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때 나는 학교가 끝나면 거의 매일 희주네집에 놀러 갔다. 희주는 진짜 계란형 얼굴에 긴 머리를 묶고 다녔는데 공부도 잘하고 여성스럽고 옷도 예쁘게 입고 착하기까지 한 친구였다.
어차피 우리 집은 가봐야 심심하기만 하고 먹을 것도 없었다. 희주네 집은 그 당시 공릉동 2층으로 된 맨션(그때는 2층짜리도 아파트로 불렸다)에 살았다. 현관문을 열면 거실이 있고 주방이 있고 방이 있는 요즘의 아파트와 같은 구조이다.
희주네 집에 자주 갔던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아파트 다른 동에 엄마가 입주 가정부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희주네 집에서 놀고 곧바로 엄마 얼굴을 보러 가곤 했다.
희주네 집에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희주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성격은 완전히 달랐다. 희주는 여성스러운 반면에 희주동생 희정이는 좀 활발했다. 우리는 셋이서 자주 놀았다.
희주 어머니는 진짜 희주와 정말 똑같이 생기셨었는데 계란형 얼굴에 머리를 묶고 여성스러우셨다. 희주 어머니는 항상 쿠키를 아주 많이 만들어 놓으셨다. 지금의 버터링쿠키와 상당히 비슷한데 수제로 항상 잔뜩 만들어 놓으셨다.
아. 희주네 집에 자주 갔던 이유가 이 쿠키를 먹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 당시에 과자도 자주 먹지 못하던 시절이었는데 희주어머니가 만든 수제 쿠키 맛은 정말 맛있었다.
입안에 넣을 때 느껴지는 황홀한 맛은 하나 갖고는 부족해서 자꾸만 손이 갔다. 한 개 먹고 조금 놀다 와서 또 먹고 미안해서 눈치가 보여도 황홀한 맛이 미안함을 덮는다.
다행인 건 희주 어머니가 항상 넉넉히 만들어 놓으셨다. 어느 날은 너무 자주 오는 게 미안해서 묻지도 않았는데
"이 아파트에 친척이 살아서 놀다 갈 거예요."라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차마 이 아파트에 엄마가 식모살이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창피했다.
나는 희주네 집에서 놀고는 저녁때가 되면 엄마가 보고 싶어서 엄마가 일하는 집으로 찾아갔다. 희주네랑 같은 아파트 다른 동이다.
띵동 누르니 엄마가 나온다. 다행히 주인집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없다. 엄마는 황급히 주방으로 나를 데려가 여러 가지 재료를 넣은 비빔밥을 내온다.
집에서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맛있는 비빔밥이다. 엄마는 연신 눈치를 살피며 얼른 먹으라고 한다. 엄마가 기거하는 방은 주방에 딸린 작은 방이라고 한다.
'아 엄마가 여기서 자는구나. '
엄마가 그래도 멀쩡한 방 같은 곳에서 주무신다니 안심이 된다.
밥을 먹고 나니 주방에 강냉이 봉지가 보인다.
"엄마 나 저거 먹고 싶어"
"안돼. 주인집 거야"
자꾸 눈치를 살피는 엄마 모습이다. 엄마는 이 집 둘째 딸과 성격이 안 맞아서 못해먹겠다는 둥 하소연을 하더니 이제 집으로 가라고 한다.
엄마랑 더 있고 싶지만 얼른 나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은 마음이 복잡했다. 희주네집. 그리고 그 옆동에서 식모살이하는 우리 엄마. 그리고 일하는 집에서 마음고생 몸고생하는 우리 엄마.
아버지는 엄마가 식모살이하는 것을 마뜩지 않아했다. 집에 엄마가 없는 게 싫었던 거다. 엄마도 집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해서 일하는 거겠지만 그곳도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구나 싶었다.
* 여기 사용한 이름은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