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으니
목회 준비도 더 많이 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뜻을 가진 우리였고 방향이 분명했기에
함께 기도하며 사역을 해 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했다.
그렇지만 막상 결혼 생활은 지뢰밭 같았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내가 뭘 잘못 밟고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
사역의 현장에서도 부부로서도,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쾅"
생각지도 못한 사건 사고가 연이서 터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내 삶의 '쿵"은
큰 아이가 나에게 온 사건이다.
남들도 다 겪는 과정일 텐데
이렇게 불편한 일이었다니.
영화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가 된
기분이랄까.
자동차였던 내가 온몸이 갈가리 찢기고 나뉘더니
엄마라는 강력한 로봇으로 변신했다.
내 몸이 흉측스럽게 변하는 그 모든 과정 가운데에서도
왕비가 된 줄 착각하고 지낸 것은 아마도
그이가 나를 그렇게 대해 주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이는 미안해했고,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내 수발을 다 들어줬다.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된 것은
내가 그를 잘 몰랐다는 것이다.
그이는 이런 사람이었다.
감정 표현에 서툴다.
말 주변도 별로 없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오면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떻게 목사가 된 거지...)
그런데
그런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그의 매력은 무엇일까.
나에게는 언제나 사랑을 베풀어주는 사람이었기에
함께 있으면 내가 높아지는 기분이라 좋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웃어주는 그가 좋았다.
나중에 보니 그는 언제나 자기 가족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의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늘 좋게 봐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이의 가장 큰 특징은 길을 못 찾는다는 것.
심한 길치였다.
처음 이곳에 이사 와서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나는 폭발했다.
한 달이 지나도록 그 가까운 길을 못 찾다니.....
길을 찾고 말고 할 것도 없는 바둑판식으로 된 동네여서
반대방향으로만 가지 않으면 되는데
그이는 자꾸 반대로 차를 모는 거다.
그래서 내가 뭐라 하면
"일로 가도 돼" 하고
낭창한 소리를 하는 거다.
나는 잔소리 폭탄을 날렸다.
서울에선 더 했었다.
결혼 한 첫여름휴가 때였던 것 같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댁 식구들과 강원도로
여행을 함께 간 적이 있었다.
우리는 따로 강원도로 가서 만나기로 했고,
남편과 출발을 했는데 그 시각이 새벽 4시였다.
일찍 가야 뜨겁지 않은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서둘렀다.
그때는 내비게이션이 막 보급되던 때였는데
우리는 그것도 없었고, 요즘처럼 도로에 분홍색,
초록색 표시도 없어서
지도를 보고 이정표 보면서 가야 했는데,
남편은 운전을 하면서 그걸 못 봤고,
나도 처음 가는 길에 옆에서 안내를 잘 못해 줘서 그
만 들어가는 입구를 놓치고 말았던 것인데......
다시 돌아 돌아 제자리로 오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아까 거기에서 이쪽 아니라 저쪽이었어 여보.
거기서 잘 보고 빠져야 돼요."
"알았어요."
하지만 우리는 날이 밝도록 헤맸고,
몇 번을 돌고 돌아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해는 중천에 뜨고,
8시 30분이 넘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 사람은 조립에 능숙하지 못했다.
뭔가 조립해야 하는 물건이 생기면
그걸 끙끙 거리며 뭐라고 뭐라고 중얼중얼하면서
쯧쯧 혀를 차고 그러면서 한다.
처음에 나는 뭐가 엄청 잘못됐나 하고
걱정하며 보곤 했었는데
가만 보니 습관적으로 그러는 것이었다.
잘 안되니까.
나중엔
별거 별거 그이의 손으로 다 고치고 떼고 붙이고 했다.
일 하는 내내 끙끙거리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뭐든 이리저리 들여다보고는 고쳤다.
"아휴 다됐다.
이 사람아, 내가 아니면 이게 되겠어? "
하며 한껏 어깨를 펴고,
온 얼굴로 뿌듯함을 표현하던 그이를 보면
도중에 스트레스받았던 건 다 날아가고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이 칭찬해 주고 맞장구쳐 줘도 됐던 것을...
칭찬에 너무 인색했던 것이 후회막급이다.
그렇게 그와 나는 서로의 변신한 모습을 보며
때로는 실망도 하고, 다투기도 했지만
그렇게 서로를 알아갔던 것 같다.
완벽하지 않지만
나는 그이와 함께 하고부터
무섭기만 하던 세상이 안 무서웠다.
함께 있으면 안심이 되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그는 파김치가 된 지친 날에도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며 호응해 주었다.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내가 뭔가를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는 미소를 띠고 적당한 순간에
'어.. 그렇지.. 응' 하면서 들어줬다.
결혼 전보다 너무 많은 것들이 변화되어
결혼식이 마치 소용돌이로 우리를 빨아들이는
관문 같은 것은 아니었나 싶다.
"어, 어, 아, 아, 아 ~~~~"
하며 소용돌이를 돌고 돌아
무사히 빠져나와 잔잔한 큰 물로 나온 것 같은 어느 날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