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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롬 Nov 07. 2024

너의 발바닥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너는 언제나 날아갈 듯이 굴었다. 당장이라도 어딘가 저, 멀리로. 모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모두는 빛으로 가득한 너를 향해 그저 웃었다.


나는 언제나 너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한치의 미련을 가져주면 안 되겠냐고. 이것은 단 한 번도 감각에 닿지 못한 말. 소리로도, 눈빛으로도, 삶의 모습이 퍼렇게 선연한 핏줄에게까지도 전하지 못한 말. 너에게서 튀어나올 검정의 그것이 두려워, 두려워.


나는 결국에 나의 검정을 토해낸다. 너는 그저 웃는다.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너는 그렇게 웃었다. 너의 발바닥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뚫린 발바닥 밑으로 빨강이 흐른다. 똑똑똑, 고이지 못하고 흐른다.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세상을 모두 잃어버린 이처럼 나는 그렇게 엉엉 울었다. 아니, 세상에 태어난 아이처럼이었을까. 몸을 타고 흐르던 물이 모두 메말라 간다. 너는 손을 내민다. 제 몸에 물 하나도 간직하지 못한 니가. 빨강이라곤 모두 발 아래로 흘려버린 니가. 그 미소를 하고선.


니가 내민 보드라운 손길을 느낀다. 한껏 투정을 부리다가 사탕을 손에 쥐어 든 아이처럼 나는 방긋이 웃는다. 방금 지나간것이 마치 없던 것처럼. 너는 다시 걸어간다. 뚜벅 뚜벅. 뚫린 발바닥을 하고서. 


나는 다시 이 사탕을 먹고 너를 잊겠지. 언젠가 슬쩍 보이는 검정에 눈물지으면 너는 다시 한번 내게 걸어오겠지. 나는 그렇게 너를 잊고 너를 찾고, 너를 찾고 또 잊고. 너는 언제나 그때마다 차곡차곡 걸어오겠지.


걸음을 걷는 너의 발바닥에 빨강이 사라졌다. 빨강조차,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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