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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Oct 31. 2023

오멜라스를 떠나시겠습니까

소설 [까멜리아 싸롱] 10화 - 심야 기담회

“우아한 유령입니다.”     


지원우가 노래를 재생시켰다. William Bolcom 윌리엄 볼콤의 <Graceful Ghost 우아한 유령>. 경쾌하게 미끄러지는 피아노 선율 위로 어딘가 쓸쓸한 바이올린 선율이 떠돌았다. 세상을 떠난 유령이 허공을 떠돌며 우아하게 춤추는 것 같았다. 여기는 유령들의 심야 기담회가 열리는 까멜리아 싸롱. 안지호는 어느새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냥요. 여러분은 어떨지 궁금해서요. 어슐러 르 귄이라는 작가가 쓴 SF소설 얘기예요. 아주 행복한 도시 이야기. 세상 어딘가에 ‘오멜라스’라는 아름다운 도시가 있었어요. 온화한 날씨와 푸른 들판, 그리고 잘 관리된 예쁜 건물들. 오멜라스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넘쳤어요. 오멜라스는 왕이 다스리는 것도 아니고, 노예제도 없었요. 주식거래나 광고도, 범죄도 원자폭탄도 없죠. 사람들은 여기서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요. 오멜라스는 풍요롭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가장 행복한 도시, 그야말로 상상에나 존재할 법한 유토피아 같은 곳이었어요.”     


지호는 느릿느릿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간 조용하지만 서글서글했던 지호가 조금은 달라 보였다. 미소도 목소리도 어째선지 싸늘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런데 오멜라스에는 한 가지 오래된 비밀이 숨겨져 있었어요. 오멜라스에 사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는 비밀. 오멜라스의 아름다운 건물들 중 어딘가, 창문도 없는 어느 지하실 방에는 한 아이가 갇혀 있어요.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 아이는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죠. 아이도 처음 지하실에 갇혔을 땐, 밤마다 빌었대요. ‘잘할게요! 절 내보내 주세요. 잘할게요!’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죠. 아니, 듣고도 모른 체 했어요. 홀로 너무 오랫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아이는 결국 웃음도 울음도 감정도 말도, 전부 다 잊어버리고 말았어요. 도무지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종일 지하실에 웅크리고 앉아있었죠.”

     

“당장 그 앨 찾아서 구해야지.”

마두열이 힘껏 얼굴을 구겼다.      


“그럴 수 없어요. 왜냐면 오멜라스의 비밀은, 오멜라스의 아이가 아니라 오멜라스에 사는 사람들이거든요. 단 하나의 끔찍한 비밀. 오멜라스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은 아이가 지하실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자라면서 배우거든요. 저기 어느 지하실에는 불행한 아이가 살고 있다고. 그 아이 덕분에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심지어 아이를 찾아와서 분노하기도 슬퍼하기도 하면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도 있죠. 아이를 위해 뭔가 해주고 싶지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아이를 밝은 곳으로 데리고 나온다면, 깨끗하게 씻기 잘 먹이고 편안하게 해 준다면. 아니, 아이에게 친절한 말 한마디만 건네더라도. 당장 그날 그 순간부터 지금껏 오멜라스 사람들이 누려온 모든 기적 같은 행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말 테니까. 그게 이 도시의 계약이자 비밀이었어요.”     


“계약?” 유이수가 물었다.

“한 아이를 희생시킴으로써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한 사람의 완벽한 불행을 담보로 나머지 전체가 완벽하게 행복해지는 계약. 그 엄격한 계약으로 오멜라스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거죠.”     


“아이가 희생양인 건가. 그치만 너무 끔찍하잖아요.” 설진아가 말했다.

“그럴까요? 그렇지만 한 명만 희생한다면 나머지 전체가 행복할 수 있을 텐데요. 궁금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오멜라스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 저는 가족이 없어서. 아니, 있었나? 기억나진 않지만. 그렇지만 단번에 혼자서 결정하진 못할 거 같아요. 저는 행복하지 않아도 상관없대도, 다른 사람들의 행복까지 무너뜨리는 행동을 내가 무턱대고 해도 되는 걸까. 나 하나로 다수가 고통받는 건 아닐지. 솔직히 주저하게 될 거 같아요. 그러면서도 아이에게 미안해하부끄러워하겠죠.”     


“실은 저도요. 만일 여러분과 오멜라스에 살고 있다면 저는 여러분이 저 때문에 불행하길 원치 않아요. 주저하겠죠. 그러면서도 아이의 불행을 담보로 행복한 내 삶이, 아이를 구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환멸날 것 같아요. 아주 솔직히라면, 저는 오멜라스를 떠날 거예요. 일단 오멜라스를 떠나서 다른 방법을 도모해보지 않을까요.”     


진아의 말에 이수도 고갤 끄덕였다.      


“아니, 근데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복이 어딨어요. 저는 그 아일 데리고 떠날 겁니다.” 박복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럼, 모든 사람이 불행해질 텐데도요? 내 가족들과 아이들도 모두.”

“그래도요. 일단 애구해야죠.”

“그런데요. 아이는요. 아이를 구한다 한들, 인간다움을 잊어버리고 짐승처럼 퇴보한 아이는 이미 구하기 늦어버린 거 아닐까요? 평생 공포 속에서 살아온 아이가 자유로워진다고 행복할까요? 과연 행복이 무엇인지나 느낄 수 있을까요?”


