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어쩐지 마주한 적 없던 것들이 눈앞에 자꾸만 나타난다. 인생에서 그다지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얘기하면 더 편할까. 먼지가 흩날리고 싫은 사람의 흔적이 지나간다. 아 저것은 언젠가 곁을 지나간 이의 발톱이다. 그날 그것을 본 것은 가장 역겨운 일이었다. 그 모든 것이 바람에 실려 지나간다.
삶을 돌이켜서 끌어다 놓는다. 지금 이곳에. 아니 너 단단히 여기 앉아 있어라 타이른다. 그러지 않고서는 삶이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이리저리 움직여 온갖 군데로 흩어지려 한다. 때로는 그냥 바닥에 드러눕는다. 하기 싫다고, 아무것도. 그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 어떤 양육자가 될 것인지 선택한다. 너의 이 모든 투정을 다 받아내는 어미가 될지, 아니면 고소한 버터 냄새를 아침 거리에 가득히 채우던 스트라스부르크 빵집의 점원처럼 네가 어떤 빵을 고르는지 서두름이 없이 기다리는 사람이 될지.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이젠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나의 움직임이며 나의 바람이다.
삶에게 요구했다. 지금 달리라고. 삶은 떼를 쓴다. 싫다고. 너는 온갖 떼를 쓰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죽기보다 싫다며 다시 한번 말한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바라보는 너를 보면 모든 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진다. 하지만 내 손에는 들려있는 책 한 권. 그리고 그것을 꽉 쥐고서 다시 한번 너를 쳐다본다. 외친다. 나가
너는 억지로 걸음을 뗀다. 눈에는 아직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다. 다시 한번 나를 쳐다본다. 나는 엄격한 눈빛으로 다시금 너를 본다. 내 눈에는 강인함 어쩌면 잔인함이 서려 있다. 나는 너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는다. 눈물로 일렁이는 너의 눈에 차마 담기지 못했던 약간 풀려있는 신발 끈을 고쳐 매어준다. 잘못 디뎌 네가 넘어지지 않도록. 그리고 툭툭 일어나 다시 내 걸음을 간다.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너의 시야에서 내가 사라질 때까지. 무른 내 마음이 너에게 만큼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너의 발걸음이 들려오지 않을 때즈음 나는 고개를 돌린다. 너는 언제 그랬냐는 양 바닥을 통통 튀는 걸음을 하고 있다. 옅게 흐들 거리는 들꽃에 인사를 건네고, 잠시 멈춰 눈앞에 불어오는 바람을 물결에 이는 파동처럼 옅은 미소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
눈물이 고인다. 고여버린 눈물의 무게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군다. 네가 다시 한번 좌절을 하고 돌아오는 그날, 물기 어린 눈으로 돌아오는 그날, 나는 너의 어깨를 꼭 안아주고 다시 너를 멀리 밀어내야 한다. 다시 한번 고개를 들고 심호흡 한번, 후. 눈을 감는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