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 부서진 몸이 캔버스가 될 때

통증이 뮤즈가 된 여자

by 응시

1. 몸이 부서지다 — 통증의 시작

1925년 9월 17일. 멕시코시티.

열여덟 살 소녀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했다. 쇠 난간이 소녀의 몸을 관통했다. 척추 세 곳. 쇄골. 갈비뼈. 골반 세 곳. 오른쪽 다리 열한 곳.

의사들은 말했다. 살 수 없을 거라고.

살았다. 하지만 같은 몸이 아니었다.

평생 서른두 번의 수술. 코르셋을 착용한 채로 사는 삶. 걸을 수 있는 날과 없는 날이 반복되었다. 안 아픈 날은 없었다. 덜 아픈 날이 좋은 날이었다.

2. 통증에 형태를 주다 — 치유가 아니라 증언

누워 있는 시간이 길었다. 어머니가 침대 위에 거울을 달아주었다. 프리다는 누운 채로 자기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그리기 시작했다.

자화상. 55점이 넘는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나 자신이니까." 프리다는 이렇게 답했지만, 나는 다르게 읽는다. 누워서 볼 수 있는 것이 자기 얼굴뿐이었기 때문이다.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 형식을 만든 것이다.

《부러진 기둥》. 프리다의 몸이 세로로 갈라져 있다. 척추 대신 기둥이 서 있는데 그 기둥도 금이 가 있다. 온몸에 못이 박혀 있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데, 얼굴은 무표정이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픈 몸을 보여줄 뿐이다.

예술이 통증을 줄여주었을까. 아니다. 코르셋을 한 채 캔버스를 세우고, 진통제를 먹고, 붓을 들고, 몇 시간 그리다 쓰러지고, 다음 날 또 붓을 든다. 그리는 동안에도 아팠다.

예술은 통증을 완화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일을 했다. 통증에 형태를 준 것이다.

이름 없이 몸 안에서 떠도는 고통에, 눈에 보이는 형태를 부여하는 것. 못 박힌 몸. 갈라진 척추. 형태가 생기면 바라볼 수 있다. 바라볼 수 있으면 '나'와 '통증'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 캔버스 한 장의 거리. 통증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통증과 자기 사이에 그림 한 장이 끼어든 것이다.

그래서 프리다의 자화상은 치유가 아니라 증언이다.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그린 것이 아니라,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록한 것이다. 누군가 봐주기를. 이것이 진짜라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앙드레 브르통이 프리다를 초현실주의자라고 불렀을 때, 프리다는 거절했다. "나는 꿈을 그린 적이 없다. 나는 내 현실을 그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통증은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아픈 사람은 당하는 사람이다. 몸에 당하고, 수술에 당하고. 그런데 붓을 드는 순간, 능동이 된다. 못 박힌 몸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못 박힌 몸을 그리는 것. 같은 통증인데, 당하면 고통이고 기록하면 작품이 된다.

프리다를 통증 속에서 살게 한 것은 고통이 줄어서가 아니다. 고통 앞에서 능동이 될 수 있는 유일한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 아픈 여자를 선택하는 남자 — 통제와 자극

디에고 리베라. 멕시코 벽화운동의 거장. 프리다의 남편.

디에고는 건강한 여자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 코르셋을 한 여자, 절뚝거리는 여자, 통증 속에 있는 여자를 선택했다.

왜.

첫째, 아픈 여자는 떠나지 못한다. 물리적으로 이동이 제한되어 있고, 경제적으로 의존적이다. 디에고가 수십 번 외도를 해도 프리다가 떠나지 않은 것을 사랑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아픈 몸이 선택지를 줄였다. 타인의 통증은 상대를 묶어두는 가장 확실한 끈이다.

둘째, 아픈 여자의 강렬함은 자극이 된다. 디에고의 벽화는 거대하고 공적이고 이념적이다. 프리다의 자화상은 작고 사적이고 신체적이다. 디에고는 자기에게 없는 것 — 몸에서 우러나오는 개인적 진실 — 을 프리다에게서 보았다. 자기 안에 없는 것을 상대에게서 찾는 것. 이것이 투사다.

