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호구짓에 걸려들게 하는것이다.
나의 사람을 만나는 모양새의 얘기다.
나는 희한하게 마음이 꺾이고 아픈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것에 대해 파헤치는 글을 써 보려 한다.
나는 작년부터 글을 썼고 많이 건강해졌다.
그러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고통에 무딘 사람이었다.
내가 왜 아픈지, 언제 아픈지. 감정의 상처, 고독에 무딘 사람이었다.
글을 쓰고 나서 나의 변화는 정신력은 말짱한데 나의 온몸이 정직하게 말해준다는 것이다.
너 지금 아퍼.
지금 힘들어.
너 지금 스트레스받고 있어.
너 지금 짜증 났잖아.
고통에 무뎠던 사람이 몸이 정직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걸 느끼고 있다.
그리고 가장 솔직하게 상대에게 전달하려 애쓴다.
나는 솔직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화나도 화가 나지 않은 척, 기분 나빠도 기분 나쁘지 않은 척.
아예 못 느낀적도 많다. 뒤늦게 느끼고 서서히 화가 난적이 대부분이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인정욕구, 배려등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고통에 무딘 부분이 가장 컸다.
이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의 가정폭력의 후유증 같기도 하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누굴 그리 구하려고 그리 애를 쓰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아픈 사람, 힘든 사람을 도와주려 그리 애를 쓰고 살았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보다 힘든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들은 한가지의 문제로 힘들어하는데, 정작 나는 열가지의 힘듦이 있었다.
감정노동을 스스로 자처하고 살았다.
편안하고 건강한 사람은 재미없었다. 할 얘기도 없었다.
나를 필요로 하고 나의 얘기로 힘을 내는 사람을 만났다.
이게 말이다.
계속 나를 퍼주는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퍼줬다. 퍼주고 퍼줬다. 시간도.... 감정도...때로는 맛있는 것도 사주면서 말이다.
그래야 되는 줄만 알았다.
감정도, 시간도, 돈도 그리쓰면 잘 썼다고 생각했다.
왜 그럴까.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구원자'마인드가 있는 것 같다.
내 눈앞에 어려운 마음에 처한 사람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럴 몸도 시간도 감정도 내어 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 좀 도와줘. 내 얘기 좀 들어줘.' 그렇게 힘듦을 요청하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러고 다녔다.
나에게 제일 불친절했다.
나를 아끼지 않았다.
작년까지 그랬다.
그리고서는 알아차렸다.
나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감정쓰레기통처럼 나를 그때만 써먹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이용당하는데 바보처럼 몰랐다.
상대의 상처가 먼저 보이니 말이다.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를 제일 소중히 여길 것이다.
내 시간도 감정도 제일 소중히 여길 것이다.
예전 같지 않은 건강상태가 되고야 깨달았다.
여태 모르고 살았다.
구원자마인드는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인 것 같다. 어린 시절 구하지 못한 나의 엄마와 나와 닮은 그들을 구하려 그리 애를 쓴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그들은 내가 아니다.
나의 한계를 깨닫고 내가 그들을 구해줄 수 없음을 진정으로 깨닫고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내가 건강해지려고 한다.
나 먼저 챙기려 한다.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호구가 되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