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연재하겠다고 오픈해놓고 이제야 처음 씁니다.
사실 그동안 너무 괴로웠어요. 일이 너무 싫고 힘든데 버텨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가
요 근래 그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기분입니다.
웬만해서는 넵 알겠습니다 하고 넘어갈 일들에 한숨부터 나오고 대답하기 전에 괜히 뜸을 들이는 모습을 보니
인내심에 한계가 왔구나. 뒤집어엎어버리고 성질 드러나기 전에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번아웃이란 이런 걸까요. 집에 와서 불도 안 끄고 기절해서 잠들거나 불안함이 뒤척이다 2~3시간만 자고 출근하는 날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가슴이 먹먹하고 울렁거리고 나도 모르게 한숨만 푹푹 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더 이상 머리가 안 돌아가요. 아무리 일이 몰리고 바쁠 때에도 머리만큼은 쌩쌩 돌아가서 일을 척척 처리했었는데, 사실 그걸로 인정받아 여기까지 온 것 같은데, 오늘은 일이 별로 없는 날이었는데도 일을 처리할 수가 없었어요. 미루고 미루고 계속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 것 같아요. 평소라면 더 꼼꼼하게 일을 처리했을 텐데 이제는 뭐 될 대로 되라지 라는 생각입니다. 입사 1년 3개월 차. 남은 계약은 7개월. 과연 7개월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다른 어른들은 도대체 어떻게 몇 십 년씩 직장 생활을 하는 건가요.
하루에도 몇 번씩 3개월 후에 퇴사를 한다고 말씀을 드릴지 아니면 계약 끝날 때까지 다닐지 생각이 뒤집힙니다. 월요일에는 괜찮은 것 같다가도 수요일 오후쯤 되면 이건 정말 아니지... 정말로 큰 일 나기 전에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만둔다고 해서 큰 미련이 남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지금의 내가 포기해서 미래의 내가 불이익을 볼까 봐 그 불확실성이 저를 너무 크게 짓누르는 것 같아요. 혹시나 이 업계로 돌아오고 싶어질까 봐 그 자그마한 가능성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기회를 제가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요. 임포스터 증후군에 시달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사실 임포스터 증후군이 아니라 진짜 임포스터일지도 모릅니다. 다들 간절하게 원해도 얻지 못하는 기회를 너무 쉽게 얻었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그 생각이 저를 더 짓누르는 것 같습니다.
사실인 것 같아요. 저에게 과분한 기회인 줄 압니다. 주어진 일은 당연히 열심히 했고 또 잘 해냈지만 이 자리에 오고 싶어 하는 많은 다른 친구들을 보면 내가 여기에 있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만큼 노력할 생각은 없는 걸 보니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싶다가도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더 이상 노력할 힘이 남지 않은 건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글도 연재하지 못했어요. 뭐 적당한 핑곗거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퇴근하면 불안감에 휩싸여 괜히 유튜브로 시간 죽이는 게 다였는걸요. 재미도 없는 영상들을 왜 보고 있는지... 심지어 그냥 노는 건 또 죄책감 느껴져서 괜히 영어로 된 영상들 찾아보고 재미없어서 또 스트레스받고 그런 바보 같은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오늘은 왜 갑자기 글을 꼭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바닥을 친건지 그냥 왠지 오늘은 정말 솔직하게 내 얘기를 전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4년 뒤에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그때쯤이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서 오늘은 꼭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때의 나는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요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게 많아요. 얼마 전에 기질 검사를 했는데 남의 감정은 잘 인지하지만 내 감정은 잘 표출하지 못해서 그 사이에서 오는 괴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남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맞아요. 그리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죠. 완벽주의. 나에 대한 완벽주의 때문에 남에게도 높은 잣대를 들이밀어 남들이 잘못했을 때 용납하지 못한다네요. 타인에 대한 관용성이 낮대요. 근데 생각해 보면 맞는 것 같아요. 항상 친절한 척 잘해주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재단하고 판단하고 있었으니까요. 28년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다정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잠시 미뤄두고 정말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다정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상대방이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게 만드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알잖아요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것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매 순간 나를 증명해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숨 막히는지. 나 자신도 거기에서 벗어나고 남에게도 그런 느낌을 주지 않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번아웃부터 주변 사람들까지 고민거리가 많은 시기네요. 언제나 그랬듯이 이겨내고 더 강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걸 알아요.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힘이 들어요. 정말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계약 마무리하자는 마음 중 누가 이기게 될지 궁금해요. 어떤 계기가 있을까요?
확실한 것은 이건 내가 그렸던 삶의 모습이 아니라는 거예요. 30살의 나도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조금 많이 속상할 것 같아요. 이걸로 답이 나온 걸까요?
일을 하는 것은 좋아요. 나의 능력과 잠재력을 사용하는 것도 너무 좋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알아간다는 것도 정말 좋습니다. 다만 지금은 휴식이 너무 간절히도 필요한 때 같아요. 그 휴식을 휴가로 얻느냐 퇴사로 얻느냐는 다른 이야기지만요. 결론이 나지 않아요. 오늘 이 글을 쓴다고 결론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적다 보면 생각이 조금은 정리될 줄 알았는데 또 똑같은 생각이 빙글빙글 꼬리를 무네요.
용기가 없나 봅니다. 그 기도문이 생각나는 요즘이에요.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저는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마음과 용기 중 뭐가 필요한 상황일까요. 아무래도 제일 필요한 건 지혜겠네요.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곧 또 똑같은 고민으로 같은 말을 백 번 반복하는 모습으로 다시 찾아올게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