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보고 잘하고 있는데?
당신은 지금 한 임원에게 마케팅 전략을 보고하기 직전이라고 가정해 보자. 상사로부터 중요한 의사결정을 받아야 되는 보고이니만큼 며칠 밤을 지새워 새로운 마케팅 전략의 목적과 세부계획에 대한 수십 페이지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고민했던 내용들을 빠짐없이 써 내려갔더니 왠지 꽉 차 보이고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아래 내용은 가상으로 진행된 임원과의 보고 상황이다.
나 : 안녕하세요, 전무님. 이번 OO 상품 관련 마케팅 전략을 보고드리겠습니다.
전무 : 오, 안 그래도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 궁금했어요. 얘기해 주시죠.
나 : 채널A, B에만 집중했던 기존 전략과 차별화하기 위해 이번에는 획기적으로 채널 C에 전폭 집중하려 합니다.
전무 : 채널 C 방식은 전에 해봤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나 : 아, 그런가요? 그런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전무 : 내가 차장이었을 때, 그러니까 5년 전에 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했을 때 비용 대비 효과가 있을까요? 경험상 생각보다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나 : 그래도 요즘 MZ세대에게는 채널 C의 효과가 가장 좋다고 합니다. 5년 전과는 확실히 다른 결과를 전망합니다.
전무 : MZ세대에게 효과가 좋은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회사의 브랜드에 도움이 되는 건가요? 그리고 5년 전과 다른 결과를 전망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근거에서 말할 수 있는 건가요?
나 :...
전무 : 음, 이건 검토가 좀 더 필요할 것 같네요.
혹시 여러분도 회사에서 이런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완전히 동일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진땀이 날 것만 같은 이 상황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설득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해 보고했는데 주어진 업무는 마무리가 되기보다는 추가로 보고할 게 더 많아진 느낌이 들었다거나, 설상가상으로 의사결정자로부터 꼭 받아내야 했던 결정도 끌어내지 못한 상황이다. 만약 이런 보고가 팀원들과 함께 며칠 밤 영혼을 갈아 넣어 준비한 것이었다면 더욱 안타까운 상황이다.
파는 것이 인간이다.
by 다니엘 핑크
우리는 물건을 팔기도 하지만 내 생각과 시간을 팔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잘’ 팔기 위해 만나는 사람을 설득하는 상황이 필요하다. 즉 잘 판다는 것은 상대방을 잘 설득한다는 것이다. 잘 설득하려면 내가 가진 팩트 fact 주머니 조합으로 상대방의 팩트 주머니 조합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하지만 팩트에도 개인의 경험이나 감에 기초하는 것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경험과 감은 편견(prejudice)과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이라고 하는 불공평하고 일방적인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편견과 인지 편향은 둘 다 제한된 정보를 기반으로 사람이나 그룹에 대해 빠른 판단을 내리는 뇌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서로 관련이 있다. 인지 편향은 우리의 두뇌가 복잡한 정보를 단순화하고 빠른 결정을 내리는 데 사용하는 정신적 지름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름길은 때때로 불공평하고 부정확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무와의 대화를 다시 한번 보며 각 대사에 어떤 편견과 편향이 녹아 있는지 살펴보자.
나 : 안녕하세요, 전무님. 이번 OO 상품 관련 마케팅 전략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전무 : 오, 안 그래도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 궁금했어요. 얘기해 주시죠.
나 : 채널A, B에만 집중했던 기존 전략과 차별화하기 위해 이번에는 획기적으로 채널 C에 전폭 집중하려 합니다.
→ 친혁신 편향(혁신을 지지하는 사람이 혁신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고 반대로 단점은 과소 평가하는 경향)
전무 : 채널 C 방식은 전에 해봤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나 : 아, 그런가요? 그런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전무 : 내가 차장이었을 때, 그러니까 5년 전에 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했을 때 비용 대비 효과가 있을까요? 경험상 생각보다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나 : 그래도 요즘 MZ세대에게는 채널 C의 효과가 가장 좋다고 합니다. 5년 전과는 확실히 다른 결과를 전망합니다.
→ 편승 효과 또는 밴드웨건 효과(어떤 선택이 대중적으로 유행하고 있다는 정보의 선택에 더 욱 힘을 실어주는 효과)
전무 : MZ세대에게 효과가 좋은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회사의 브랜드에 도움이 되는 건가요? 그리고 5년 전과 다른 결과를 전망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근거에서 말할 수 있는 건가요?
→ 확증편향 (가설의 진위를 가리거나 문제를 해결할 때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취하고 상반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무의식적 사고 성향)
나 :...
전무 : 음, 이건 검토가 좀 더 필요할 것 같네요.
두 인물은 다양한 편향으로 감에 의한 보고와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나보다 많은 경험을 가진 의사결정자에게 이처럼 직관이나 감으로 설득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을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만약 서로가 다른 주장을 하고 있을 때 직관이나 감으로 상사를 설득할 수 있는 성공률이 거의 0%에 가깝다. 그리고 본인의 경험과 직관을 신뢰하는 상사와 같은 방식으로 논쟁을 시작하는 순간, 한국 특유의 ‘무례함’ 프레임에 갇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오히려 더 많아진다. 그렇다면 이런 편향을 인식하면서 상사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데이터 드리븐 보고는 데이터가 직접 말하게 한다는 것에서 설득에 유리하다. 일상에서 하는 대화에 편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되, 각각 가진 특정한 편향에 맞춰 메시지를 이끌어가면 설득에 유리하다. 예를 들어 대화의 상대가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먼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제시하여 상대방이 그것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bias)이 있는 사람의 경우 생생하고 기억에 남는 예시를 사용하여 주장을 더욱 설득력있게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사람들의 편견이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하면서 데이터를 활용하면 성공 가능성이 더 높은 방식으로 주장을 제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