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한 자유인 Mar 12. 2024

번아웃입니다

글을 연재하겠다고 오픈해놓고 이제야 처음 씁니다.

사실 그동안 너무 괴로웠어요. 일이 너무 싫고 힘든데 버텨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가

요 근래 그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기분입니다.


웬만해서는 넵 알겠습니다 하고 넘어갈 일들에 한숨부터 나오고 대답하기 전에 괜히 뜸을 들이는 모습을 보니

인내심에 한계가 왔구나. 뒤집어엎어버리고 성질 드러나기 전에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번아웃이란 이런 걸까요. 집에 와서 불도 안 끄고 기절해서 잠들거나 불안함이 뒤척이다 2~3시간만 자고 출근하는 날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가슴이 먹먹하고 울렁거리고 나도 모르게 한숨만 푹푹 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더 이상 머리가 안 돌아가요. 아무리 일이 몰리고 바쁠 때에도 머리만큼은 쌩쌩 돌아가서 일을 척척 처리했었는데, 사실 그걸로 인정받아 여기까지 온 것 같은데, 오늘은 일이 별로 없는 날이었는데도 일을 처리할 수가 없었어요. 미루고 미루고 계속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것 같아요. 평소라면 더 꼼꼼하게 일을 처리했을 텐데 이제는 뭐 될 대로 되라지 라는 생각입니다. 입사 1년 3개월 차. 남은 계약은 7개월. 과연 7개월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다른 어른들은 도대체 어떻게 몇 십 년씩 직장 생활을 하는 건가요.


하루에도 몇 번씩 3개월 후에 퇴사를 한다고 말씀을 드릴지 아니면 계약 끝날 때까지 다닐지 생각이 뒤집힙니다. 월요일에는 괜찮은 것 같다가도 수요일 오후쯤 되면 이건 정말 아니지... 정말로 큰 일 나기 전에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만둔다고 해서 큰 미련이 남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지금의 내가 포기해서 미래의 내가 불이익을 볼까 봐 그 불확실성이 저를 너무 크게 짓누르는 것 같아요. 혹시나 이 업계로 돌아오고 싶어질까 봐 그 자그마한 가능성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기회를 제가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요. 임포스터 증후군에 시달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사실 임포스터 증후군이 아니라 진짜 임포스터일지도 모릅니다. 다들 간절하게 원해도 얻지 못하는 기회를 너무 쉽게 얻었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그 생각이 저를 더 짓누르는 것 같습니다.


사실인 것 같아요. 저에게 과분한 기회인 줄 압니다. 주어진 일은 당연히 열심히 했고 또 잘 해냈지만 이 자리에 오고 싶어 하는 많은 다른 친구들을 보면 내가 여기에 있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만큼 노력할 생각은 없는 걸 보니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싶다가도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더 이상 노력할 힘이 남지 않은 건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글도 연재하지 못했어요. 뭐 적당한 핑곗거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퇴근하면 불안감에 휩싸여 괜히 유튜브로 시간 죽이는 게 다였는걸요. 재미도 없는 영상들을 왜 보고 있는지... 심지어 그냥 노는 건 또 죄책감 느껴져서 괜히 영어로 된 영상들 찾아보고 재미없어서 또 스트레스받고 그런 바보 같은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왜 갑자기 글을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바닥을 친건지 그냥 왠지 오늘은 정말 솔직하게 내 얘기를 전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4년 뒤에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그때쯤이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서 오늘은 꼭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때의 나는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요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게 많아요. 얼마 전에 기질 검사를 했는데 남의 감정은 잘 인지하지만 내 감정은 잘 표출하지 못해서 그 사이에서 오는 괴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남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맞아요. 그리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죠. 완벽주의. 나에 대한 완벽주의 때문에 남에게도 높은 잣대를 들이밀어 남들이 잘못했을 때 용납하지 못한다네요. 타인에 대한 관용성이 낮대요. 근데 생각해 보면 맞는 것 같아요. 항상 친절한 척 잘해주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재단하고 판단하고 있었으니까요. 28년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다정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잠시 미뤄두고 정말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다정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상대방이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게 만드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알잖아요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것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매 순간 나를 증명해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숨 막히는지. 나 자신도 거기에서 벗어나고 남에게도 그런 느낌을 주지 않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번아웃부터 주변 사람들까지 고민거리가 많은 시기네요. 언제나 그랬듯이 이겨내고 더 강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걸 알아요.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힘이 들어요. 정말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계약 마무리하자는 마음 중 누가 이기게 될지 궁금해요. 어떤 계기가 있을까요?


확실한 것은 이건 내가 그렸던 삶의 모습이 아니라는 거예요. 30살의 나도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조금 많이 속상할 것 같아요. 이걸로 답이 나온 걸까요?


일을 하는 것은 좋아요. 나의 능력과 잠재력을 사용하는 것도 너무 좋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간다는 것도 정말 좋습니다. 다만 지금은 휴식이 너무 간절히도 필요한 때 같아요. 그 휴식을 휴가로 얻느냐 퇴사로 얻느냐는 다른 이야기지만요. 결론이 나지 않아요. 오늘 이 글을 쓴다고 결론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적다 보면 생각이 조금은 정리될 줄 알았는데 또 똑같은 생각이 빙글빙글 꼬리를 무네요.


용기가 없나 봅니다. 그 기도문이 생각나는 요즘이에요.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저는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마음과 용기 중 뭐가 필요한 상황일까요. 아무래도 제일 필요한 건 지혜겠네요.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곧 또 똑같은 고민으로 같은 말을 백 번 반복하는 모습으로 다시 찾아올게요. 안녕


이전 01화 안녕, 서른 살의 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