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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Oct 04. 2024

창동으로 이사를 왔다.

창동은 부엌문을 열면 아궁이와 찬장이 있고 사람 하나 들어가면 딱 맞는 공간에 계단 두 칸 정도 올라가면 방 하나가 있고 골목 쪽으로 창문이 나있었다. 그래도 이곳은 깨끗한 편이었다. 다행인 것은 다락이라는 공간이 있어서 온갖 잡동사니들이 있는 다락에 내 몸 하나 작게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오빠와 싸웠을 때도 아버지한테 혼나고서도 잠시 떨어져 지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런 비슷한 집들이 우리 옆집 그리고 옆집이 다닥다닥 벽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고 약 2m 남짓한 골목길 맞은편에도 비슷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집 사이의 작은 골목길은 아이들이 세발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하는 아이들의 작은 놀이터였다. 앞집 아줌마는 아이 두 명을 키우며 봉투 붙이기 부업을 했는데 그 집 아이들과 놀아주며 저녁을 자주 얻어먹었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다들 형편이 고만고만했을 텐데 놀다가 저녁때가 되면 어느 이웃집이든지 눈치 안 보고 얻어먹곤 했다.  그 집 아저씨는 가끔 봤는데 과묵하고 그래도 정상(?) 아빠 같았다.  


이곳에서 신창초등학교를 잠깐 다녔다. 이때는 석유곤로를 사용하던 시기였다. 큰오빠가 가끔 집에 올 때 석유곤로에 어묵. 콩나물 등 여러 가지를 넣은 잡탕찌개를 끓여줬는데 진짜 맛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큰오빠의 부인 그러니까 올케언니를 처음 만났다. 첫인상이 얼굴이 얄팍하고 날씬했다. 나는 큰오빠를 좋아했었는데 질투가 났는지 올케언니가 괜히 밉고 그래서 틱틱 데기도 많이 해서 큰오빠한테 처음으로 뺨을 맞았다. 서운함이 참 오래갔다.


어렸던 마음에 질투의 감정이 참 낯설고 오빠한테 두고두고 서운했다. 신창초등학교로 전학 등의 수속을 엄마 대신 올케언니가 해주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니 언니도 참 어렸었다.


지금도 꿈에 그 골목길과 공간이 나오기도 한다. 그때처럼 똑같이 생활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꿈에서 깨고는 지금의 현실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그때의 꿈속이 진정한 현실 같은 착각을 하곤 한다.




창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옆집 소리 생활하는 소리가 의도치 않게 들리기도 했었다. 우리 옆집은 젊은 신혼부부가 갓난아기와 살고 있었는데 젊은 아내는 항상 말이 없고 단아한 여성이었다. 남편도 말이 없고 젊잖아 보였다.


그런데 며칠 동안 밤만 되면 이해할 수 없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둔탁하게 물건 던지는 소리, 벽을 치는 소리.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오로지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소리들만 들렸다. 싸우는 소리인가 싶다가도 애써 잠을 청해 보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소리가 아니었다.  

  

다음날이 되어서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 새댁의 얼굴을 살피곤 했는데 평온한 얼굴을 발견하곤 간밤에 내가 잘못 들은 소리인가 착각을 했나 했지만 며칠 지나서 또 들리기 시작했다. 그 새벽에 새댁이 남편에게 몹쓸 짓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새댁의 얼굴을 보면 평온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내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아기 보고 싶단 핑계로 그 집을 살펴보았지만 간밤에 그런 흔적이 있는 집 같지가 않고 정갈하고 깔끔한 집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새댁에게 아무 일도 없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긍정적인  기대는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처음에 한 달 두 달 들리던 그 기분 나쁜 소리는 더 자주 들렸고 물건 던지는 소리 사람 때리는 소리. 아픔을 참는 것 같은 소리로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들렸다.


'이건 분명해 내 착각이 아니야. 새댁은 분명히 맞고 있어.'


새댁은 그 새벽에 남편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가정 폭력의 소리를. 그것을 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기가  듣지 못하게 참는 소리를. 새댁은 가정폭력을 당하고 있었던 거다.


몇 달 후 새댁 얼굴은 감출 수 없을 정도로,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고작 10살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남편은 정말 사람을 때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묘한 배신감이 들었고 무섭기까지 했다. 얼굴이 마주치면  째려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얼마 후 새댁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봉투 부업 하는 앞집 아줌마 말로 새댁이,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갓난아기를 남겨두고 떠났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어른들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기도 불쌍하고, 새댁도 불쌍했다. 엄마 없이 살아갈 갓난아기가 너무 불쌍했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나를 9살까지는 키웠는데. 한동안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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