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대한민국의 근로소득자, 그중에서도 소위 화이트컬러라는 사무직, 더 쉽게 말해 직장인들 가운데 이직을 한 번이라도 꿈꿔보지 않은 자는 없는 것 같다. 이곳 브런치에서만 보더라도 이혼이라는 이슈 다음에 많은 글이 이직 내지는 퇴사 관련 글이지 싶다.
이직을 고민 중이라면 한 가지 묻겠다. 왜 이직하려고 하는 것인가.
이직이라는 이슈에 대해 고찰하는 글과 분석하는 글, 조언하는 글, 다양한 장단점 등을 이야기하는 글들을 여기 브런치에서도 조금의 노력만 들인다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여의도'라는 말로 대표될 수 있는 증권가(를 비롯한 투자업계)의 이직 문화에 대한 글은 쉽기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왜냐하면 그곳이 좀 특이하기 때문이다.
과연 여의도는 무엇이 다르고,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것인지 얘기해 보겠다. 이야기를 한번 다 들어본 뒤에 저 질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나아가 그 답을 찾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아니, 여의도가 뭐 대수라고. 이직은 이직이지?'
사실 여의도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직장생활은 직장생활일 뿐, 별다른 것은 없다. 딱 하나, 이직에 관한 것만 빼고. 왜냐하면 대한민국 업계 중 여의도의 금융업계, 특히 투자업계만큼 이직이 흔한 곳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흔한 정도가 아니다. 대략 이 바닥에서 10년 넘게 근무를 했다면, 2번 이상 이직한 사람이 그 이하인 사람보다 많을 정도다. 정확히 측정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을 토대로 생각해 보았을 때 매우 보수적으로 잡은 숫자가 저 정도이다. 그만큼 이직은 여의도에서는 일상이다.
그중에서도 소위 말해 프런트 라인, 즉 펀드매니저나 딜러, 브로커 등 투자업무에 직접적으로 관여되는 직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현상이 더욱 심하다. 해당 분야 직군의 경우에는 한 회사에 3년 정도 머물렀다면 이제 슬슬 이직할 때가 되었다는 얘기를 듣기 일쑤다. 우연찮게 길에서 동종 직군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면 제일 처음 하는 인사가 '지금은 어디에 계세요?'이다.
왜 여의도에서는 이직이 흔할까? 스스로 이직을 해보기도 하고, 사람을 채용해 보기도 한 경험들을 통해서, 그리고 여기서 지금까지 지내온 경험들을 통해서 도출해 낸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핵심 경쟁력 요소는 인적자원
여의도에서 회사를 하나 차리려면 책상하고 컴퓨터, 그리고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 즉 인적자원이 회사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어디든 안 그러겠냐만 여긴 유독 심하다. 그럴 수밖에. 다른 특별한 원천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복잡한 기계장치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금융업, 특히 투자업에서는 다른 차이를 낼 만한 것이 많지 않다. 그 조직의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인사이트, 네트워크, 아이디어, 업무 능력, 성향 등등이 차이를 만들어 내는 핵심 요인이다.
다른 경쟁력 창출 요소는 없을까? 물론 있다. 리스크 관리나 투자 프로세스 등과 같은 것이 있지만, 하나의 선도 회사가 잘 만들어 둔 프로세스가 있다면 금방 가져다가 내 것인 양 따라 쓰게 된다. 독특한 상품도 금방 그 개념을 잘 카피해서 따라간다. fast-follow 전략이 여기만큼 잘 먹히는 곳도 없다. 정 안되면 관련 핵심인력을 스카우트하면 된다. 인적자원이 아닌 요소들도 결국 인적자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곳이 금융권이다.
2. 큰 수익 변동성
증권사를 예로 들어 보자. 증권사의 수익은 크게 수수료 수익과 투자수익으로 나눌 수 있다. 수수료 수익도 개인 고객 등이 중심이 된 리테일 쪽에서 중개 수수료 및 판매 수수료가 있고, 주로 기관 고객을 대상으로 한 영업 수익 등이 있다. 투자 수익은 조달한 자금을 부동산이든, 채권이든, 주식이든 어떤 자산에 투자, 굴려서 얻는 수익이다. 그중에 수수료 수익은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좀 떨어진다. 시장은 출렁여도 거래 수수료는 발생하니까.
