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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람 Nov 11. 2024

그저 해내는 것의 힘

2018년 4월 22일 일요일 아침, 수원에 있는 종합운동장으로 향했습니다. 제 16회 경기마라톤대회 5km 부문에 나가기로 했거든요.

저는 요즘 건강과 운동에 충실하고자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는 중이었어요. 작년에 친구와 경주에서 열리는 벚꽃 마라톤 대회를 나가려다가(실은 마라톤을 핑계삼은 여행 계획) 사정상 취소를 한 후로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거든요. 하지만 평소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5km 마라톤을 나가는 것도 엄청난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보니 1년이 지났고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신청 마지막날에서야 부랴부랴 등록을 했답니다.



마라톤을 한달 전에 신청해두고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열심히 달리기 연습을 했느냐하면 정말 부끄럽게도 '아니오' 였는데요. 그래서 이번 대회에서 제가 세운 목표는 딱 두 가지 였어요.


1. 무슨일이 있더라도 (걸어서라도) 완주할 것!
2. 이왕이면 걷지말고 (천천히라도) 달릴 것!


초보답게 귀여운 목표죠. 아자아자! 하며 운동장에 도착하니 비가 올듯 말듯한 날씨라 솔직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일요일 아침에 나는 왜 이 곳에 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현장에서는 자동차를 뽑는 경품 행사도 하고 각종 행사들이 진행되서 축제 분위기였어요.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노라니 풀마라톤부터 부문별로 순차적인출발을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마지막으로 저희 차례가 되어 뛰기 시작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하고 있는거예요.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조금쯤 느슨했던 마음이 절로 사라지더니 어느새 허리를 단단하게 세우며 지치려고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를 외치는 저를 발견하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이 제 앞으로 스쳐 지나가 뒤쳐져도 '괜찮아, 내 목표는 완주야, 천천히 달리기만 하면 돼. 내 페이스만 유지하자.' 라는 마음을 되뇌이며 한발 한발 앞으로 발을 내딛었습니다. (사실 달리기를 엄마와 함께 신청을 했는데요. 엄마는 이미 초반에 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중간즈음에는 이미 반환점을 돌아 달려오셔서 마주보며 인사를 나눠야 하기도 했답니다.)


...어떤 일이 됐든 다른 사람을 상대로 이기든 지든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 자신이 설정한 기준을 만족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더 관심이 쏠린다.
/ 무라카미 하루키



결과는 어땠을까요? 엄마는 이미 저보다 10분 먼저 들어와 결승점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고요. 저 역시 결국 해냈답니다!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경험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저로서는 한발 한발 나아갈 때마다 자존감이 팍팍 올라가는 경험이 됐어요. '그저 해내는 것의 힘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거구나.' 결승점을 들어오는 순간 자존감도 배터리 충전하듯이 주기적으로 충전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지요. 실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작은 성공 경험을 스스로에게 '주기적'으로 주는 것인데요. 장기 프로젝트 속에서 루틴하게 돌아가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고 마라톤처럼 단발적인 이벤트도 될 수 있겠죠. 이런 크고 작은 성공들을 내 삶의 여기저기에 심어주면 나의 삶을 이루는 숲이 풍성해지겠지요. 내게 어떤 계절이 찾아올 때마다 수확할 수 있는 열매도 다양해질 거라고 저는 믿어요.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달리는 일뿐만 아니라

천천히 걷는 일,
하늘의 구름과 달을 올려다보는 일,
걸음을 멈추고 새로 핀 꽃을 바라보는 일,
새소리를 듣고 서로 구분하는 일,
기온의 변화를 감지하는 일,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리는 일,
2분 빨리 달리고 1분 천천히 달리기,
허벅지가 터지도록 언덕을 뛰어 오르기 등
그 모든 일을 다 포함하는 일이었다.

그 사실을 안 뒤부터 나는
빨리 달리거나 천천히 달리지 않았다.

/ 김연수


당신에게 그저 해내보는 경험을 주고 싶은 영역은 무엇인가요?



저의 다음 목표는 10km예요. 10km는 이전과는 다르게 훈련이 필요하겠지요. 힘들다고 느껴질 때엔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의 글을 기억하며 준비하려고요. 언젠가 글을 읽고 계신 당신과 10km 마라톤 경험은 어땠는지, 당신은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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