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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Nov 12. 2017

따뜻한 말 한마디

내 곁에 천사가 머물다 간 순간

살고 있었지만 살고 있지 않은 동네의 동사무소에 찾아간 적이 있다.


열여덟 살의 나. 부모님이 헤어진 후 나는 멀고 낯선 곳으로 떠났다. 그 지역에 살던 이모네 집으로 주소를 옮기고 기숙사 학교에 들어갔다. 가끔 이모네 집에 갈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날은 기숙사에서 혼자 지냈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낯선 곳에 홀로 남겨진 나를 괴롭혔다. 나는 조용해졌다.


생일이 지난 어느 날, 주민등록증 발급통지서가 도착했다. 나는 학교를 조퇴하고 사진과 학생증을 챙겨 이모네 집 관할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먼저 '주민등록증 발급신청서'를 적어야 했다. 그런데 막막했다. 나는 살던 곳에도 이곳에도 집이 없었다. 부모님이 헤어진 후 어떻게 되었던가. 나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친권과 양육권은 어떻게 되는 건지, 혼자 다른 곳에 떨어져 살게 된 자녀의 행정적 처리는 어떻게 되는 건지 몰랐다. 신청서를 앞에 두고도 '본적, 주소, 호주, 세대주' 나는 어느 것 하나 적을 수가 없었다. 도무지 답을 알 수 없는 시험지 같았다.


빈칸을 몇 번이나 지우고 채워보았다. 하지만 동사무소 직원들은 불친절했고 다시 적어오라는 냉랭한 대답뿐이었다. 나는 주눅이 들었다. 멀뚱히 서서 손톱만 물어뜯고 있던 그때, 부스 구석에 앉아있던 한 아저씨가 이리 오라며 내게 손짓했다. 금테 안경을 걸쳐 쓴 얼굴은 4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아저씨도 여느 직원들처럼 무뚝뚝해 보였다. 나는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아저씨는 시험지를 검사하는 선생님처럼 내가 작성한 문서를 자세히 살펴봤다. 엄마와 이모를 번갈아 가며 통화를 하고 컴퓨터를 두드리며 뭔가를 검색했다. 그리고 해당란을 채우도록 알 수 없는 주소와 이름들을 알려주었다. 오답을 하나씩 고쳐나가듯이 나는 아저씨와 함께 신청서를 한 칸 한 칸 채워나갔다.


아저씨는 차분히 설명해줬다. 내가 처한 상황을. 짐작이야 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훨씬 차가웠다. 갑자기 떠올리기 싫은 기억과 어마어마한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슬퍼하기에 동사무소는 너무 딱딱한 장소였다. 그저 종이를 손에 꼭 쥐고 낯선 글자들만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무사히 신청서를 제출하고 주민등록증에 사용될 지문을 찍었다. 물기 없는 지문용 잉크는 검고 진득했다. 내 손가락은 작고 얇아서 지문을 몇 번이나 다시 찍어야 했다. 자꾸만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학생, 손을 왜 이렇게 떨어. 지문을 찍던 직원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나는 새빨개진 얼굴을 폭 숙였다. 다시 손가락을 갖다 댔다.


모든 과정이 끝났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차가운 물이 떨어졌다. 손가락에 달라붙은 검고 진득한 잉크는 잘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단단히 굳는 것만 같았다. 비누칠을 하고 손을 박박 문질러댔다. 열 손가락이 금세 빨개졌다. 아팠다. 차가웠다. 나는 두 손을 감싸 쥐었다. 빈 세면대에 떨어지는 물소리만 요란했다.



동사무소를 나서기 전, 신청서 작성을 도와준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는 학교에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물었다. 택시를 탈 거라고 하자 그럼 자신이 차로 데려다주겠다며 일어섰다. 아저씨는 다리가 하나뿐이었다.


"실은 내가 다리 하나가 없었어."  


다리가 없었노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며 아저씨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좀 놀랐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저씨는 목발을 짚고 앞서 걸었다. 목발과 나란히 다리 하나가 땅바닥을 차고 걸어갔다.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동사무소를 벗어나자 아저씨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가는 동안 나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이름이 참 예쁘더구나.'로 시작한 말들은 타지에서 밥은 잘 챙겨 먹느냐. 공부하기 힘들진 않으냐.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무어냐. 나중에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 줄줄이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눈을 마주치지도 길게 대답하지도 못했다. 네. 괜찮아요. 국어요. 모르겠어요. 아저씨는 '그럼 작가 하면 되겠구나.'하고 웃었다.  


아저씨는 다리 하나를 잃은 사고에 대해서도 말했다. 날씨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게 얘기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아저씨는 시종 유쾌했다.


어느덧 학교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저씨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동차 창문을 내렸다. 우리 둘 사이로 맑은 바람이 지나갔다. 아저씨가 말했다.   


"그러니까 힘내서 살아라."


아저씨의 목소리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앞으로도 불행은 다가올 테지만, 그래도 힘내서 살면 괜찮을 거라고. 목소리는 태연한 척 버티고 앉아 있는 나를 조용히 울렸다. 타인이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위로를 만나는 순간이 있다.


초여름이었다. 거리는 선명한 초록이었고 햇볕은 따뜻했다. 하지만 나는 슬펐다. 그때 나는 자꾸만 밀려오는 이상한 슬픔을 꾸역꾸역 참고 있었다. 그 슬픔은 손가락에 말라붙은 검은 잉크처럼, 참으면 참을수록 더 진득하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겨우 주민등록증 하나 발급받는 일조차 나에겐 너무나 힘겨웠다. 내가 어디에 사는지, 누구와 사는지, 누가 나를 키우는지, 내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지, 대체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디에도 있었지만, 또 어디에도 없었다. 내 불행과 존재를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몰랐다. 그래도 괜찮다고 태연한 척 눈물을 참던 나는, 그래 봤자 열여덟 여자애일 뿐이었는데... 아저씨는 그런 나를 위로해 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고마웠다.



훗날 드라마에서 이런 내레이션을 들었다.


"누구의 인생이건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 당신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 세상 쪽으로 등을 떠밀어 주었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가는 순간이다."


아마도 신이었을까. 어쩌면 천사였을까. 홀로 외딴섬처럼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세상 쪽으로 등을 떠밀어 준 누군가가 내게도 있었다. 내 곁에 잠시 머물다 간 누군가.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기억 속에 남은 이름 모를 사람. 나는 아저씨를 떠올렸다. 살면서 '위로'라는 말을 마주칠 때도 나는 어김없이 아저씨를 떠올렸다. 이름도 모르는 타인이 평생 가슴에 남는 중요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영향인 것 같다. 어른이 된 나는 우리 사는 세상이 다정하다고 믿는다.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옆자리 사람이 따뜻하다고 여긴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지하철에서 관공서에서. 내 곁을 스쳐 가는 수많은 타인에게 잔잔한 애정을 느낀다.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우리는 사실, 누군가의 곁에 잠시 머물다 가는 신일지도. 무표정 속에 날개를 숨기고 걷는 천사일지도 모르니까.

 

그날 학교에 데려다준 아저씨에게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전하고 싶다. 아저씨 덕분에 나는 힘들었던 일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고, 슬픈 기억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갈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고. 하고픈 말들 마음속에 가득 담아.


"고맙습니다."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매거진 <다정한 날들>

마지막 글로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지난 16주 동안 연재한 글 속에는 그동안 제가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미소 짓지 않는 삶에게 우리가 언제든 미소 지을 수 있는 이유. 결국, 사람이 아닐까요.


부족한 글임에도 따뜻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정한 마음 가득 담아 마지막 인사를 건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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