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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있다

by 모래쌤

나는 무언가를 읽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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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책을 읽는다.

초1 대상 책부터 중 고등학생 대상 책까지 종일 이 책 저 책을 왔다 갔다 하고 이 세상 저세상을 오고 가며 이 사람 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때때로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고, 깜짝 놀라 '헉' 소리를 밖으로 내뱉기도 한다. 그 와중에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마구 충동구매하여 책상에, 책꽂이에 쌓아두고 만지작거린다. 이런 책들은 옆에 두고 틈만 나면 펼친다.



책을 읽고 있는데 아이들이 수업 시간보다 일찍 들어오면 안 반갑다. 어쩌다 휴강이 되어 시간이 나면 읽고 싶던 책을 펴며 설렌다.






또 내가 읽는 것은 아이들의 글이다. 괴발개발 쓴 글씨도 20년쯤 읽다 보니 어지간하면 그 글씨를 쓴 장본인보다 더 잘 알아본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아쉬울 때도 많지만 깜짝 놀랄 통찰에 감동받기도 하고, 수업 내내 까불거리기만 하는 것 같은 아이들의 진지한 속마음을 글 속에서 발견하면 마음이 훈훈해지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 수업을 따라 해 보려고 아이들에게 수업 한 차시의 시간을 내서 총 8쪽짜리 시집을 각자 만들도록 했다. 시를 몇 편씩 어떻게 쓸까 하고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아이들은 원래 모두 시인인데 자라면서 그 능력을 상실하는 걸까? 아이들이 뚝딱뚝딱 써낸 시들이 너무 놀라웠는데 그걸 혼자만 본 게 아까워 문집으로 묶어볼까 하는 마음도 생겼다. 그 멋진 시들을 읽으며 또 한 번 마음 깊은 곳에서 행복이 솟아남을 느꼈다.





내가 또 무언가를 보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은 길가의 작은 풀들이다. 잡초려니 하고 무심히 지나치는데 그 작고 보잘것없는 조그마한 것이 꽃을 내밀고 있다. 차로 다닐 땐 못 봤던 것들을 걸으니 보게 된다. 신기하다. 묘하다. 저렇게 작은 몸 어디에 저렇게 예쁘고 귀여운 꽃들을 숨겨둔 걸까?



나의 일터인 이제 독서논술교습소는 건물 1층이라 아스팔트와 입구 턱 사이 틈바구니에서 잡초가 비집고 나온다. 한 번씩 장갑을 끼고 뜯고 뽑곤 한다. 솔직히 나는 그냥 두고 보고 싶은데, 이웃들이 깔끔? 하게 뽑아놓은 걸 보면 나만 게을러 보여서 안 되겠다 뽑자 했는데 한 번은 너무 예쁜 꽃을 피우고 있는 녀석이 있어서 살렸다. 차마 그걸 뽑을 순 없었다. '너는 예뻐서 살았구나. 예쁜 게 역시 최고군'하는 생각이 들어 이미 뽑힌 잡초들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돌아서면 또 비집고 올라와 있는 풀들이 기특하다.



나는 주로 보면서 아픔을 잊고 보면서 숨을 쉬는 것 같다.

보통 수업을 아이들이 하교하는 오후 한 시 정도 시작해서 열 시 전후 마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내가 주로 보는 것은 수업 일정이 적힌 다이어리와 컴퓨터 화면 속 교안, 지나가는 아이들, 수업 오는 아이들. 수업하는 책, 내가 보고 싶은 책의 등, 표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다.



전에는 드라마도 봤다. <미스터 선샤인> 같은 드라마는 대사 하나하나, 영상의 예술성, 그리고 이야기의 소재도 내가 좋아하는 역사이고, 배우도 마음에 들어 정말 좋아했다. <나의 해방일지> 같은 드라마도 재미있게 봤었고. 남편과 함께 휴식도 끝났다.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는 것이 힘들고, 무엇보다 티브이 앞에 앉아 쉬는 듯한 감정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 내가 보는 것은 추억이다. 아이들이 글을 쓰거나 발문에 대한 답을 찾고 고민할 때 두둥실 떠오르는 추억들은 어쩔 수 없이 봐야 한다. 이것은 책을 읽을 때도 때때로 나타나 내 시야를 흐려지게 하곤 하는데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흐린 눈을 닦아내고 다시 봐야 한다.








