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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Oct 05. 2024

아버지도 엄니가 있었다.

나는 우리 아버지를 버리고 간 할머니를 창동에 살 때랑 중계동 산동네 살 때 보았다.  할머니는 아주 가끔  잊어버릴 만하면 우리 집에 오셨다.


할머니는 희끗희끗한 머리를 빈틈없이 빗어 넘겨 쪽 찐 머리에, 아버지랑 많이 닮으시고 키가 많이 작으셨다. 항상 빳빳하고 다림선이 살아있는 한복을 입고 다니셨다. 가끔 아무 예고도 없이 우리 집에 오셨다가 바람처럼 가셨다.


할머니는 우리 작은오빠를  이뻐했다. 남아선호사상이 있으신 분이었다. 어린 마음이어도 할머니가 나를 이뻐하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으니, 할머니가 오든 말든 기대도 안되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할머니가 오면 내 태도가 쌀쌀맞았나 보다.


할머니는 '저년은 성격이 고약하다.''저년은 못돼 처먹었다'라며 이뻐하지 않았지만 나는 하나도 아무렇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를 버리고 가고, 가끔 와서 오빠만 맛있는 것 주고 나는 안 이뻐했다. 그러니 나는 할머니 대접을 안 해주고 저절로 무시했다. 유독 할머니한테 쌀쌀맞게 대했으니 할머니도 섭섭하셨을 것이다.


창동 살 때 할머니가 '고암'이라는 것을 항아리에 놓고 가시면서 먹지 말라고 하고 가신 적이 있다. 항아리를 되게 애지중지하시며 우리 몰래 혼자 드시려는 것 같았다.  이름도 어려운 고암인지 고얌인지. 먹지 말라고 하니 너무너무 궁금했다. 나는 항아리 속에 손을 집어넣어 한 개 먹어보았다. 이야 근데 너무너무 달콤하고 맛있는 거다. 곶감 같기도 하지만 곶감은 아닌...


이렇게 맛있는 것을 한 개 맛보라고도 안 하고 혼자만 맛있게 드시려는 할머니가 얄미웠다. 나는 틈날 때마다 항아리 속 고암을 하나씩 꺼내 먹었다. 와 달고  곶감 같기도 하고 맛있는 고암에 자꾸 손이 갔다.


할머니가 집에 오신 날 항아리 속 고암을 들여다보셨다. 나는 혼날까 봐 살짝 눈치를 보았다. 할머니가 누가 먹었냐고 혼내면 나는 할머니만 맛있는 거 먹냐고 따질 참이었다. 할머니는 항아리 속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시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의아해 하지만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엄니'라고 불렀다. 아버지같이 무서운 사람도 엄니라고 부르는 엄마가 있는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아버지도 할머니가 오시면 오시나 보다, 가시면 가시나보다 무덤덤했다.  그래도 식사는 챙겨드렸다. 우리 사이는 정이 없었다.


5학년 때인가 할머니가 오랫동안 안 오셨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할머니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하셨다. 눈물도 안 나오고 무덤덤했다. 할머니는 영원히 우리 집에 오시지 않게 된 거다. 나랑 투닥거리고 가끔이라도 눈에 보이던 사람을 이제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우셨다.


하나도 정을 표현하지 않았었는데, 그렇게 무서웠던 아버지도 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눈물이었을까. 평생 엄마가 오기만 기다리던 친척 집에 버려진 어린아이였던 아버지. 아마도 정말 정말 세상에 고아가 된 아버지 자신이 불쌍해서 우는 것일까. 아버지는 가끔이라도 할머니가 집에 오는 게 좋았을까.


아기같이 서럽게 우는 아버지가 불쌍했다. 아버지도 엄마를 영원히 못 보게 되는 거니 불쌍했다.

'엄니 엄니' 부르며 우는 아버지가 불쌍했다.


이제 진짜로 아버지는 고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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