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내 안에서 꿈틀대는 것들. 도저히 생각하기조차 싫지만 결국 마주해야 끝나는 것. 크고 깊게 베인 손등의 상처는 그대로 두어도 낫곤 했는데 도대체 이것들은 자연스레 없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플라스틱 같다. 천년이고 이천년이고 썩어 없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고이 있을 그런.
그것들을 들여다본다. 스물스물 실눈을 뜨고서는 아주 살짝, 들춰본다. 우글우글한 데 몰려 엉켜있는 그것들은 정말 꼴 보기가 싫다. 다시 덮는다. 안돼 이건 못 하겠어. 눈을 돌리고 꾹 감아버린다. 할 수 없어. 어, 할 수 없어.
귀가 아닌 심장으로 들리는 소리. 음파로 존재하는 것. 세상에 형용할 수 없는 것으로 와닿는 소리가 들린다. 어쩌면 구름이고 어쩌면 바람이며 어쩌면 한줄기 햇빛일지도 모르는 것이 내게로 온다. 징그럽게 움직이고 있는 그것 아래서 무언가가 울린다. 느낀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든다. 눈을 꼭 감고 손조차 대고 싶지 않은 바로 그것을 다시 한번, 단번에 망설임 없이 열어젖힌다.
사라졌다.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간 거지. 영문을 알 길이 없다. 소리의 웃음이 보인다. 아들의 죽음마저 품는 마리아의 미소를 띠고 있다. 어떤 것도 괜찮다는 듯, 모든 것을 안다는 듯. 우악스러운 그 꿈틀거림이 모두 사라졌다. 좀 전까지 몸서리치던 것이 무색하게도, 단 한 순간에.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세상에게 묻는 것들은 메아리로 돌아온다. 질문은 질문으로, 답은 답으로. 모든 것이 나로써 태어나고 나로써 소멸된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에 휘청인다. 하염없이 휘청이다 이내 걸음을 똑바로 한다. 거기까지. 여기까지. 자, 이제 다음. 다음. 다음.
허리를 곧게 편다. 두 허벅지에 힘을 주고 몸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본다. 조금 전까지 잔뜩 들어가 있던 몸의 힘을 살짝이 빼어 세상을 바라본다. 고요, 그뿐이다.
심장에 아로새겨지는 생채기.
가슴으로 기억되는 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