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매니저가 사기치기 얼마나 어려운데
너 진짜 부지런 하구나.
대체로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 펀드의 규모는 평생 벌어도 만져보기 힘든 수준의 돈이다. 그런 큰 돈을 가지고 도망가지는 않을까? 다음날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어느 나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 아닐까? 모기업의 자금담당 직원이 돈을 본의 명의 또는 가족 명의의 다른 계좌로 몰래 보내어 빼돌리고 외국으로 도망치는 일이 종종 뉴스에 나온다. 심지어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에서도 내부 직원이 횡령을 해도 바로 발견하지 못하는,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가끔씩 벌어진다. 이런 상황일진데 태어나서 처음 이름을 들어본, 심지어 직접 만나보지도 않은 그 사람에게 돈을 맡기라고 한다. 그래도 될까?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돈을 맡기는 것은 아무 문제없다. 해도 된다. 왜냐하면 돈은 펀드매니저에게 가지 않기 때문이다.
펀드를 가입한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증권사 창구에 가서, 또는 모바일 앱으로 펀드 또는 수익증권이란 종류의 종목 하나를 매수함으로써 펀드를 가입하게 된다. 고객의 계좌에는 펀드가 몇 구좌 매수했다고 표시된다. 매수금액은 증권사의 개별고객 계좌에서 해당 펀드의 계좌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그럼 그 해당 펀드의 계좌는 누가 관리할까? 바로 펀드의 재산을 관리하는 수탁사(주로 은행)가 관리하게 되고, 거래 자체는 공기업인 예탁원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 수탁사는 운용사의 거래지시를 받아서 거래 작업을 수행하고 그 결과는 실시간으로 운용사가 알게 된다. 상호견제와 감시, 감독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 속에서 펀드매니저는 돈을 구경할 수 없다. 펀드 계좌에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돈의 숫자만 컴퓨터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럼 이제 펀드를 팔아버린다고 하자. 매도 버튼을 살포시 눌렀다. 그럼 수익증권을 매도하고 돈을 받겠다는 요청이 펀드를 가입했던 증권사 또는 앱을 통해 운용사와 수탁사에 전달된다. 그럼 이제 운용사는 매도 요청에 맞는 돈을 수탁사가 마련할 수 있도록, 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매도하라는 운용지시를 수탁사에 보낸다. 수탁사는 운용지시에 맞추어 자산을 매각한 뒤, 요청사항에 맞는 돈을 준비해 증권사로 보내준다. 만약 돈이 모자르면 이를 운용사에게 통보하고, 부족한 날 끝까지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이를 사고로 인식하고 자산을 동결한다.
이 과정에서 임의의 계좌가 끼어들 수 없으며, 펀드매니저가 관여할 여지도 없다. 프로세스 상에서 완전히 자금의 흐름은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와 분리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펀드매니저가 무슨 수를 써도 범죄가 될 수는 없다.
