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향을 따르기보다 만드는 쪽에 가까웠다

by Poroom

이번 퇴사를 지나면서 남은 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확실한 답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엇을 기준으로 보게 됐는지가 더 오래 남았다. 더 버틸 수 있는지보다, 이게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먼저 보게 됐고, 같은 자리를 반복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려고 하게 됐다. 일을 본다는 건 결국 방향을 본다는 뜻이라는 걸 더 분명하게 느끼게 됐다.


그런데 그 기준을 계속 들여다보다 보니, 한 가지가 더 분명해졌다. 나는 방향을 찾는 데서 멈추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나는 방향을 따라가는 사람보다,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엇이 맞는지 먼저 보고, 그걸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정리하고, 앞으로 갈 수 있는 흐름을 만드는 역할에 더 끌렸다.


생각해보면 내가 오래 해온 일들도 비슷했다. 기획을 할 때도, UX를 다룰 때도, 단순히 예쁘게 정리하거나 기능을 나열하는 데 흥미를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대신 사람들이 어디에서 막히는지, 어떤 순서에서는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어떤 순서에서는 이탈하는지, 한 번 쓰고 끝나는 방식이 아니라 반복해도 무리 없이 이어지는 흐름이 무엇인지 계속 보게 됐다. 좋은 결과는 한 번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방식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순히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것보다, 그 일이 어떻게 반복되고 이어질 수 있는지, 어떤 구조로 남는지를 더 보게 됐다. 그래서 방향을 보는 일도 중요했지만, 결국 내가 더 하고 싶었던 건 그 방향을 만들고 설명하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아니라, 다음에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만드는 구조에 더 관심이 갔다.


돌아보면 이번 시즌에서 계속 붙잡고 있었던 질문도 비슷했다. 왜 사람은 방향을 늦게 바꾸는지, 왜 안 되는 걸 오래 붙잡는지, 왜 잘못된 기준을 쉽게 의심하지 못하는지, 왜 다른 방식의 생각은 자꾸 교정의 대상이 되는지, 왜 어떤 일은 반복되고 어떤 일은 반복되지 않는지. 처음에는 전부 따로 떨어진 질문처럼 보였지만, 결국 하나로 이어졌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감각이었다.


그래서 이번 퇴사는 단순히 회사를 떠난 사건이 아니었다. 내가 어떤 역할로 일하고 싶은지 다시 확인한 계기에 더 가까웠다. 나는 주어진 방향 안에서 오래 버티는 사람이라기보다, 방향을 정리하고 제시하는 역할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 흐름을 만들고, 기준을 세우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구조를 다시 짜는 일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걸 다시 보게 됐다.


아직 무엇을 하게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어떤 역할로 일할 것인지를 더 중요하게 보게 됐다. 그 역할은 아마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문제를 보고, 그 문제를 한 번의 감정이나 개인의 한계로 설명하지 않고, 반복될 수 있는 구조의 언어로 다시 정리하는 일. 그게 내가 계속 붙잡고 있는 방향에 더 가까워 보인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방향을 따라가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미 정해진 흐름 안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데 강하고, 누군가는 흐름이 왜 막히는지 보고 다시 짜는 데 강하다. 나는 아마 후자에 더 가까웠다. 그동안은 그걸 능력으로 볼지, 성격으로 볼지, 역할로 볼지가 분명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번 일을 지나면서 그 점이 조금 또렷해졌다.


이제는 내가 어떤 자리에 서 있을 때 가장 잘 움직이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답이 이미 정해진 곳보다, 무엇이 문제인지 다시 정의해야 하는 곳. 사람을 탓하기보다 기준을 보고, 현상을 설명하기보다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곳. 그런 자리에서 나는 더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래서 앞으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단순히 방향을 찾는 일이 아니라, 방향이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에 가까울 것 같다.


결국 방향은 개인이 만드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구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누구는 사람의 문제로 읽고, 누구는 구조의 문제로 읽는다. 나는 점점 후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마 그래서 더 이상 주어진 방향 안에서만 오래 버티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결국 방향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설명하고 싶었던 사람에 더 가까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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