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세계를 가진 여자, 투사를 거부한 여자
1. 파괴되지 않은 여자 — 하나의 예외
카미유는 감금당했다. 도라는 지워졌다. 프리다는 부서졌다. 젤다는 소멸되었다. 황진이는 소비되었다.
이 시리즈의 모든 뮤즈는 파괴되었다. 작품을 빼앗기고, 얼굴을 해체당하고, 통증을 소비당하고, 이야기를 흡수당했다. 형태는 달랐지만 결말은 같았다.
루 안드레아스-살로메는 파괴되지 않았다.
1861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1937년 독일 괴팅겐에서 75세로 사망. 그 사이에 니체를 흔들고, 릴케를 변형하고, 프로이트의 동료가 되었다는 것으로 이 여자를 기억하는 것은 — 사실 이 여자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소비다.
루 살로메를 "세 거장이 사랑한 여자"로 부르는 순간, 뮤즈 구조가 다시 작동한다. 남자의 이름으로 여자를 정의하는 구조. 당대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 '러시아에서 온 뮤즈'라 불린 이 여자가 파괴되지 않은 이유는, 그 호칭 바깥에 자기 세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2. 19권의 책 — 자기 세계를 가진 여자
루 살로메는 평생 19권의 책을 썼다.
소설 15편을 포함해 철학, 심리학, 문예비평에 이르는 저작. 이 숫자를 먼저 봐야 한다. 뮤즈라는 호칭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양이다. 19권은 남자의 영감이 되기 위해 쓸 수 있는 양이 아니다. 자기 세계를 세우려는 사람이 쓰는 양이다.
주요 저서.
《신과의 투쟁》(1885). 24세에 쓴 첫 장편소설.
《작품에 나타난 니체》(1894). 니체에 대한 최초의 본격 비평서 중 하나.
《에로티시즘》(1910).
《나르시시즘의 이중성》(1921). 정신분석 이론에 독창적 기여.
《라이너 마리아 릴케》(1928).
《프로이트에 대한 나의 감사》(1931).
이 목록이 말해주는 것. 루 살로메는 니체와 릴케를 만나기 전부터 작가였다. 프로이트를 만나기 전부터 여성의 성에 관해 글을 쓰고 있었다. 세 거장은 루의 인생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루가 이미 가지고 있던 세계의 한 부분이었다.
3. 스물네 살의 작가 — 《신과의 투쟁》과 니체 비평의 선구자
《신과의 투쟁》(1885). 스물네 살의 루 살로메가 쓴 첫 소설.
베를린에서 파울 레와 동거하며 사회학자·작가들과 교류하던 시기. 어머니가 루의 생활을 못마땅해하자, 루는 "베를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미 이 에피소드가 말해준다. 루는 외부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았다. 필요하면 썼다. 그리고 그것이 가족을 설득하는 방식이었다.
《작품에 나타난 니체》(1894).
이것이 더 중요하다. 니체가 아직 살아있을 때(정신적으로는 무너진 상태였지만) 쓴 니체 비평서.
니체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초기 저작 중 하나다. 루는 니체를 사랑한 여자가 아니라, 니체를 읽은 비평가였다.
이 책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 카미유는 로댕을 비평하지 않았다. 도라는 피카소를 분석하지 않았다. 젤다는 스콧에 대한 책을 쓰지 않았다. 뮤즈는 예술가를 비평할 수 없다. 비평의 위치에 서는 순간 뮤즈 구조가 깨지기 때문이다.
루 살로메는 니체에 대한 비평서를 썼다. 이 책 하나로 뮤즈 구조 바깥에 섰다.
4. 나르시시즘의 이중성 — 프로이트를 확장한 이론가
1911년, 쉰 살의 루가 정신분석에 뛰어들었다. 생애 마지막 25년을 정신분석에 헌신했다.
루의 가장 독창적 기여는 나르시시즘 이론의 확장이다.
프로이트에게 나르시시즘은 병리 — 정상적 대상 사랑에 도달하지 못한 미성숙 상태였다. 루 살로메는 여기에 반대했다. 《나르시시즘의 이중성》(1921)에서 루는 주장했다. 나르시시즘은 단순한 장애가 아니라 자기애인 동시에 우주와의 연결이라고. 자기에 대한 사랑은 존재 전체에 대한 사랑의 원천이며, 창의성과 삶의 에너지의 일부라고.
이것이 왜 독창적인가.
프로이트의 체계 안에서 나르시시즘은 극복되어야 하는 단계였다. 루는 그것을 뒤집어 창조의 원천으로 재정의했다. 예술가가 자기 세계를 만드는 에너지의 근원으로. 그리고 이것은 루 자신의 삶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기도 했다. 루는 자기를 사랑하는 여자였다. 그 사랑이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는 힘의 원천이었다.
프로이트도 이를 인정했다. "당신의 재능은 매번 나보다 뛰어나고 오히려 내 생각을 완성시켜 주었소."
