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기가 그의 소설이 될 때
1. 재즈 시대의 부부 — 빛나는 시작
1920년대 미국. 재즈 시대.
젤다 세이어. 앨라배마 판사의 딸. 금발. 활기차고 재치 있고 두려움이 없는 여자. 파티에서 분수대에 뛰어들고, 낯선 사람에게 거침없이 말을 걸고, 방 안의 공기를 바꾸는 사람.
스콧 피츠제럴드는 군 복무 시절 파티에서 젤다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젤다는 약혼을 파기했다. 스콧에게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낙원의 이쪽》이 대성공한 뒤에야 젤다는 결혼에 동의했다.
"1920년대가 곧 그들이었다." 릴리안 기시의 말이다.
뉴욕 사교계의 중심. 파리와 리비에라를 오가는 삶.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과의 교류. 화려했다. 빛났다.
스콧이 반한 것은 젤다의 외모만이 아니었다. 젤다의 말, 젤다의 재치, 젤다의 에너지. 방에 들어오면 공기가 달라지는 여자. 스콧에게 없는 것이 젤다에게 있었다. 생동감. 즉흥성. 두려움 없음.
스콧은 이렇게 느꼈을 것이다. 당신은 특별하다고.
이것이 시작이다. 이상화.
나르시시즘의 첫 번째 단계.
2. 일기에서 소설로 — 사랑이라는 이름의 흡수
스콧은 젤다의 말을 메모했다.
젤다의 재치 있는 한마디, 파티에서의 행동, 감정의 기복, 일상의 디테일. 작가라면 누구나 주변에서 소재를 가져온다. 여기까지는 착취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스콧은 더 나아갔다. 젤다의 일기에서 문장을 가져왔다. 편지에서 표현을 뽑아 자기 소설에 넣었다. 《아름답고 저주받은 자들》의 여주인공은 젤다의 말투로 말하고, 젤다의 행동을 하고, 젤다의 감정을 느낀다. 스콧 최고의 걸작 《위대한 개츠비》에도 젤다의 언어가 녹아 있다.
한 편집자가 젤다의 일기를 독립적으로 출판하자고 제안했다. 스콧은 거부했다. 일기가 출판되면 자기가 어디서 재료를 가져왔는지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착취가 시작된다. 가져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원래 주인이 쓰지 못하게 만든 것이 문제다.
카미유에게서 로댕은 작품을 가져갔다. 피카소는 도라의 얼굴을 가져갔다. 디에고는 프리다의 통증을 가져갔다. 이것들은 눈에 보인다. 조각, 그림, 외도 — 증거가 있다.
스콧은 젤다 자체를 가져갔다. 말투, 재치, 감정, 경험 — 젤다를 젤다이게 만드는 모든 것이 스콧의 소설 안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그 흡수는 "당신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찬사로 포장되었다.
사랑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흡수.
나르시시즘의 두 번째 단계.
3. '나'를 '우리'로 — 뮤즈에게 허락되지 않는 1인칭
젤다도 글을 썼다. 단편소설, 산문, 에세이.
하지만 발표된 작품의 상당수가 스콧의 이름이나 부부 공저로 실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젤다의 이름으로 실으면 원고료가 낮았고, 스콧의 이름을 붙이면 올라갔다.
결정적 사건. 젤다가 자전적 소설 《왈츠는 나와 함께》를 썼다. 자기 경험을 자기 이름으로. 스콧은 격분했다. 자기가 쓰고 있던 《밤은 부드러워》와 소재가 겹친다고.
젤다의 경험이다. 젤다의 삶이다. 그런데 그 삶을 쓸 권리가 남편에게 있다는 전제. 스콧은 젤다에게 소설의 상당 부분을 수정하도록 요구했고, 그제야 출판을 허락했다.
더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젤다가 자전적 에세이에서 '나(I)'라는 1인칭을 사용했을 때, 스콧은 이것을 '우리(We)'로 고치도록 요구했다.
'나'를 '우리'로.
이 교정이 뮤즈 구조의 본질이다. 뮤즈에게는 1인칭이 허락되지 않는다. 뮤즈의 경험은 언제나 예술가의 '우리' 안에 편입된다. 독립된 '나'로 존재하는 순간, 차단된다.
