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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Sep 08. 2024

들장미 소녀 캔디를 아시나요.

나는 연촌국민학교를 다녔다. 우리 집은 공릉동에 있었는데 학교가 끝나면 꽤 먼 길을 걸어가야 집에 갈 수 있었다. 걸어서 한 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나는 친구들과 같이 걸어가기도 했는데 조금 같이 걷다가 친구들은 오른쪽 철길 있는 동네로 다 빠져나갔다. 나는 나머지 거리를 혼자 걸어가야 했다.  혼자 걸어가기 심심한 날은 친구들 따라 철길을 건너갔다. 그러면 집 가는 길은 훨씬 돌아가야 한다.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피아노 학원에 다녔는데 나는 피아노 학원도 따라가서 친구가 끝나길 기다렸다. 학원 책꽂이에는 들장미 소녀 캔디 만화책이 있었는데 기다리는 동안 심취해서 읽었다. 캔디 만화책을 읽는 동안 울리는 아이들의 반복적인 피아노 선율은 마치 캔디 만화 속 세상의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캔디 만화를 떠올릴 때면 아이들이 연습하던 피아노 음악이 아득히 떠올려진다.


캔디는 꼬불꼬불한 파마머리가 풍성하고 눈이 반짝반짝 별처럼 커다랗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긍정적인 아이다. 이라이져와 닐이라는 심술궂은 남매가 캔디를 골탕 먹이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희한하게 이라이져와 닐은 캔디보다 가진 게 많은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캔디를 많이 질투했다.


캔디한테 제일 부러웠던 것은 순정 만화 속의 기가 막히게 멋진 남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거다. 안쏘니, 테리우스, 알버트까지... 나중에 캔디가 누구랑 이어졌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되게 부러웠었다. 안쏘니는 귀공자 스타일에 다정다감하고, 테리우스는 터프가이에 마초 같은 성격이다. 알버트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바다 같은 사람이다. 나는 마치 내가 캔디가 된 것처럼 세 사람 중에 누굴 고를까 꽤 고민을 많이 했다.


고아원에서 자라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캔디를 참 좋아했다. 나도 캔디처럼 고난이 와도 꼭 이겨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캔디의 활짝 웃는 그림을 보며 위로를 많이 받았다.


아이들이 연습했던 곡이 체르니였나 싶다. 캔디 만화와 참 잘 어울렸는데... 캔디도 희망이 있고 나도 희망이 있었다. 어렸으니까.


이십 대에는 뭔가 잘 안되고 삼사 십 대는 애 키우고 힘들어 어느새 캔디를 잃어버렸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캔디는 나에게 '희망'이었던 것 같다. 캔디처럼 웃으면서 착하게 살면 희망이 있겠지 그런 마음을 품었던 것 같다. 나는 만화든 TV든 어디에서도 내가 살아갈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부모에게 배우지 못한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티브이에서 캔디를 방영한 적이 있다. 그때 캔디 노래가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 혼자 있을 땐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의 나하고

웃어라. 캔디야. 들장미 소녀야

울면 바보야. 들장미 소녀야.


나는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 어린 시절 외로운 내 모습과 많이 닮은 캔디를 보며 캔디처럼 슬퍼도 웃었다. 울면 바보인 줄 알았다.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울고 참고 또 참았다.


그랬더니 지금 나이에 마음이 아파서 고생  했다. 캔디가 잘못했다. 울고 싶을 땐 울라고 하지 그때 안 울어서 지금 운다.


캔디가 잘못했다.


이제부터 슬프면 울고 실컷 울고, 진짜 기쁠 때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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