나는 들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원래 나는 음악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에는 클래식을 들었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팝송에 귀가 열렸었다. 듀란듀란, 휘트니 휴스턴 같은 가수에 빠지기도 했었다. 가요도 많이 들었는데 김광석, 이문세, 윤도현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특히 좋아했다. 하나님을 만난 뒤로는 찬양을 듣기 시작했다. 이쪽에도 유행가 같은 음악 장르가 있어서 때때로 맘에 드는 CCM을 들었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즐기던 음악들을 듣지 않는다.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감당 안 되어 독서할 때 카페 음악을 틀어놓는 정도. 그것도 가사가 있거나 아는 음악은 안되고,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띵똥땅똥당 ' 하는 걸 작게 틀어놓는 정도만 한다. 2024년 1월 예고 없이 찾아온 사건은 나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찬양은 수도꼭지 같아서 틀기만 하면 울음을 뿜어내게 만든다. 일을 해야 하는 평일에는 절대 금물. 예배 시간은 찬양을 피할 수 없는 날이므로 하는 수없이 수도꼭지 틀어놓고 연신 닦고 짜내는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내가 듣는 것은 뉴스다. 그게 제일 안전하다. 화를 내며 들을 수도 있고 공감이 되면 좋아요 와 댓글 때로는 후원도 하면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꽤 괜찮다. 지난해 말 계엄 사태가 벌어진 후 뉴스 보는 시간이 확 늘면서 활력이 좀 더 생겼다고 하면 이상한 일일까? '계엄이 나를 또 이렇게 살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내가 제정신인가' 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학창 시절에는 나를 둘러싼 친구들이 너무 많았었다. 믿거나 말거나.

사회생활할 때도 소그룹으로 모임을 갖는 걸 즐겼고, 그래서 어울리는 친구들 그룹이 많았다. 하나님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부교역자로 사역하면서 만난 목회자 사모님들과 주일 오후만 되면 함께 모여 놀았다. 나이도 나보다 다 어린 사모님들이었지만 우리는 옛날 시골 마을 이웃들처럼 남의 집 숟가락 젓가락까지 셀 정도로 친한 그런 사이가 되었다. 주일을 보내고 나면 우리끼리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아지트로 삼아 먹고 아이 키우는 이야기, 남편이야기, 신앙이야기로 울고 웃으며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각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한 분은 강원도로, 한 분은 경기도로 나는 경상도로 오게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도 어렵사리 시간을 내 중간지점인 대전에서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만나 회포를 풀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만의 고충을 나누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했었다. 지금 그분들은 언젠간 아픔을 딛고 일어나 연락을 하시려니 하고 나를 기다려주고 있다.






경상도에 산지도 15년이 넘었다. 친구가 된 것 같은데 다시 보면 아니고, 이제 좀 가까워졌나 싶으면 저 멀리 가 있는 사람들을 보며 여기서는 친구 사귀는 것이 불가능한가 보다 했다. 다 포기하고 싶을 때 또 내 마음에 불꽃이 이는 사람들을 만났고 함께 책을 읽으며 한동안 행복했다. 그런데 지금은 또 저만치 멀어져 있는 그들을 본다. 지역 문제라고 치부하면 좋으련만 솔직히 내가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학창 시절부터 그 많던 친구들 이제는 열 손가락이 아니라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만 남아 있다면 이건 내 문제지. 진짜 T 100 이어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감정이 요동치지 않거나 극 F여서 나를 불쌍히 여기거나 하는 친구들만 남은 것 같다. 남편이 떠난 뒤로는 평범하게 사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어서 피하고, 위로받고 싶은데 막상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알게 되면서 또 피하게 되어 지금은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살아있다.

읽고, 쓰고, 듣고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다.

외로움과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려는 순간순간들에 나는 읽으며 들으며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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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