카미유가 독자적 전시를 하려 하자 로댕의 후원이 줄었다. 젤다가 독자적 서사를 쓰려 하자 스콧이 막았다. 같은 구조다.
이것이 나르시시즘의 세 번째 단계.
평가절하.
"당신은 특별하다"에서 시작해서,
"당신의 특별함은 내 것이다"를 거쳐,
"당신은 혼자서는 안 된다"에 도달하는 것.
4. 소멸 — 다른 뮤즈들과의 차이
여기서 젤다의 비극이 다른 뮤즈들과 갈라진다.
카미유는 작품을 빼앗겼지만, 조각가라는 정체성은 정신병원에서도 남아 있었다. 도라는 얼굴을 해체당했지만, 은둔이라는 형태로 자기를 지켰다. 프리다는 통증을 소비당했지만, 자화상을 통해 통증의 주인을 되찾았다.
빼앗기고, 해체당하고, 소비당하는 것은 — 아프지만, 원본이 남는다. 부서진 조각이라도 남는다.
젤다에게는 원본이 남지 않았다.
젤다의 말투는 스콧의 소설 속 여주인공의 대사가 되었다. 젤다의 경험은 스콧의 플롯이 되었다. 젤다의 감정은 스콧의 문체가 되었다. 원본이 복사본 안에 녹아서 분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착취가 아니라 소멸이다. 착취는 되찾을 수 있다. 카미유의 작품은 사후에 재평가되었다. 프리다의 자화상은 디에고의 벽화보다 유명해졌다. 하지만 스콧의 소설 안에 녹아든 젤다의 문장을 분리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은밀한 형태의 소멸.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착취로 인식되지 않는 소멸. 사랑의 이름 아래서 일어났기 때문에 폭력으로 인식되지 않는 소멸.
5. 순환 — 병원비를 벌기 위해 아내의 고통을 팔다
젤다는 글 외에도 발레와 회화에 재능을 보였다. 서른 가까운 나이에 발레에 도전해 유명 발레단 입단 문턱까지 갔다가 좌절했다. 이 과정에서 신경쇠약이 시작되었다.
1930년대부터 정신병원을 전전했다. 여기서 잔인한 순환이 시작된다.
스콧은 젤다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 그 글의 재료는 젤다의 경험이었다. 《밤은 부드러워》는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아내를 둔 남자의 이야기다. 아내의 붕괴를 소설로 써서 돈을 벌어 아내의 병원비를 내는 구조.
심리적 착취가 의존을 만들고, 의존이 경제적 종속을 만들고, 경제적 종속이 착취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세 개가 동시에 돌아간다. 어느 하나를 끊으면 전체가 무너지지만, 세 개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끊을 수 없다.
스콧은 1940년 알코올 중독에 의한 심장마비로 죽었다. 마흔넷이었다.
6. 1948년, 불 — 이름을 되찾는 데 걸린 시간
스콧이 죽은 뒤에도 젤다는 병원에 있었다.
1948년 3월 10일. 노스캐롤라이나 애슈빌, 하일랜드 정신병원. 화재가 발생했다. 젤다는 그 불에 죽었다. 마흔일곱이었다.
카미유는 무연고 묘지에 묻혔다. 나혜석은 행려병자로 죽었다. 젤다는 불에 탔다. 자기 이름을 잃은 여자들의 끝. 형태는 다르지만 구조는 같다.
그런데 죽음 이후에 느린 반전이 시작되었다.
21세기에 들어 젤다의 작품이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젤다의 이름으로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표지에서 '피츠제럴드'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지워져 있는 책. 스콧의 아내가 아니라 재즈 시대를 대변하는 작가로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소멸된 것은 되찾을 수 있는가.
완전히는 아닐 것이다. 스콧의 소설에 녹아든 젤다의 문장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은 할 수 있다.
젤다의 이름을 젤다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
'스콧의 아내'가 아니라 '젤다 피츠제럴드'로. '뮤즈'가 아니라 '작가'로. '우리(We)'가 아니라 '나(I)'로.
이름을 되찾는 데 70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