투자 수익은 아니다. 변동성이 크다. 시장 잘 못 타면 엄청난 손실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런데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딜러가 과연 잘할지, 못할지 어떻게 알까? 모른다. 심지어 작년에 잘했어도 올해 까먹는 일이 허다한데, 내년에 어떨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상당수 관련 직군 종사자는 계약직이 태반이다. 좀 써보고 못하는 선수면 내보내야 한다. 조달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수익은 내야 하니까.
'삼성전자'도 반도체 부문 수익 변동성이 크지 않은가. 그렇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자. 그건 재고라는 형태로 남아있고, 어쨌든 판매가 될 것이며, 주요 본질가치가 '반도체'라는 사용가치에 있다. 증권사의 투자자산은? 본질가치 자체가 투자가치이다. 그 가치가 내려간다면 뭐에 쓰는가. 들고 있는 주식이 파산하고, 채권 발행자가 망한다면 투자자산은 그냥 전산에 찍힌 글자일 뿐이다.
높은 수익 변동성의 다른 측면도 있다. 수익 변동성이 크다는 얘기는 실적 변동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 부분이 사내 정치지형의 변화와 맞물리게 되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명분으로 변질될 수 있다. 앞서 얘기한 바를 상기해 보자. 금융업은 인적자원이 핵심이라는 점, 이것은 직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임원도 그 대상이다.
3. 여의도 주식회사
혹자는 '여의도 주식회사'라고 말한다. 마치 여의도 안의 각 회사들은 비슷한 일을 하는 각 부서와 같고, 다들 하나의 회사를 다니는 것 같다고 한다. 그만큼 타사 사람들과의 교류가 빈번하다. 물리적 거리도 매우 가깝고, 다들 하는 일도 대동소이하다. 상대방에 대한 평가가 쉽게 공유된다. 즉 영입 작업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다.
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어 면접을 다녀올 수 있고, 퇴근하고 차 한잔 하면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할 수 있다. 하는 일이 비슷하니 업무 성과에 대한 비교가 용이하고,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는지 평판조회가 수시로 이루어진다. 직원만 비교 대상인가, 회사도 비교대상이다. 비슷한 업무를 하는데 연봉이나 성과급 차이가 크게 나면 기피대상 회사가 된다. 소위 진상 직원의 유무도 널리 전파된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어떤 회사의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빈자리가 날 것 같으면, 지원하고자 하는 후보군들은 아는 인맥을 찾아 부지런히 설계 작업에 들어간다. 개인적으로는 이 모든 게 다 가까워서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꼭 여기에 적은 3가지 이유 말고도 다양한 원인이 잦은 이직문화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지만, 누가 뭐래도 가장 중요한 원인은 '사람이 핵심'이라는 점이라는 것은 흔들림 없는 사실이다.
다시 처음에 얘기한 질문으로 한번 돌아가 보자. 왜 이직을 하려고 하는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이직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이직의 목표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나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거나, 높은 연봉을 얻기 위해서라면, 이직하고자 하는 곳에서 과연 당신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자. 그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일을 하는 곳이야만 목표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힘들어서 이직하고 싶은가? 업계는 과연 평판 조회가 용이한 곳이거나 이직이 좀 원활히 이루어지는 곳인가? 또 다른 진상을 만날 수 있다.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할 수 있다. 롱런 하고 싶은 직장을 찾는가? 그 회사가 영위하는 업종이 그러한 성격을 가질 수 있는 업종인지 분석했는가? 반드시 이직이 목표하는 바를 명확히 그려보아야 한다.
여의도에 있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이직을 한다. 이직을 안 하면 마치 불러주는 이가 없는 사람처럼 보여서 능력에 문제거 있거나 성격이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직을 하면서 연봉 인상과 승진이 쾌속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교체도 빨리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있음을 잊지 말자. 이직이 많다는 것은 내 자리를 대체할 사람을 빨리 뽑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연봉을 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수익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실직의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직을 하면서 무조건 뒤따라 오는 것은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HR 업무를 담당하지 않는 사람이 이직에 관련된 글을 쓰자니 근거가 빈약하고, 논리가 맞지 않음을 느낀다. 하지만 더 다듬어도 이 이상의 글을 쓸 자신은 없다. 다만, 여의도의 독특한 이직 문화를 현직에서 뛰는 선수의 시각에서 바라본 바를 공유하고 싶었다. 이를 통해 이직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을 한 스푼 얻어가시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