침묵이 찾아왔다.

잠자코 지호를 바라보던 구창수가 조용히 물었다.

“사람이... 꼭 행복해야만 합니까? 사는 이유가 행복입니까?”


그때, 두열의 우렁찬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됐고! 그딴 행복 개나 주라지. 아무도 행복 안 해도 돼. 일단 구해야지. 세상이 아무리 미쳐 돌아간대도 상관없어. 애가 아프잖아. 당장 사람을 구해야지. 하나라도 살려야지!”      


두열은 제 허벅지에 주먹을 내리꽂으며 소리쳤다.     

“나는! 그 앨 살릴 거야!”     

 



쾅!


마두열은 그대로 문을 들이받았다. 방 안에 갇혀 있던 화염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벽을 타고 불길이 치솟았다. 시야를 가리는 연기와 숨 막히는 열기. 두열은 그대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구조대장 두열은 앞장서서 민첩하게 움직였다. 새벽, 고층 아파트 꼭대기층에서 일어난 화재. 요란한 사이렌이 사람들을 깨웠다. 모두들 잠든 시간이었다. 발화지점에도 분명 사람이 있을 것이다. 1분 1초가 급했다. 골든 타임을 확보해야 했다. 이윽고 두열은 두 사람을 둘러업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대장님, 괜찮습니까?”

“여자 1명, 남아 1명!”     


여자는 숨이 끊어진 지 한참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두열은 서둘러 소방 장비를 벗어던졌다. 미약하게나마 맥박이 느껴졌다. 새파랗게 질린 아이의 얼굴, 이마에 다량의 출혈이 있었다.     


“살아있다!”      


두열은 아이의 옷을 북 찢어 곧장 가슴팍에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너무 여윈 가슴이 두열의 손바닥에 다 잡힐 지경이었다. 작은 몸을 두열은 온 힘을 다해 압박했다.


지옥을 보았다. 여자는 연기 자욱한 침대 한가운데 누워 있었다. 반듯이 하늘을 보고 누워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이미 숨이 끊어진 듯 보였다. 그리고 침대 밑에 웅크리고 쓰러진 아이. 화염 속에서 너무나도 평온해 보이는 여자의 모습이 끔찍하도록 잔인했다.     


“자녀 살해 시도 추정.”     


헉헉. 두열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이의 가슴을 압박했다. 아이의 이마에 피가 응고된 상흔, 침대에서 떨어져 다친 상처가 아니었다. 두열에겐 익숙했다. 벨트 자국이었다.     


“아동 학대 추정.”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 스산한 겨울 아침, 붉은 사이렌이 번쩍였다. 어둑한 하늘에서 죽죽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두열의 얼굴로 눈인지 비인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솟구쳐 쏟아졌다. 죽지 마. 넌 죽으면 안 된다. 흠뻑 젖어 덜덜 떨리는 온몸으로 세차게 아이의 가슴을 압박했다.


으아아아. 두열이 포효했다.     

“나는! 너를 살릴 거야!”     


2011년 12월 22일. 추적추적 진눈깨비 내리던 고요한 아침에 두열은 아이를 살렸다.     




“오멜라스는 상상 속의 도시가 아니에요. 지상에서, 제가 살던 곳이 오멜라스였으니까요.”     


지호가 두꺼운 뿔테 안경을 벗었다. 붉어진 눈가를 잠시 문지르더니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왼쪽 이마부터 눈썹까지 주욱 그어진 흉터.      


“저는 오멜라스를 떠날 수 있었을까요?”     


마두열이 안지호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지원우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원우의 머릿속으로 두 사람의 인생책이 촤르륵 넘어갔다. 두 인생의 무수한 페이지들.      


안지호의 페이지, 2011년 12월 22일.

마두열의 페이지, 2011년 12월 22일.

두 사람의 페이지가 한데 겹쳐졌다.      


원우가 한숨 같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죽어서야... 다시 만나다니요.”





 

William Bolcom 윌리엄 볼콤의 <Graceful Ghost 우아한 유령>


* 소설 <까멜리아 싸롱>에 인용된 이야기 원작

안지호의 이야기 : 어슐러 K. 르 귄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안지호의 이야기는 어슐러 K. 르 귄의 SF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원작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지호의 최애 아이돌은 BTS예요. 이승에서 까멜리아 싸롱으로 향할 때 안지호가 내내 듣던 노래도 BTS ‘봄날’이었는데요. '봄날' 뮤비에 등장하는 오멜라스 이야기를 언젠가 한 번쯤 해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안지호라는 인물과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작고 약한 단 한 사람이라도 희생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든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까멜리아 싸롱>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 화는 더욱 고민하며 써야 했던 이야기였는데요. 마두열처럼 한 사람이라도 구하려 애썼던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며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이 된 희생자들을 추모합니다.


이번 화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지금까지 저의 서툰 첫 소설을 읽어주셨던 독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해요. 기묘하고 슬프지만 이상하게 즐거운 이야기, 그리하여 사람을 살게 하는 이야기를 무사히 완성해 볼게요. 제 머릿속에 모든 이야기가 있거든요. 내년 이맘때엔 책 <까멜리아 싸롱>으로 만나뵙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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