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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력 Nov 04. 2024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나의 자식사랑 변천사

이것은 나의 자식 사랑 이야기이다.


나는 사랑이 흘러 넘치는 사람이었다. 넘쳐흘렀다. 사랑이 넘쳐서 아이들을 너무 예뻐했다. 아기 때 너무 귀여웠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도 그저 존재만으로 감사하고, 웃는 미소 하나로 모든 시름이 걷혔다. 아무 기대하는 것도 없이 그렇게 맹목적으로 사랑했다. 까만 눈동자를 바라볼 때 감성적인 시구절이 저절로 생각날 정도로 아기들의 맑은 눈에 매료되었다.


자식이 태어나고 삼 년 정도까지는 그랬다. 그랬던 것 같다.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세 살부터 서서히 육아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엄마손이 안 가게 빨리 크길 바랐다.  육아의 터널을 빨리 지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저 육아의 단계 단계를 지날 때마다 빨리 세월이 지나기만을 간절히 원했다. 그때부터 육아는 나의 극한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시험대 같았다.


나는 지금 어떤가. 그때 그 사랑했던 그 애들이 맞나? 이상하게 가슴이 움직이지 않는다. 분명히 내가 낳았고 내가 이뻐했고 사랑했던 자식인데 예전만 못하다. 나는 내가 사랑이 넘친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


바락 바락 대들고, 하지 말라는 일은 몰래몰래 하고, 내로남불에 은혜도 모르는 저 인간들을 사랑하기 힘들다. 진짜 다 포기하고 어디 산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가정에서 충전을 받는다고 하더니만 나에게 가정은 민원인들의 소굴이다.

 

나는 그저 가정고충처리위원회의 담당자가 된 것 같다. 그저 그들의 고충을 처리하다가 늙어가고 있다.


내가 사랑이 식었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엄마라면 사랑해야지.'

'엄마라면 인내해야지.'


사랑도, 인내도 하지 못하면서 모성신화에 사로잡혀 그런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함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어제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 축제가 있었다. 준비된 점심을 먹고, 같이 앉은 테이블에 우리 반 학우 MJ오빠랑 대화를 하게 됐다.  어쩌다 자식 이야기가 나왔다. 그 오빠는 자식이 다 컸는데 아직도 애정표현을 많이 한다고 한다. 부모로서 먼저 자꾸자꾸 다가간다고 한다. 어머니도 모시는데 스킨십도 하고 애정표현을 많이 하신다고 한다. 그리곤 한마디 하신다.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데 소중하잖아.' 한다.


그 순간 오른쪽 가슴 언저리가 콱하고 막히며 소리 없는 눈물이 눈에 아린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나는 그 소중한 자식과 가족에게 왜 그렇게 못할까?'


도대체 마음이 우러나지 않는다.


그리고는 그 오빠가 한마디 한다.


"아마, 타고 난 성품도 있을 거야."


조금의 위로가 되었다. 나는 타고 난 모성애가 없어서 그런가 생각한다.


한편으로

'내가 사랑이 변했나?' 생각했다.

자식을 향한 내 사랑이 변했나 생각했다.

나는 가짜 엄마인가 생각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죄책감이 너무 커서 한동안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지금도 가끔 그런다.


모처럼 집에 온 큰애에게 참다못해 털어놓은 적이 있다.


"엄마는 애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듣고 있던 큰애가 말했다.


"엄마 우리 없으면 살 수 있어?"


"못 살지."


"그게 사랑이야." 했다.


바락바락 대드는 애들을 참을 수 없어 너무 화가 나고 미운 것을 영원히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나 보다.


나는 사실 이 데이터가 있다. 큰 애들을 키우며 예뻤다가 미웠다가 죽도록 미웠다가 이제 말이 통할 정도가 되고 소통을 할 정도가 된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셋째 넷째를 키우며 똑같이 힘들어한다.


왜지? 왜 그러지?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본다.


나는 '화목한 가정'에 대한 로망이 있다. 어려서 가져보지 못한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아버지는 딸들을 사랑하고 소통도 잘 되고, 부모 자식 간에 서로 도와주고 걱정해 주는 가정. 돈은 많이 없어도 된다. 그저 서로 바라볼 때 충전이 되는 그런 가정 말이다.


그런데 우리 집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각자 서로의 일은 잘한다. 그런데 서로 애정과 사랑이 별로 없다. 데면데면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가정을 원하는 내가 제일 무뚝뚝하다. 어색해 죽겠다. 마음이 우러나질 않는다. 애들 아기 때 이뻐했던 것과 무척 대조적이다.


사랑이 수시로 변하는 내가 이상하다. 엄마 자격이 없는 것 같다. 이 숙제를 풀기가 어렵다.


모름지기 부모라면 엄마라면 자식을 바라볼 때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더없이 사랑해야 하는데 나의 눈은 텅 빈 모래사장 같다.


사랑이 없는데 사랑해야 하니 죽겠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나 이상한 엄마 같다.




위 글은 어젯밤 11시쯤에 셋째와 다투고 다음 날 감정이 휘몰아쳐서 쓴 글이다. 아직도 결론을 못 내렸다. 글의 마무리를 못할 정도로 화가 나있다. 섣불리 화해를 했다가는  나는 또 나를 돌아보지 못할 것이다.


비폭력대화에서 배운 것을 최대한 활용해 본다.

바로 나에 대한 '공감'이다. 나의 감정을 먼저 들여다본다.


나는 셋째와 다투고 나서 침대에 앉아서 쉽게 잠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오래 울었다.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나는 침대에 앉아있다. 그때의 나의 감정은 당황스러움, 배신감,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또 다른 내가 안아준다.


'힘들겠다.' 해준다.

'잘 참았어.' 해준다. 나는 예전에 이렇게 애들이 대들면 폭력을 썼다.  엄마를 무시한다고 생각해서 마구 화를 내고 때렸다. 아이와 부딪힐 때 그럴 뻔했는데 문턱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사건보다 일이 커지는 경험을 수두룩 빽빽으로 하고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나서야 겨우 겨우 고쳐가고 있다. 단번에 안 돼서 오랜 시간이 걸린 일이다.  


침대에 앉아 울고 있는 나를 안아주고 토닥이며 말해준다.


'별거 아니야.' 해준다.

'실패했다고 느끼겠지만 과정이야.'라고 이야기해 준다.


자꾸 어둠에 휩싸이는 나를 이렇게라도 살게 해 본다.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영원히 그렇지는 않다고 이야기해 준다.


오늘이 지나고 또 며칠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그 모든 순간의 감정이 다가 아니었음을 이야기해 준다.


좋은 엄마, 사랑 많은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얘기해 준다.


그냥 '엄마'도 그런대로 괜찮다고 얘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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