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셨던 시어머니는 임신했다고 알린 후부터 아이가 한국어 잘할 테니 얼마나 좋겠다며 신나 하셨습니다. 친절한 산부인과 의사는 검진 때마다 아이가 바이링구얼이니 복 받았다고, 자기 손자도 스페인어, 독일어, 영어 멀티링구얼이다, 이러면서 언어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어린이집 하원할 때면 아이가 오늘 한국어 단어를 말한 것 같다며 선생님들 호기심과 찬사도 종종 받았습니다.
사회적 분위기는 그저 거들뿐, 아이와 한국말로 ‘잘’ 소통하겠다는 생각은 너무 오래전 굳은 거라 자연스레 육아 우선순위가 된 것 같습니다. 만삭일 때 엄마와 이모들이 오셔서 함께 독일 여행을 하고 엄마는 혼자 남으셔서 출산과 회복을 도우셨습니다. 그렇게 출산 전 이미 한국말과 음식이 일상이 됐습니다. 어느새 독일어와 영어는 일할 때만 쓰는 문자 언어로 전락했고,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내 한국어는 진정한 모국어 지위를 얻었습니다. 그전에는 외국 생활이 길어지며 한국어라도 신조어, 줄임말은 찾아봐야 했고 평범한 단어도 잘 생각나지 않았으니까요. 그즈음부터 정보를 얻거나 그저 시간을 때울 때도 한국어를 사용했습니다. 독일 뉴스도 한국 신문에서 얻어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출산 후 나는 이민자 여성으로 단박에 변신했고, 만나는 사람들 인적 구성도 물갈이됐습니다. 한국 가정, 한독 가정을 자주 만났고 유학 시절 외국인 친구들과는 뜸해졌습니다. 한국어 수다와 신세 한탄 기회가 있다면 유모차에 아기와 짐 보따리를 싣고 왕복 2시간 넘는 고생길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아이를 낳게 되면 인맥 지형이 달라지는 이치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한쪽 언어에 쏠리며 독일어가 점점 더 귀찮아졌고 그동안 보던 독일 뉴스도 끊고 그렇게 문화, 언어에서 멀어졌습니다. 집중력 총량의 법칙이었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뇌 속 대부분을 차지해 버리니, 나머지 시간에는 에너지가 가장 덜 드는 한국어가 우선이었죠.
외국인 가정이 대부분이던 베를린 도심을 떠나 조용한 교외로 이사 오니 또 다른 불편함이 생겼습니다. 언어가 좀 부족해도 적극적인 부모가 되고 싶던 나는 조용한 교외 어린이집, 초등학교 문화에선 미세한 장벽을 느꼈습니다. 작은 독일 회사에서 일할 때 느꼈던 소외감이랄까요. 아이 교육 관련 주도권을 잡고 싶지만, 2% 부족한 외국인 엄마는 움츠러들었습니다. 자격지심도 있었으리라 봅니다.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 외국 엄마들이 한국 엄마들과 섞여 느낄 그런 종류의 미세한 소외감일 수 있습니다. 학부모 행사, 친목 모임에서 수다 참여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며 주로 듣는 역할을 맡습니다. 일대일로 얘기하면 친절하고 수다스럽던 독일 엄마가 그룹 상황이면 내게 말 한마디 안 거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주변에 묻고 다녔습니다. 독일에 오래 산 한국 친구들에게 말입니다. 한국 가고 싶지 않냐고, 독일 사람 많은 모임에서 소외감 안 느끼냐고, 화날 때 분할 때 싸워야 할 때 독어로 버벅거리면 더 속상하지 않냐고. 어떤 친구는 그런 경우가 있지만 한국 상황은 더 힘드니 그냥저냥 버틴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유머를 사용하면 된다고 말해줍니다. 호감형인 그 친구를 보면, 언어를 잘하는 것보다 그 사람의 성격, 아우라가 외국 생활 만족감에 더 중요한 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삶의 고단함을 언어 잘못으로 퉁쳐버렸던 걸까요? 언어를 핑계로 그저 귀찮고 노력이 드는 자리를 피하고, 쉬운 자리만 선호했던 걸까요?
부모 영향권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듯한 아이 성장을 지켜보며 이만하면 됐다고 위로해 볼 때가 있습니다. 이 정도면 나도 노력했고 뭐 큰 탈 없이 잘 살아왔다고. 독일인 부모들도 학기 초 학부모, 교사 모임을 부담스러워하고, 다른 학부모와 피상적인 관계만 유지하기도 하니까요. 내가 외국인 엄마라서가 아니라 아이를 통해 맺어지는 관계 특성상 그저 서로의 필요로 일시적 관계를 맺는 부분이 있을 테니까요.
내가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며 겪는 크고 작은 어려움과 섭섭함, 황당함이 한국에서 살았다면 없었을 일이었을까요? 한국 학부모 생활은 평탄했을까요? 두 사람이 가정을 꾸리고 살면 포기하고 양보할 일이 많아지듯이, 등 떠밀어 온 나라도 아닌 내가 선택한 나라에서 살면서 조금은 포기하고 조금은 실망하며 사는 것 아닐까, 오늘도 위로해 봅니다. 가끔은 '체념'이란 방패를 들고 나를 보호하며 한 발씩 앞으로 헤쳐 나아가는 느낌이 듭니다.
(커버 이미지: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