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지나면 잊힌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이다. 그런데 이건 공공기관 성 비위 사건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공공기관에 입사하기 전 재직하던 공익재단에서 성 비위 사건이 있었다.
재단 행사에 동원되었던 한 20대 사회자를 재단 팀장이 성추행한 사건이었는데, 징계나 다른 법적 조치 없이 그는 '그냥' 퇴사해버렸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재단이 성추행 피해를 입었던 사회자를 향후 3년간 재단 행사에 계속 부르기로 했다고.
그렇게 자유롭게 퇴사한 그는 업계에 아무 소문도 흔적도 없이 곧바로 스타트업 심사역으로 이직했다. 이직한 후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는 얼굴로 재단 관계자들한테 인사하는 건 물론이고.
나는 공공기관으로 이직하면서 앞으로 이런 더러운 꼴을 더 볼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공공기관은 5대 법정교육(산업안전보건교육, 직장 내 성희롱예방교육, 개인정보보호교육,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퇴직연금교육)은 물론 4대 성교육(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가정폭력 예방교육)을 매년 이수해야 하는 곳이 아닌가.
그러나 공공기관 이직 후 가입한 회사 블라인드 라운지에선 "신입 직원들은 OO 팀장을 조심하라" "성 비위 있었던 OO팀장" 등의 게시글,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블라인드 글들의 내용은 OO 팀장이 성 비위가 있음에도 금뱃지의 아들이라 아무 문제 없이 보직자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회사가 그를 비호한다는 것이었다.
수 년이 지났지만 그 분은 아직도 팀장 또는 본부장 등 보직자로 일한다. 내가 입사했던 당시에는 그나마 최신 블라인드 글이라 내용이라도 파악할 수 있었지, 최근 입사한 직원들이 지난 블라인드 글을 10년 전까지 거슬러올라가서 파묘하지 않는 한 아마 그의 성 비위 행적은 절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 여기까지는 내가 재직 중에 보고 들은 사건이 아니니 그렇다 치자.
입사 몇 년 후 정말로 회사를 떠들썩하게 만들만한 성 비위 사건이 터졌다. 회사 술자리 후 한 남자대리가 여자 주임을 성추행한 사건이었는데 회사 내에서는 성추행 경위를 두고 정말 많은 말들이 오갔다. 회사 내 장소 어디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느니, 여자 직원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둥 확인되지 않은 얘기들이 오르내렸다.
성 비위 사건을 일으킨 남자 직원을 대상으로 징계위원회가 열린다고 했을 때 일부 직원들은 '이번에는 징계로 짤리겠지'라고 예상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를 비호해줄 금뱃지 부모도 없고, 무엇보다 직급도 일반 평사원이나 다름 없는 대리니까 '적어도' 이번만큼은 징계가 적절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왠일? '대리'에서 '주임'으로 강등되는 것 외에 그가 받은 불이익은 아무 것도 없었다.
회사 내에서 보직자들에게 엄청나게 아부하기로 유명한 그 남자 대리를 이쁘게 보신 높은 분들이 많았는지, 그는 단지 '대리' 호칭에서 '주임' 호칭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가 끊임없이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했으며, 성추행 당한 여자 직원과 향후 절대 마주칠 일 없게 인사이동을 조치한다 정도?
징계로 인한 그의 직급 '강등'을 모르는 직원이 없었건만, 회사 내 수많은 보직자들은 그가 주임이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OO 대리'라며 공식적으로 부르며 예전 직급으로 그를 추켜올려 세워줬다. 남자 보직자 여자 보직자 가리지 않고.
2차 가해나 다름 없는 그런 상황들을 보며 5대 법정교육이며 4대 성교육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주임으로 강등됐었던 것 치곤 굉장히 빠르게 '과장'이 되어 최근 입사한 사람들이 보기엔 유능한 직원인 것처럼 회사를 다니고 있다. ('유능한 직원인 것처럼'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실제로 일을 잘해서라기 보단, 회사 내에서 '전체 공지'를 하는 스피커 역할의 스탭 부서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 비위자들과 같이 숨 쉬고 일해야 하는 공공기관이다.
공공기관 성 비위, 1년만 지나면 다 잊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