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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Sep 03. 2024

막장 드라마만 보던 남편이 달라졌다.

으 의리

요 근래 어느 날 남편이랑 아침을 먹는데 티브이에서 황혼이혼에 대해서 나왔다. 남편이 웬일로 관심 있게 본다. 남편은 티브이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막장드라마만 보는 사람이지 이런 종류의 티브이 프로는 안 보는데, 신기하게도 관심 있게 본다. 티브이를 한참을 보던 남편이 한마디 한다.


  "당신은 나랑 살면서 이혼 생각한 적 있어?"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이다. 남편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평생 나에게 하는 질문이라고는 '애들 밥 먹었어? 애들 학교 갔어? 공과금 냈어? 당신 밥 먹었어?"  이런 류의 생활 질문, 어찌 보면 사무적인 질문만 하는 사람이다.


남편의 이런 성향을 아니까 남편이랑 대화하는 것은 참 재미없다. 맨날 체크리스트처럼 사무 이야기만 하니 재미없다. 도통 대화가 티키타카가 안 된다. 평생 그랬으니까 포기했다. 내가 원하는 대화는 '당신 오늘 재미있었어? 요즘 공부는 어때?' 이런 것이다.


평생 이런 질문을 남편에게 받아 본 적이 없으니 오늘 너무 신기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참 부부간에 의미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됐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신혼 때 당신이 속 썩였을 때 그때 딱 한 번 생각한 적 있어."


남편은 이해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반박을 안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아는 것이다. 남편이 한마디 한다.


 "그때 내가 먼저 이혼하자고 했잖아."


남편이 자기가 잘못해 놓고 집에도 안 들어오고 한창 오락에 빠져있으면서 자기가 먼저 이혼 얘기를 꺼냈었다. 참나 자기가 이혼 얘기를 꺼낼 입장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한마디 한다.


"당신이 이뻐서 참은 게 아니라, 아니 그때(속 썩였을 때)  애들이 둘인데 어떻게 이혼하냐?"


남편은 또 수긍한다. 나는 남편과의 이런 대화가 정말 처음이다. 이런 일을 입 밖에 내다니. 남편이 달라졌다.


"당신이 속은 썩였는데 당신이 자장면집 할 때 장사는 안 됐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많이 녹아내렸어."


그제야 남편은 안심하는 표정이다.


다시 티브이를 보던 남편이 한마디 한다.


 "아니. 이혼들을 왜 하는지 몰라."


 나는 대답한다.


 "같이 있어서 고통받으니까 그렇겠지. "


생각해 보니 우리는 같이 있을 때 재미만 없지 편안하다. 고통받는 게 없다. 남편도 그럴 것(?)이다. 나는 남편을 바라보며 질문한다.


"그런데 당신은  그 나쁜 것(?)이랑 술을 어떻게 그렇게 한 번에 끊었어?"


 "애들 있으니까 그렇지. 내가 없으면 당신이 애들이랑 어떻게 살아. 그러니까...."


나는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워줬다. 남편도 좋아하는 표정이다.


남편은 참 투박하고 얄미울 때가 많은 남편인데  이제는 남편의 사랑을 나도 다 알고 있다.


오늘 남편과의 대화는 의미 있었다.




나는 비 오는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날씨도 꿉꿉하고 빨래도 잘 안 마르고 외출도 최대한 자제한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이 날씨 따라서 지하 땅굴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남편은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 오는 날은 평소보다 매출이 오르기 때문이다. 남편은 배달을 직업으로 한다. 음식들을 가게에서 픽업 후 아파트 등 가정집에 배달해 주고 배달 팁을 받는다. 날씨가 화창한 날, 더운 날은 매출이 적으니 비 오는 날을 더 기다린다.


나는 남편이 매출 때문에 비 오는 날을 좋아해도 비 오는 날이 싫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센 빗줄기에 남편이 배달 다닐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눈 오는 날은 더 힘들다. 눈 오는 날은 배달이 밀려도 오토바이가 넘어지면 다치니까 굼벵이처럼 천천히 다닌다. 눈 오는 날은 일하기 힘든 날이다.


