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들은 유형이기도 무형이기도 했다. 존재하기도 존재하지 않기도 했다.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가져다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우겼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행하는 일이었고 그러므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니 실존하는 것이라고 명명할 수 있었다.
조각 조각난 마음을 이어 붙여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상처가 나지 않은 곳이 없고 모난 것들 투성이다. 까슬까슬한 표면. 나는 쌓여있는 마음들에 사포질을 포기하고 냅다 이어버린다. 그것들은 서로의 곁에 차곡히 붙는다. 서로가 서로의 조각이었다. 내가 너고 너가 나였다. 그들은 그렇게 결국 하나가 되었고 온전한 ‘나’가 되었다. 나는 조각이자 전체였고, 전체이자 조각이었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온몸으로 햇살을 받아내는 그 순간이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전율이 오른다. 전기가 찌릿찌릿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햇빛 없이 살 수 없어. 식물이 광합성을 해서 살아가듯이 말이야. 인간은 동물이자 식물이야. 신기한 존재지, 너가 말한다.
너는 내게 식물이다. 동물보다는 그것에 가깝다. 바람이 불면 너는 흐들거리며 흔들거린다. 햇빛이 있을 때는 눈을 꼭 감고 햇빛을 온전히 느낀다. 그것은 한자리에 뿌리를 박고 있는 식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너를 나의 집에 놓인 아스파라거스 나누스라고 말하고 싶다. 단단히 물을 가득 머금고 있는 파키라는 아닌 것 같다. 너는 곧 말라 죽을 것 같으면서도 꾸준히 살아내고 있는 그 아스파라거스 나누스.
그런 네가 한없이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면 이 세상에 없는 움직임을 보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게 니가 발레를 선택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너에게 이 말고도 딱 떨어지는 무언가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그건 너를 위해 태어난 것일지도 몰라.
밤의 광장을 거닐어본다. 아무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가끔 지나가는 차 소리만이 귀를 메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반짝이는 밤거리의 불빛이 있다. 새들도 지저귀지 않는 밤이다. 나는 그렇게 그 걸음을 그냥 걸어간다. 무한한 발자국의 움직임, 그것에 생명이 깃들어 있다. 이 움직임은 어디까지나 영원할 것이고 어디까지나 살아 숨 쉴 것이다.
우연에 기대본다. 아니 우연에게서 발을 떼본다. 우연의 맛은 달콤하다. 갑작스레 너를 만나 한없이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의 초콜릿. 언제까지나 길목 귀퉁이를 돌아 니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너를 찾아 나선다. 어떻게서든 발버둥을 쳐본다. 너를 만나지 못하는 날도, 만나는 날도 있다. 나는 너를 만날 때까지 그렇게 계속해서 걷는다. 나는 걷는 사람이다. 그것은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고, 나는 결국 너를 마주하게 될 테니까. 너와 계속해서 손을 마주 잡고 갈 테니까.
살이 부르텄다. 무의식중에 긁고 또 긁은 무릎 뒤는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피가 철철 났다. 그걸 두 눈으로 보지 못하는 나는 그저 긁고 앉아 있었다.
바세린
살을 녹여본다. 살살살. 녹아지는 건 내 마음인가 나의 살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