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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Oct 06. 2024

소변통에 빠진 도시락

내가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로 불렀다. 지금은 모든 게 편리한 시대지만 문득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나의 불우한 가정환경만 아니라면, 아날로그적 그 시절이 그립다.


지금은 급식을 하는 시대로 도시락을 싸지 않지만 나는 도시락을 싸던 70년대생이다.


엄마가 없으니 나의 도시락 반찬은 항상 김치와 밥뿐이었다. 예전에는 김치가 익어서 금방 먹어버리면 안 되니 짜디짜게 김치를 담았다. 아버지가 담근 김치는 너무너무 짰다. 아버지는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다.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은 소시지를 계란에 묻혀서 기름에 부친 소시지 부침. 볶은 김치, 오징어채등 다양했는데 나는 오로지 김치뿐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싸 온 도시락 반찬이 너무 부럽고 먹고 싶었다.


나는 그때부터 넉살을 키워서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을 하나씩 맛보곤 했다. 몇 명 아이들의 반찬을 한 젓가락씩만 먹어도 골고루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더러는 대놓고 싫어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나의 생존이 중요했다.


사각 양은 도시락에 각종 반찬을 넣어 뚜껑을 닫고 흔들어 재끼면 그 안에서 섞이며 비빔밥이 됐다. 반에 한 명은 고추장을 싸 온 친구가 있어서 넣고 흔들어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었다. 교실에서 먹는 별미였다. 나는 웃기게 요란하게 흔들어 재끼며 아이들의 웃음을 유발했다. 나의 이런 모습 때문인지 아이들은 나에게는 반찬 인심이 좋았다.


그중에 보온 도시락을 싸 온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겨울에는 사각양은 도시락의 밥이 차디차게 식어서 얼음을 먹는 것 같은데, 보온 도시락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선생님이 교실에 있는 난로에 아이들의 도시락을 전부 층층이 올려놓는다  아래에 있는 도시락은 누룽지가 생기거나 밥이 타기도 하고, 위에 올려진 도시락은 올리나 마니다. 난로의 열기가 거기까지 올라오지 않는다. 선생님이 공평하게 올리기는 하는데 나는 운이 없는지 항상 위에 올려져 있어 따뜻한 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보온 도시락을 싸 온 친구들은 난로에 올리지 않아도 된다. 점심시간이 되면 나의 시선은 온통 보온 도시락에 쏠렸다. 참으로 신기한 게 어떻게 밥이 식지 않지?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국과 반찬통을 꺼내는 모습을 하나하나 지켜보았다.


친구가 싸 오는 보온 도시락은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때는 화장실이 교실건물 밖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양변기가 아닌 두 다리를 벌리고 엉거주춤 앉아서 볼일을 본다.  화장실 벽에 온통 아이들의 낙서가 쓰여있다.  주로 '누가 누구를 좋아한데요'하는 장난기 있는 글들이 벽에 잔뜩 쓰여 있어서 볼일을 보는 동안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점은 역시나 냄새가 많이 나서 최대한 빠르게 해결하고 나와야 한다.


어느 날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눈에 띄는 실루엣이 보였다. 늘 보던 그것이었다.


바로 '보온 도시락'이다.


누군가 떨어뜨리고 간 모양이었다. 나는 순간 생각을 했다.


'저거 주워서 내가 사용하면 되겠다. 어차피 누구 건지 모르잖아.'


나는 횡재를 한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보온도시락 있는 데로 가까이 가보고 나는 너무 실망을 했다.  


보온도시락통이 오줌통에 빠져서 둥둥 떠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남자아이들 소변은 벽 쪽에 길을 만들어 있어서 그곳에 소변을 누면 소변이 시냇물처럼 있었다. 냄새도 많이 난다.


나는 멈춰서 생각했다.


`아잇, 더러워, 그냥 가야겠다.'

'저거라도 건져서 퐁퐁으로 닦으면 감쪽같지 않을까.'


두 가지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한참을 갈등했다. 때마침 아이들은 모두 하교했는지 화장실에도 운동장에도 아무도 없다. 내가 오줌통에 빠진 도시락을 주워도 소문이 날리도 없다. 아무도 없으니.


나는 실리와 자존심 사이에서 한참을 갈등했다. 아마 보온 도시락 주인도 너무 더러워 도저히 포기하고 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는 내가 아무리 가난해도 폼에 죽고 폼에 사는데 자존심을 택했다. 아무리 평소에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이라도 오줌통에 빠진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냄새가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오줌통에 빠진 보온도시락과의 갈등을 끝냈다.

집에 오는 길에 아주 쪼끔의 미련이 있었지만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의 자존심을 지켰다.






나는 지금 만학도로 공부를 한다. 나는 공부하러 갈 때 꼭 도시락을 싸 간다. 아침에 가족들 먹을 것을 준비하며 보온도시락에 내 도시락을 정성 들여 싸간다. 어묵볶음, 잔멸치볶음, 숙주나물, 소시지계란부침등 그때그때 다르다. 곁들일 과일도 꼭 싸간다. 학식을 먹어도 되는데 꼭 싸간다.


점심시간에 자랑스럽게 펼쳐놓고 먹는다. 같이 도시락 먹는 동지들과 먹는다. 열심히 도시락을 싸 오는 내 모습을 보며 의아해하는 학우들에게 나는 말해준다.


"나의 로망을 실현 중이에요."라고 말해준다.


어렸을 때 먹고 싶었던 반찬 위주로 싸간다. 비록 보온 도시락은 큰애 고3 때 싸주었던 그 도시락 그대로 사용하지만 어렸을 때 갖고 싶었던 도시락보다 성능은 월등하다.


지난주 제일 인기 끌었던 반찬은 소시지 계란부침이다. 지금 나는 도시락에서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된 것 마냥 뿌듯하다.  


학우들에게 말해줬다. 아마 졸업할 때까지 계속 도시락 싸 올 거라고...


공부하러 가는 건지 도시락 먹으러 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시간시간이 너무 기쁘다.  


그저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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