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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 영혼 Apr 09. 2023

씨감자 해마다 사야 해?

초보농부 생각

예전에는 농사를 지으면 그해 수확한 작물에서 씨앗을 남겨 두었다가 이듬해 다시 밭에 심어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요즘은 해마다 종묘사에서 판매하는 씨앗을 구매해 사용한다. 그해 심은 씨앗은 한 해 이용으로 수명을 다하게 만들어졌다. 그 씨앗에 맞추어 비료와 농약을 사용한다.


 씨앗 비료 농약 등 농작물의 원가는 비싸고 수확한 농산물은 저렴하게 넘기니 농사지어 돈 벌 생각 말라는 소리가 나온다. 씨앗의 주인은 당연히 농부이어야 하거늘 종자 회사가 주인이다. 반복되는 화학비료, 농약, 경운으로 땅은 아프다 소리도 못하고 병들어가고 있다.

농사를 짓겠다고 도시를 떠날 결심을 한 건 아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자립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 부부도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게 되었다. 남은 평생 자연에서 일하며 내 밥상에 올라오는 먹거리는 자연농으로 건강하게 키워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텃밭 한 번 일구어본 적 없는 도시녀가 작년에 처음 작물을 키워봤다. 책 유튜브 농업교육 등을 통해 부지런히 배우고 이웃의 도움도 받았다. 내 밥상에 올라오는 채소류만 하더라도 종류가 얼마나 많던가. 반듯하게 생겨 상품성이 있어 보이는 그 많은 먹거리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 줄도 모르고 그저 편안하게 도시에서 소비했다.


작년에 자연농으로 키워본 작물이 감자 고추 옥수수 파 토마토 참외 오이 가지 콩 고구마 양파 양배추 배추 무 쪽파 갓 상추 부추 등이다. 고구마와 콩은 몽땅 고라니 먹이가 되었다. 고추는 풋고추로 실컷 따먹고 고추 장아찌도 만들었다. 그러고도 우리 가족이 일 년 먹을 고춧가루도 나왔으니 1년 차 초보 농부에겐 대성공이다. 감자 고추 대파 상추는 형제들과 주변 지인들한테 나눔도 했다.


나누어 주고도 마지막까지 남은 건 감자였다. 늦가을에 수확한 감자는 겨울 내내 먹고도 남았다. 이웃 어르신께 이 감자 잘 보관하면 내년 봄 씨감자로 써도 되는 것 아니냐고 여쭈어보니 그래도 된다고 하셨다.


저온 창고가 있는 것도 아니니 도시로 가져와 아파트 베란다와 신발장 앞 두 곳에 보관했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쪼글쪼글해졌다. 그리고 싹이 나오고 싹은 3월이 되니 늘어진 긴 수염 꼬리처럼 길어졌다. 긴 싹을 제거하고 심어 보기로 했다. 작년에 너무 고생해서 올해는 뭐든 아주 조금씩만 심기로 했다. 감자는 수확에 대한 기대보다 씨감자 테스트를 해보기 위해서다. 해마다 씨감자를 사야 하는지 내 땅에서 수확한 감자를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함이다. 회복하고 있는 건강한 땅에서 비와 바람 햇살이 버무려져 자연이 허락하면 수확이 있을 테고 감사히 먹을 수 있으리라.

씨감자 용으로 아파트 주방 베린다와 신발장 앞에 보관한 감자

감자를 심고 산마늘(명이나물)을 옮겨 심었다. 산마늘은 작년에 아랫집 어르신이 나누어 주어 심었는데 영 시원찮았다. 이번에 가보니 기특하게도 그 자리에서 초록으로 방긋 봄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올해 토목 공사를 진행하면 집터가 될 곳이라 옮겨 주었다. 산마늘은 따로 심지 않아도 해마다 나올 것 같다.

옮겨 심기 한 산마늘(명이나물)에 단비가 내린다

무경운 무농약 무비료로 안전한 내 밭에서 나온 쑥을 캤다. 쪼그리고 앉아 캐기도 힘들고 일일이 하나하나 손질해 씻기도 힘들었다. 예전에 친정 엄마가 해주신 쑥 버무리가 생각나서 생전 처음 만들어보았다. 엄마표 추억의 그 맛은 아니다. 그래도 직접 캐고 손질해 만들고 식탁에까지  올라왔으니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다. 


건강한 밭에서 캔 쑥으로 만든 쑥버무리

다음날 비 예보가 있어 커피박을 섞어 밭 고르기 작업까지 마치고 나니 어둠이 내렸다. 짝꿍과 둘이서 그날이 마지막인 것처럼 온종일 미련하리만큼 일을 했다. 몸은 지치고 힘들지만 마음은 뿌듯하다. 맑은 공기 덕분일까 몸살 기운이 있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진다.


밤부터 소리 없이 촉촉하게 내리기 시작한 단비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온종일 고요히 축복처럼 대지를 적셨다. 마을 곳곳 로터리 작업(기계로 밭고르기)으로 알몸을 드러낸 밭에서 불어오는 흙바람도 잠재워 주었다.


농부에게는 비요일이 강제로 주어지는 휴일이다. 어제의 힘든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평화로운 휴식. 윗집 아랫집이 모여 배추 전과 집에서 직접 만든 도토리묵 봄나물에 막걸리 한 잔을 나누며 꿀맛 같은 농부의 휴일을 즐겼다. 그렇다 이 맛에 시골살이 아니겠는가!


어느 사이 도시로 돌아올 시간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일산과 평창을 오가는 길은 이제 단골 드라이브 코스가 되었다. 온 산과 들녘이 노랑 분홍 초록의 싱그러운 빛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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