 눈앞에 벌어진 일에 대하여 누구 탓하지 않는다. 큰일을 만나면 오히려 담대한 모습을 보이신다. 늘 자기 자신을 낮추셨다.
그리고 늘 나를 대단하다고 여기시지만 -확실히 그렇지만- 칭찬은 잘 못하시는 편이다. 항상 내 걱정을 하신다. 어릴 땐 엄마가 늘 무섭고 어려웠다. 엄마는 지금도 스킨십에 익숙지 않으시지만 그러나 온몸으로 사랑을 전하신다. 그걸 나는 안다. 그 힘이 나를 버티게 했다.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한 뒤 '안식'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비록 몸은 혼자였을 때보다 몇 곱절 힘들었지만 가정을 이루서 나는 더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다. 그래서 일도 더 열심히 잘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마음이 편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목사였다. 우리는 교회를 세워나가느라 애썼고, 아이들을 키웠다. 나를 버티게 해 준 그늘이 되어준 남편과 함께 한 22년의 결혼생활은 아쉬움만 남긴 채 끝이 났다.
언제까지나 옆에 있을 줄로만 생각했던 사람이. 늘 루틴을 지켜 운동하던 그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뇌출혈로 인사 한마디 없이 떠났다. 주께서 갑자기 남편을 데려가시고 나니 나는 그 원인을 찾기에 급급했다. 갑작스럽게 불어온 태풍은 모든 나의 그늘을 걷어가셨다. 허허벌판 땡볕 아래 홀로 선 것 같았던 그 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한달쯤 전부터 계속 동일한 말씀을 주셨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넘어가라."
그 일이 무엇인지 몰라도-사실 내 마음대로 예상한 것은 세 번째 수능을 치르는 큰 애가 또 잘 안되려나 정도였다.- "네 주님. 그럼요. 넘어가는 것이 믿음의 모습이라고 하시니 넘어가겠습니다." 그랬다. 멋지게 넘어가리라.
그런데...... 헉. 넘어가야 할 산이 이거였다고?
그의 잔소리가 그립다. 그의 손길이, 그의 눈길이 그립다. 나를 세워주고, 높여주고, 아껴주던 그가 그립다. 지치고 힘들 때 묵묵히 내 손을 잡아주며 나를 버티게 해주었던 그가 제발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아들들이다.
나를 세상에서 제일 강하다고 하는 아들들.
'F 같지만 실은 T 인 우리 엄마' 라며 냉철한 사람 대하듯 하는 아들들. 아들들이 믿고 아는 그런 존재로 살아내려고 버틴다. 그러기 위해 나는오늘도 최선을 다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아들들과 나는 서로서로 기대어 쓰러지지 않도록 버틴다. 순간순간 몰려오는 허무함과 두려움을 이기고, 슬픔을 참아내고 몸부림치며 살아내고 있다. 버티다 보면 끝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