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군가 내 삶에.

1화

by 모래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다음 해 여름의 어느 날

누군가 내 삶에 들어왔다.







그날 우리는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를 소개해 준 지인이 준 정보에 의하면

키는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다고 했고,

그는 조부모로부터 이어지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고 했다.

내 키가 워낙 작아 키에 대해 민감했던 나는

살짝 고민을 했다.

하지만 다음의 이야기들에 그만 마음을 열었다.



그는 목회자의 길을 가는 사람이며,

무엇보다 신앙의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열정' 내가 좋아하는 단어.

그래서 일단 끌렸다.

만났을 때 그의 이미지는

'열정'보다는 '공손' 의 이미지였지만.


그 시절 나는 한창 믿음이 충만했었고, 전문 사역자의 길을 가기 원했다.

또한 주님이 결혼에 대한 소망을 주셨고,

'열정' 의 사람이라고 하니 만나볼 수 밖에.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유순한 미소로 경청하는 모습이 좋았다.

그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고 편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과 나는 어쩌다 한번 마주쳤을 수도 있는 거리에서 오래 살아온

이웃사촌이어서 익숙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장소를 옮겨 식사라도 하자며 카페를 나왔다.

'앗 작다.' 순간 나는 놀랐다.

그의 키가 소개해 준 지인이 말한 것보다 훨씬 작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그 때는 7월 장마철이어서 언제든 비가 올 수 있는 상황이긴 했는데 나는 우산이 없었다.

그는 우산을 준비해 왔고, 우리는 한 우산 아래 서게 되었다.

내 왼쪽에 선 그가 오른손으로 우산을 들었다.

그의 오른 팔뚝이 내 팔에 닿았다.

그는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양복 밖으로 그의 팔뚝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 순간 '쿵'.

알 수 없는 설렘.

그리고 이어서 내 안에 들어오는 감정은 포근하다는 느낌.

이게 무슨 감정이지?









그날 비가 오지 않았다면 그와의 교제가 시작되었을까?

생각보다 너무 작은 키에 일단 실망을 했었으니까.

어쩌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다시 안만났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내 기억 속에 첫 만남의 순간이 잊히지 않는 것은

그의 팔뚝으로부터 전달된 단단한 온기때문이다.

첫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잘 눕지도 않는 내가

긴장이 풀어져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혼자 실실 웃었던 기억도 뚜렷하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내 감정 때문이었는데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니, 그렇게 작은 사람인데 왜 싫지가 않은거야? 이 감정은 뭐야?

그렇게 키,키 하더니 어머 웬일이니? '









그는 정말 얌전하게 식사를 했다.

무슨 남자가 저렇게 오물오물 점잖게 식사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수저를 들다가도 멈춰서 "아, 네. 네. " 하며 듣는다.

그렇게 공손하게 상대를 대하는 그 사람이 신기했다.





내가 아는 남자들. 예를 들어 우리 욕쟁이 할아버지, 삼촌들, 우리 아버지,

회사에서 본 사람들은 매너가 없다.

냄새가 난다. 술 냄새, 담배 냄새, 그게 아니어도 뭔가 냄새가 있다.

입은 걸고, 더럽고 추접스럽다.

그런데 그는 예의 바르고, 깨끗하고, 말도 공손했다.

내 지루한 이야기에 경청해 주었고, 나를 높이 평가해 주고, 존중해 주었다.

그리고 항상 향기로웠다.








우리는 그로부터 1년이 채 안되어 부부가 되었다.

함께 주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 헌신하자고 다짐했다.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했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갈 배우자를 만나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렸다.



그렇게 내 삶으로 들어온 그는

22년간 내 옆에서 그 단단하고 따뜻한 온기를 전하다

먼저 떠났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