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력 Sep 29. 2024

지수와 주희

1학년 때 지수라는 친구와 자주 놀았다, 지수는 아주 귀엽게 생긴 단발머리의 친구였다. 공릉동 우리 집은 마당이 좁아 불편했는데 지수네 집은 마당이 아주 넓었다.


여름이면 지수마당에서 지수 엄마가 호스로 아주 큰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줘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했다. 시원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동네 애들이 많이 와서 놀았다.


나는 지수 엄마가 언제 물을 받아서 놀게 해 주나 항상 기다렸다. 지수랑 사이가 안 좋아 집에 놀러 못 가면  대문틈으로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것을 부럽게 쳐다봤다.


그때쯤 지수 싸우고서 사이가 좀 멀어졌었는데  얼마 후 지수가 이사를 간다고 한다.


어느 날 대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집이 조용하다. 이사를 간 것이다. 많이 아쉬웠다.


공릉 2동으로 이사 갔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지수만나고 싶어서 우리 동네서 비교적 먼 곳인 공릉2동에 걸어갔다. 어느 집인지도 모르면서 한참 동안 골목길을 돌아다녔다. 모르는 동네인데도 이 골목 저 골목 샅샅이 돌아다녔다. 낯선 동네 어느 골목에서 지수와 우연히라도 마주치기를 바랐다.


이사 가기 전 싸운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골목길 어디선가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미안해'라고 하고 싶었다.


이사 간 곳을 찾아서 화해하려고 아주 큰 용기를 낸 것이다. 무엇 때문에 싸운 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헤어진 게 아쉬웠다.


그  골목 어디에도 지수는 없었다. 이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지수가 이사 가고 나는 다른 친구를 사귀었다.


주희라는 친구다. 주희는 단발머리에 얼굴에 주근깨가 있었다. 그 당시 삐삐라는 화가 티브이에서  했었는데 주인공이 주근깨가 있었다.  삐삐는 부모님이 안 계시다.  또 빨간 머리 앤 이라는 동화책에 심취해 있었는데 나는 주희를 볼 때마다 동화책 나라에 들어온 것 같았다. 주희는 삐삐도 닮았고 빨간 머리 앤도 닮은 것 같다. 깡마른 주희의 주근깨가 나의 감성이랑 맞닿아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에 걸맞게 주희의 성격도 도도하고, 싫고 좋고 가 분명하고 종잡을 수 없는 면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과 달랐지만 그런 면이 매력이었다.


나는 주희랑 놀 때는 동화책 친구와 노는 거니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 오히려 자꾸 놀고 싶게 만들었다.


주희의 엄마 아빠를 본 적이 없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것 같았다. 나는 주희집에서 놀다가 주희"이제 그만 놀아." 하면 놀다가도 그냥 돌아와야 했다.


내가 아무리 놀자고 해도 철벽이었다. 그런 날이 많았다. 자기 기분에 놀기 싫으면 가라고 하니, 같이 놀면 항상 놀이시간이 충족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주희가 그만 놀자고 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서도 가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주희랑 오랫동안 놀 회가 생겨서 좋았다.


그날 처음으로 '케첩'을 보았다. 저녁에 딱히 먹을 게 없으니 주희가 케첩을 맛보게 해 주었다. 처음 먹어보는 거였다. 빨간데 맵지 않고 단맛과 신맛이 같이 있는 게 오묘하면서 맛있었다.


밤늦게까지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나는 잠들었고 일어나 보니 아침이 돼있었다.


집에 가보니 엄마가 사색이 돼있었다. 어린애가 하루가 지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으니 걱정을 많이 하시고 실종신고를 하려던 참에 내가 들어간 것이다.


이런 일이 엄마를 걱정시키는 일이구나. 깨달았다.

다시는 엄마를 놀라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때리지 않았다.


* 이 글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이전 11화 공릉동 희주네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