가끔 펀드의 환매정지라는 말이 나온다. 말 그대로 펀드를 매도해도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건 범죄 아닌가요? 펀드의 환매정지는 펀드가 돈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일 때 운용사가 수탁사 및 판매사와 협의해서 취하는 조치이다. 대부분 펀드가 투자한 자산이 부실해지거나, 환매요청이 갑자기 몰릴 경우 자산 매각을 함에 있어 어려움이 발생할 것 같을 때 취해진다. 하지만 펀드의 매수 및 매도 과정에서 범죄가 발생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 과정에서 펀드매니저가 자금을 다른 계좌로 돌릴 가능성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가장 흔한 것이 내부자정보를 이용한 선행매매이다. 하지만 지난 글에서도 밝혔듯이, 일단 정보라는 것이 진짜 가치가 있는 정보인지를 알아내기가 어렵다. 수많은 가짜정보가 난무하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실제 주가가 영향받는 정보는 극소수이거나, 한쪽으로 흘라나오기 쉽지 않다. 과거와 다르게 중요 정보가 미리 돌아다닐 경우, 정말 추적 끝까지 당해서 쇠고랑을 차게 되는 일이 많다. 또한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펀드매니저는 개별 주식투자가 사실상 금지되어 있다. 제한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각 회사는 그냥 이렇게 할 바엔 하지말라는 식의 내부규정을 추가로 두고 있다. 가족명의로 하면 되잖아? 가족 명의 계좌까지 모니터링 대상이다. 거의 역차별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발생하는 사건이 선행매매 사건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하는 준비들을 보면 부지런함에 놀란다. 차명계좌를 열고, 여기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몇단계를 거쳐 자금을 보내고, 거래를 하기 위해 여의도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타인 명의의 핸드폰으로 거래를 실행한다. 라덕연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핸드폰 매매의 경우, IP 추적을 통해 거래한 위치까지 다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이를 피하려면 실제로 다른 곳에 가서 해야한다. 본인이 하지 않고 대리인이 할 경우엔 더 복잡해진다. 대리인과 연락을 주고 받기 위해 별도의 통신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포렌식이면 왠만하면 다 복구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최종적으로 수익을 나에게 귀속시키는 일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신경쓸 것이 너무 많다.
더 큰 사이즈의 범죄는 더 큰 작업을 해야 한다. 복잡한 구조의 펀드 범죄에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횡령을 동반한 범죄이다. 아니, 펀드 자금을 횡령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나? 고객의 펀드 매매 과정에서는 발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른 경우다. 바로 펀드의 투자 대상에서 횡령이 발생하는 경우다.
2019년 터진 라임 펀드 사태에서 일부 펀드는 어떤 기업들이 발행한 CB(Convertable Bond, 전환사채)를 편입했다. 펀드에서 돈을 대출해 주었다는 의미이다. 이 기업들은 망해가는 기업들이었고, 유입된 펀드 자금은 횡령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횡령한 돈의 일부는 펀드 매니저에게 흘러 들어갔다. 그 위에 터진 옵티머스 펀드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펀드에서 어떤 기업들이 발행한 사모사채를 매수했고, 그 기업들은 해당 자금을 다시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으며, 일부는 펀드 매니저에게 들어갔다. 모두 다 펀드의 투자대상에서 문제가 발생한 케이스다.
투자 대상이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안 좋아지는 일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정상적인 경우 동반되어야 했을 위험관리나 모니터링 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는 펀드매니저도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의 접근이 이루어질 때 문제가 있음을 알아채는 일은 쉽지 않다. 문제가 터져야 비로소 뭔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 구조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019년과 2020년의 대규모 펀드 부실 사태를 겪고 펀드를 감시해야 하는 입장인 수탁사 및 사무수탁사, 판매사와 같은 관계사들의 입장은 더욱 보수화되었고, 보다 철저해 졌다. 다행히도 점점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 얘기를 뒤집어서 말한다면, 범죄를 저지르려면 더 많은, 더 큰, 더 철저한 준비를 해야한다는 점이다. 부실한 회사를 부실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야 하고, 자금 횡령계획을 세워야 하며, 운용을 담당하는 운용사의 감시부서부터 관계사들의 레이더망까지 걸리지 않을 방안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같은 부서 내에서 범죄에 참여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정말 정말 쉽지 않은 일이며, 매우 매우 귀찮고 노력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또다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완벽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고, 왠만한 범죄는 다들 걸리게 되어있다. 물론 범죄 수익을 다 환원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또다시 다른 의미에서 그들의 노력과 열정에 감탄을 할 것이다.
진짜 대단하다..그 노력과 열정을 다른 데 쏟아서 성공할 것 같은데..
참고로 펀드 투자자의 입장에서 저런 범죄가 무서워 투자를 망설이지는 말자. 다만 투자할 때 두가지만 명심하자. 하나는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간접투자든 뭐든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는지는 스스로 정확히 이해될 때까지 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후자는 판매사에 잘 물어보자. 대답을 잘 못해 줬다면, 나중에 판매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내 투자금은 보상받기에 유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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