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어린이집에서 배워왔나보다. 친구들이랑 같이 노는 상황에서 다른 친구가 불편하게 할 때 "하지마, 불편해"라고 표현하라고 선생님들께서 가르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하는 문장인 것 같아 내게도 인상깊게 다가온 문장이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것,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표현하는 것. 성인인데도 아직까지 잘 못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할 말 다하는 사람', '센' 캐릭터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나도 멘탈은 쿠크다스이고 상대방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불편을 줄 때 '어버버'하고 할 말도 못하고 지나가는 때가 많다.
나같은 사람들이 단순히 나 혼자만은 아닌 건지 서점에 진열된 책들을 보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과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이지 않나.
학교를 다니면서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상황, 사람들을 너무나도 많이 마주쳤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황은 내가 곧바로 맞받아치지 못하고 '당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나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면서 얼마나 불합리한 일들을 많이 당하는가. 길 가다가 무례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직장에서도 직급이나 단순히 몇 년 먼저 입사했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까내리는' 상황을 수없이 마주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다'고 상대방이 만만해보이면(특히 대한민국 사회에선 여자이거나 어리면) 더 무례하게 구는 법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불편한 데도 불구하고 싫은 마음을 억누르고 상대방에게 맞추다 보면 상대방은 그게 당연한 줄 알고 더 못되게 굴거나 제멋대로 행동한다.
바로 얼마 전에도 속 끓이는 일이 있었다. 우리집을 매수한 신혼부부가 계약서를 작성한 후에도 우리집을 한 번 더 보겠다고 하는 거다. 계약 전에 집을 둘러볼 때 예비 신부가 집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계약 전이야 둘째가 태어나기 전이어서 집을 몇 번이나 보여줘도 상관 없었지만 지금은 6월에 출생한 신생아가 집에 있는 상황. '신생아가 있어서 곤란하다'고 말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부동산 사장님이 "너무 집 안 보여주면 매수인이 부동산 욕 해"라고 사정하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집 문을 열어줬다.
그런데 잠깐만 집을 둘러볼 줄만 알았는데 신혼부부는 줄자를 꺼내면서 집 곳곳을 실측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처음에 얘기한 거랑 다르잖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불쾌감이 확 일었지만 사장님 체면도 있을 것 같고 해서 그냥 참고 넘어갔다.
남편이 신혼부부에게 "그거, '오늘의집'에 도면 다 나와있어요"라고 눈치를 줬지만 신혼부부는 개의치않고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실측을 했다. 나는 갓 50일된 아기와 함께 거실에서 그들이 빨리 나가기만을 빌었다.
그런데 며칠 후, 부동산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또 왔다. 이번에는 신혼부부가 인테리어 업자와 함께 우리집을 둘러보기를 원한다는 것.
나는 뚜껑이 열리고 말았다. 100일도 채 안 된 아기가 있는 집을 한 번 보여준 것만으로도 모자라 이번엔 업자를 데리고 오겠다는 대목에서 말이다. 우리 부모님도 아기가 어리다고 집에 잘 찾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신혼부부는 지난 번에 집 보여준 것에 대한 고마움은 전혀 없고 오히려 '더' 요구하고 있었다.
부동산 사장님이 보여준 신혼부부의 문자는 더 가관이었다. 부동산 사장님이 집을 한 번 더 보여주는 건 곤란하다고 거절하자, 우리가 집을 제대로 안 보여줘서 실측도 못하고 자신들이 제대로 입주를 제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우리를 탓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방문을 못하면 사진을 여기여기를 찍어달라고 아주 무슨 맡겨놓은 것처럼 요구를 했다.
우리가 사진도 못 찍게 하고, 방문도 어렵게 만들어서, 본인들이 입주 못할까봐 걱정이라는 매수인
아니, 저기요. 이 사람들아. 너희 아직 잔금 안 치렀거든요? 너희 집이 아니라고요.
5월에 매수 계약을 해놓고는 자기들이 목돈이 마련되어야 한다며(부모님 적금이 만기될 때까지 있어야 한다며) 9월에 잔금치르겠다고 요구한 신혼부부였다. 신혼부부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새로 대출 받아서 잔금 치르면 될 일을 무슨 부모님 적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 도무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매수인이 계약 전 집을 둘러볼 때 모시고 온 매수인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해서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본인들이 잔금을 늦게 치르기 때문에 당연히 인테리어이고 실측이고 못하는 것을 가지고 우리가 집을 안 보여줘서 입주를 못할 것 같다고 남탓을 하는 내용에서 내 이성의 끈이 놓아졌다. 결혼식 올리자마자 신혼집에 살고 싶었으면 당연히 인테리어 기간까지 감안해서 잔금을 치렀어야 하는 걸, "미리 인테리어 공사해야 하는데 집 안 보여준다" "공사가 늦어져서 입주를 제때 못할 것 같다"고 우리 탓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잔금 줄 돈은 없으면서 인테리어 업체랑 계약할 돈은 있는 거니?)
부동산 사장님이 보내온 신혼부부의 요구사항
신혼부부는 부동산 사장님이 거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를 하지않고 '방문이 어려우면 집 여기저기를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며 부탁 아닌 요구를 해 왔다. 마치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인 것 마냥.
하,,, 뒷목 잡네.
신혼부부라고 해서 그들 사정 감안해서 잔금 날짜 미뤄주고, 계약서 작성 후에 부모님도 안 찾아오는 신생아 있는 집문까지 열어줬건만 결국 당한 것은 '못된 매도인' 취급이었다.
역시 할 말은 했어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꺼냈을 때 어색해질 분위기나 사장님 체면같은 건 잠시 넣어두고 내 할 말은 했어야 했다.
매수인이 계약서 쓰던 날에 매형이랑 친누나까지 다 끌고 와서는 '언제 이사 가세요?'라고 살짝 나를 떠볼 때 "잔금 전에는 집 못 보여줘요"라고 못 박았어야 했고(계약서에 잔금 전까지는 인테리어 공사 시작 못한다고 문구까지 집어넣을 걸), 예비 신부 집 못 보여줬다고 하면서 갓 50일된 신생아 있는 집에 꾸역꾸역 방문하려고 할 때 "절대 안 돼요"라고 철퇴를 놓거나 집에서 줄자 들고 다니면서 실측할 때 "실측은 잔금 끝난 다음에 하세요"라고 한 마디 했어야 했다.
그 한 마디를 안 하고 지나가니 그들 신혼부부는 잔금도 치르기 전에 집을 실측하고 인테리어 공사 준비를 하는 게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우리를 '호구'로 보았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 사람들.
이게 대부분의 인간 본성이다.
아직 세 돌도 안 된 첫째 딸이지만, 딸에게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 "누가 널 불편하게 하면 의사표시를 분명히 해"라고 가르칠 거다.
참는 게 혹은 착하게 사는 게 다가 아님을 알려주고 싶다. 상대방 기분이나 분위기가 어색해질까봐 괜히 지레 겁먹지 말고 너의 의사 표현을 당당히 하라고.
"딸아, 눈치 보지말고 네 할 말은 해!"
추신. 신혼부부야, 근데 진짜 너희 주변에는 '잔금 전에는 네 집이 아니다'라고 가르쳐주는 지인이나 어른들이 한 명도 없는 거니? 어쩜 이렇게 몰상식할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