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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Sep 04. 2024

우리는 하나도 맞는 게 없네.

삼겹살과 목살

셋째는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꼭 밥을 먹고 학원을 간다. 4시나 5시 정도 된다. 셋째의 최애 음식은 삼겹살과 팍삭 익은 김치를 넣은 김치볶음밥을 제일 좋아한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삼겹살이 똑떨어졌다. 마침 남편이 점심 먹으러 오는 길,  슈퍼에 들렀다 온다기에 '9,900짜리 삼겹살'을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가격을 꼭 말해 준 이유는 아무거나 비싼 것을 사 올까 봐 마트에서 파는 9,900원짜리로 부탁을 한 것이다.


오늘의 부탁은 완벽했다. 정확한 가격을 알려주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잠시 후 남편이 고기를 사 왔다. 나는 서둘러 셋째의 김치볶음밥을 준비해야 하니 남편이 사 온 고기를 받았다. 포장지를 뜯으려는데.


'어. 고기가 이상하다.'


길쭉해야 할 고기가  손바닥 크기로 넓적했다. 이것은 '목살'이다. 누가 봐도 목살이다. 나는 의아해서 남편에게 물었다.


"어. 삼겹살 없었어? 이거 목살인데."


남편은 모른척 몰랐다는듯이 대답한다.


"어. 그거 삼겹살 아니야?"


또 또 백치미 발동이다. 몇십 년을 산 사람이 삼겹살과 목살을 구분할 줄 모를 리 없다.


"여보. 삼겹살은 길쭉하고 목살은 손바닥 크기잖아. 혹시 그것을 구분 못하는 거야?"


절대로 구분 못할 리 없다. 난 남편의 백치 노름이 싫은 거다. 나의 추궁에 남편이 이실직고한다.


"삼겹살에 비계가 엄청 많아서 비계 없는 고기로 사 온 거야. 비계 먹으면 안 되니까."


비계를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 남편 나름 가족을 생각한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던가. 왜 삼겹살과 목살을 모르는 척하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집 누구도 예전부터 지금까지 쭉 목살을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오로지 삼겹살이다.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또 몰랐었던 척한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한다.


"여보. 다음에는 꼭 부탁한 데로 사다 줘."


 남편은 지지 않고 말한다.


"에잇. 다시는 안 사 와. 당신이 사 와."


꼭꼭 극단적이다. 나도 지지 않고 한마디 한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안 한다고 하지 말고 당신이 내 얘기를 잘 들어주면 안 될까."


매사 이런 식이다. 단 한 번도 클린 하게 일이 마무리된 적이 없다. 내 몸뚱이가 힘들어서 부탁을 하기는 하는데 꼭꼭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남편이다.


남편 나름 가족의 건강을 생각한 것이니 긍정의 회로로 서로 좋게 마무리하기는 했다.


어휴. 그냥 살아야지 뭐. 그래도 사람은 참 착하다.




편이 퇴근했다.


나는 너무 졸려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 얼른 밥을 차렸다. 상추랑 오이지랑 내가 담근 열무김치등 반찬을 내놨다. 다 차리고 너무 졸려서. 방으로 도망가려는 내 뒤에 남편이 한마디 한다.


"된장이 없네."


상추에 싸 먹을 된장을 말하는 것이다. 냉장고를 열면 바로 있다. 꼭 방으로 들어가려는 나한테 그런다. 나는 남편에게 약간 장난스럽게 말한다.


"된장이 없을 땐 어떡해야 하지?"


백치미 발동 못 알아듣는 척하는 남편이다.

정답을 알면서도 대답을 안 하길래 나는 재차 물었다.  


"된장이 없을 땐 어떡해야 하지?"


오해 마시라. 장난스럽게 물었다. 냉장고에서 꺼내 먹으면 되지가 정답이다.


내가 지금 여기 남편 흉을 보게끔 한 남편의 대답이다.


"응. 된장이 없을 땐 당신한테 말하면 되지."


자기가 말해놓고 통쾌하고 웃겼는지 껄껄 웃는다.


나보다 한 수 위다.


너무 얄미운데 내 몸은 이미 냉장고에서 된장을 꺼내서 남편 밥상에 갖다주었다.


꼭 나를 시켜 먹는 남편이 얄밉다.




오늘은 남편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한식 뷔페집에서 먹기로 했다.


가격도 7천 원에 반찬도 깔끔하고 매일 메뉴가 바뀌는 곳이다. 우리는 서로 먹고 싶은걸 접시에 담아왔다. 나는 남편이 담아 온 접시와 내 접시를 보고 실소가 나왔다.


이곳은 뷔페로 여러 가지 반찬이 나온다고 하지만 밥부터 반찬까지 우리는 한 개도 겹치는 것이 없었다.

나는 보리밥, 남편은 흰밥, 나는 각종 샐러드, 남편은 고기들...  


밥 먹는 동안에 남편의 체크가 시작됐다.


"애들은 밥 먹었어? 욕실 세면대는 물이 안 내려가던데. 밤에 선풍기 많이 틀어 놓지 마. 너무 뜨겁더라. 추석 기차표 이번에는 꼭 성공하자. 솰라 솰라."


나는 밥을 씹지도 못하고 남편의 체크에 대답해 준다. 이러다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체하겠다. 잠깐이라도 밥을 먹자.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오늘 남편과 밥을 먹은 것은 못된 선택이야.'


항상 이렇다. 항상 이런 식이다. 그러면서도 나의 기분을 살피고 물도 떠다 주는 남편이다. 나는 남편에게 한마디 한다.


"여보. 우리는 한 개도 맞는 게 없네."


예전에는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남편은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은 남편도 달라졌다.


"그러니까 잘 살잖아."


나는 얼른 점심을 먹고 집에 갈 생각을 한다. 같이 더 있다가는 수십 가지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빨리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바깥은 너무 덥다.


"조심히 들어가."


끝까지 나를 살피는 남편이다. 조심해야 할 사람은 더운 날 땡볕에 오토바이를 타는 남편인데, 걸어가는 나를 걱정한다.


결혼하고 아버지보다 더한 쓰나미를 선물한 남편인데 미워할 수가 없다. 우리는 하나도 맞는 게 없는 사람들인데 그럭저럭 잘 산다. 지금은 나 밖에 모른다. 


남편이 이제 개과천선해서 고맙다.




'당신은 나에게 쓰나미를 줬어.' 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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