통제와 자극. 떠나지 못하니 안전하고, 강렬하니 유용하다. 이 두 가지가 사랑의 이름으로 작동할 때, 뮤즈 구조가 완성된다.

카페에서 칼로 손가락을 찌르는 도라에게 피카소가 끌렸듯, 코르셋을 한 프리다에게 디에고가 끌린 것이다. 상처 있는 여자에게 끌리는 남자. 이 시리즈에서 반복되는 패턴의 가장 적나라한 형태다.

4. 통증이 이중으로 소비되다 — 프리다의 뮤즈, 디에고의 뮤즈

프리다의 통증은 두 방향으로 소비되었다.

프리다 자신에게, 통증은 예술의 원천이었다. 통증이 프리다를 침대에 묶었고, 침대가 거울 앞에 놓았고, 거울이 자화상을 만들었다. 통증이 없었다면 프리다는 누워서 자기 얼굴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프리다의 예술은 통증이 만든 것이다.

디에고에게, 프리다의 통증은 뮤즈였다. 디에고는 프리다를 배신하면서 배신당한 프리다의 강렬함에서 영감을 받았다. 프리다의 여동생과 관계를 가졌고, 프리다가 무너졌고, 무너진 프리다의 눈에서 디에고는 자기 예술의 깊이를 보았다.

프리다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에는 두 번의 큰 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전차 사고이고, 하나는 디에고다."

사고라고 말했다. 선택이 아니라 사고. 전차가 몸을 부쉈듯, 디에고가 마음을 부쉈다. 버스 사고는 한 번 일어나고 끝났지만 후유증은 평생이었다. 디에고도 마찬가지다. 만남은 한 번이었지만 배신은 반복되었다. 외도, 화해, 외도, 이혼, 재결합, 외도. 수술과 회복과 통증의 순환이 그대로 관계에서 반복된다.

같은 통증을 두 사람이 다르게 써먹었다. 프리다는 자기 통증으로 자기 예술을 만들었고, 디에고는 프리다의 통증으로 자기 영감을 만들었다. 이것이 뮤즈 구조의 가장 어두운 층위다.

5. 통증의 주인이 바뀌다 — 디에고가 사라지는 자화상

그런데 프리다의 자화상에서 디에고는 점점 사라진다.

초기 — 《디에고와 나》. 프리다의 이마에 디에고의 얼굴이 박혀 있다. 지울 수 없는 존재.

후기 — 프리다 혼자. 부서진 몸, 또렷한 눈.

통증의 소유권이 이동한 것이다.

초기에는 프리다의 통증이 디에고에게 속해 있었다. 디에고가 부수고, 디에고가 영감을 뽑고, 프리다는 그 구조 안에서 그렸다. 후기로 갈수록 프리다는 자기 통증을 자기 것으로 가져온다. 남자가 나를 어떻게 부수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의 부서짐을 어떻게 기록하느냐. 당하는 자에서 쓰는 자로.

뮤즈에서 작가로의 전환. 소비당하는 통증에서, 자기가 주인인 통증으로.

6. 비바 라 비다 — 통증의 끝에서

프리다의 마지막 그림은 수박을 그린 정물화다.

잘린 수박의 붉은 과육 위에 이렇게 쓰여 있다. "비바 라 비다." 삶이여 만세.

평생 통증과 같이 살았던 여자가 마지막에 남긴 문장이 삶의 찬양이라는 것. 한 번도 부서지지 않은 사람의 "비바 라 비다"는 가볍다. 서른두 번 수술받고, 두 번 사고당한 사람의 "비바 라 비다"는 무겁다.

프리다는 일기장에 썼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1954년. 마흔일곱.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은 남았다. 부서진 몸이 남긴 것은 통증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기록이 보는 사람에게 묻는다.

당신의 통증은 누구의 것인가. 당신은 그 통증의 주인인가.

월, 수,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