남편은 비 오는 날만 되면 비옷을 챙겨서 나간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그런 날은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남편은 갔다 올게 인사를 하고 나간다.


며칠 전에도 비가 왔다. 아들과 지나다가 비옷도 안 입고 배달 다니는 오토바이 아저씨가 지나갔다. 아들은 그 아저씨를 보고 한마디 한다.


 "저 아저씨 불쌍해. 비 맞고 일해.  비옷 갖다주고 싶다."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아저씨를 보며 아마도 아빠를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아빠는 비옷을 잘 챙겨 나갔다고 알려주었다. 아들은 멀리서 보이는 오토바이 실루엣만 보고도 아빠인 것을 알아차린다. 거의 백발백중이다. 나는 눈이 나빠 거의 틀린다. 오토바이 타고 지나가는 아저씨만 보아도 아빠 아닌가 살펴본다.


나는 오토바이 타는 아빠를 절대 부르지 말라고 한다. 혹시 뒤돌아보다 사고가 날까 꼭 주의를 준다.


나는 결혼 전에 오토바이 타는 남자랑은 절대 절대 결혼하지 않으려 다짐했었다. 아버지가 오토바이 타는 직업이었는데 사고도 많이 나고 위험한 것 같아 노심초사하고 살기 싫어서였다.


남편은 신혼 초에 직업이 중국집 주방장이었다. 절대로 오토바이 탈 일이 없었다. 우리가 자장면 집을 운영하며 배달을 다녀야 해서 그때부터 오토바이를 슬금슬금 타기 시작했다. 자장면 집을 폐업하고 아예 배달 업종으로 전향하였다. 이제 더 이상 주방에서 일하기 싫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딱히 어디 취직하기도 어려우니 손쉽게 일하기 좋은 직종이다.


우리 큰애는 아빠가 오토바이 타는 직업인 것을 반대했다. 위험하니 다른 일을 알아보란 말을 자주 했다.


지금은 포기했다. 아빠가 하겠다는데 어쩔 수 없다. 나는 오토바이 타는 남자랑은 절대 절대 결혼 안 하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네 아이를 키우며 남편은 수시로 사고가 났다. 본인도 많이 다치고 인사 사고도 있어서 사는 게 녹록지 않았다. 

 

항상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조금 벌어도 되니까 다치지만 말라고. 남편도 많이 조심하고는 있는데 이런 비 오는 날에는 남편이 귀가하기까지 안심이 안된다.


남편은 결혼하고 꽤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없었는데 가정을 소홀히 하고 밖으로 많이 돌고 경제관념이 없어 많이 힘들었다. 그러니 나도 남편에게 '화'가 좀 쌓였었다.


지금은 딸아이가 사준 새 팬티도 아껴 입어야 한다며 장롱에 고이 모셔 둔다. 나는 아끼면 똥 되니 어서 입으라고 하지만 구멍 난 팬티를 입고 사람 좋은 웃음만 껄껄 웃는다. 자신에게 돈을 거의 안 쓴다.


잘못은 많이 했는데 미워할 수가 없다. 한동안 남편의 고지식한 면이 답답해서 나 혼자만의 권태기가 있었다. 남편이 뭐만 물어보면 앙칼지고 짜증을 많이 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저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족들을 위해서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는 결혼의 큰 의미는 사랑이 아니라 '의리'인 것 같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너무 짧고, 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의리가 아닐까.


그냥 요새는 그냥 안쓰럽다.  얼굴 보고 결혼 한 잘생긴 남편이었는데 이제 고생해서 잘생긴 얼굴이 없어졌다. 나이 드니 덩치도 작아졌다.  


나는 우리가 27년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살 줄 몰랐다. 누구랑 그 정도의 연수를 한 집에서 같이 산 적이 없다.  아버지랑은 25년,  큰 딸이랑 24년을 살았다. 남편이랑은 27년을 이사 다니고 이사 다니고 밥 먹고 밥 먹고 했다.


느낌이 이상하다. 남편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의리'가 생겼다.


우리 의리 지키며 사랑하며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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