루 살로메는 여성의 성에 관해 정신분석을 한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이다. 1911년에 이미 여성 성의 심리학에 관한 글을 썼다. 프로이트를 만나기 전이다. 프로이트가 여성을 이론화하는 데 한계를 가졌던 자리에서, 루는 여성의 경험에서 출발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5. 청혼을 거절할 수 있었던 근거 — 투사를 인식한 눈
자기 세계가 있었기에, 루는 세 남자의 투사를 거부할 수 있었다.
1882년 로마. 스물한 살의 루를 만난 니체는 두 번 청혼했다. 루는 두 번 다 거절했다. 니체의 지성을 존경했지만, 결혼이 자기 독립을 위협할 것을 알았다.
니체가 자기에게 투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1897년 뮌헨. 스물두 살의 릴케가 서른여섯의 루에게 영혼을 바쳤다. 루는 릴케의 이름을 '르네'에서 '라이너'로 바꾸고, 글씨체를 교정시키고, 시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뮤즈이면서 스승이었다. 하지만 릴케의 어두운 영혼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관계를 정리했다. 적절한 시점에 빠져나온 것이다.
1911년 바이마르. 쉰 살의 루가 프로이트를 만났다. 프로이트는 루를 즉시 '수요일 모임'에 받아들였다. 이번에는 뮤즈가 아니라 동료였다. 투사를 넘어선 협업이었다.
세 경우 모두 루는 투사를 투사로 알아보았다.
다른 뮤즈들은 투사를 사랑으로 착각했다. 로댕이 카미유에게 투사한 아니마를 카미유는 인정으로 받아들였다. 디에고가 프리다에게 투사한 것을 프리다는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스콧이 젤다에게서 가져간 것을 젤다는 부부의 공유라고 믿었다.
루는 착각하지 않았다. 자기 세계가 있는 사람은 타인의 투사가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거울이 되어주지 않아도 자기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6. 거울을 거부하면 — 파괴의 방향이 바뀐다
그런데 대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루를 니체에게 소개한 파울 레. 루와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프로이트의 조교 빅토르 타우시크. 루와의 관계에서 고통받다 자살했다. 릴케는 평생 루를 기다리며 고독 속에 살다 죽었다.
니체는 루에게 거절당한 충격에서 오래 회복하지 못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어떤 문장들에는 루의 그림자가 있다.
루 살로메 자신은 파괴되지 않았다. 하지만 루에게 투사한 남자들이 파괴되었다.
카미유·도라·프리다·젤다의 경우 — 거울이 깨졌다. 뮤즈가 파괴되었다. 루 살로메의 경우 — 거울을 들여다보던 사람이 깨졌다. 투사한 남자가 파괴되었다.
파괴의 방향이 역전된 것이다.
이것이 뮤즈 구조의 냉혹한 진실이다. 누군가는 깨진다. 거울이 되어주면 거울이 깨지고, 거울이 되기를 거부하면 거울을 필요로 했던 사람이 깨진다. 이 구조 안에서 아무도 안 깨지는 방법은 없다.
7. 왜 루 살로메만 가능했는가 — 자기 세계라는 조건
루 살로메의 생존을 "강한 여자의 의지"로 설명하면 안 된다.
자기 세계가 있으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교육. 루는 취리히 대학에서 철학, 신학, 논리학, 예술사를 공부했다. 여성이 대학에 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던 시대에. 카미유에게 없었고, 프리다에게 부족했고, 황진이에게는 불가능했던 것.
경제적 독립. 루는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고, 평생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았다. 젤다가 스콧의 경제력에 종속되면서 탈출이 불가능해진 것과 정반대다. 루의 글은 생계 수단이기도 했지만, 생계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쓸 수 있는 조건으로서 글이 있었다.
자기 세계. 19권의 책. 니체 비평서. 나르시시즘 이론. 거울 말고도 보여줄 것이 있는 사람. 남자의 투사가 거두어져도 사라지지 않는 자기.
이 세 가지가 갖춰졌을 때 투사를 인식하고 거부할 수 있었다.
루 살로메의 생존은 희망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잔인한 이야기다. 구조적 조건이 없으면 아무리 강한 여자도 깨진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카미유가 루 살로메만큼 강하지 못해서 감금당한 것이 아니다. 카미유에게 취리히 대학이 없었을 뿐이다. 프리다에게 경제적 독립이 없었을 뿐이다. 황진이에게 자기 이름으로 출판할 지면이 없었을 뿐이다.
루 살로메는 "거울이 되기를 거부한 여자"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 거울이 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가진 여자였다. 그 조건이 없으면 거부 자체가 선택지가 아니다.
그래서 이 편의 마지막 문장은 이것이다. 뮤즈 구조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개인의 강인함이 아니라, 자기 세계를 세울 수 있는 조건이다. 그 조건은 혼자 만들 수 없다. 교육받을 권리, 경제적 독립, 자기 언어로 쓸 지면 — 이것은 사회가 만드는 것이다.
루 살로메는 예외였다. 그 예외가 더 많아지려면, 예외를 가능하게 한 조건이 더 많은 여자에게 주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