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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의 영혼 Apr 22. 2023

4월의 드라이브

농막이  있는 시골여행

미세먼지로부터 탈출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가 갈수록 심해진다. 요즘 도시에서는 일주일 내내 창문도 못 열고 사는 일상이 잦아졌다. 전국적으로 안 좋을 때는 이제 청정 지역도 비켜갈 수는 없다. 그래도 도시와 달리 대부분 하루 정도면 벗어난다. 터를 마련한 평창에 농막이 있으니 아무 때고 숙박 시설 걱정 없이 숨 막히는 미세먼지로부터 도망치듯 도시를 떠난다.


미세먼지로 온통 뿌옇게 뒤덮인 도시를 뒤로하고 익숙한 드라이브 코스로 접어든다. 양평 휴게소를 지나도 미세먼지로부터  탈출할 수 없었다. 횡성을 지나고서야 시야가 조금씩 선명해진다. 차창을 활짝 열고 모처럼 맑은 공기를 마신다. 이런 순간엔 도시를 떠날 결심을 한 게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두 집 살림을 사는 기분이다. 매번 갈 때마다 짐은 왜 그리 많은지 4박 5일 여행을 떠날 때보다 훨씬 더 많다. 하긴 단순한 여행이라면 매 끼니 사 먹으면 되지만 식당은 물론 제대로 된 가게 하나 없는 산골이다 보니 뭐든 다 챙겨가야 한다. 게다가 커피박과 EM(유용한 미생물)도 도시에서 준비해 간다.


내년에 집을 짓고 아주 이주를 한다면 그동안 이용했던 도서관과 키피박, EM이 가장 아쉬울 것 같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행정복지센터마다 EM공급통이 설치되어 자유롭게 담아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시골은 면사무소 직원한테 물어보니 EM이 뭐냐고 되묻는다. 혹시 공급하는 곳이 있나 알아보니 차로 40~50분 거리에 있는 농업기술센터까지 가야 얻을 수 있다. 그것도 월 한정된 양으로 공급한다.


뚝딱 비닐하우스 셀프 이전

농막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비닐하우스 이전 준비를 했다. 작년에 농막 바로 아래쪽에 농기구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하려고 이웃집 도움을 받아 문도 없이 대충 형태만 갖춰지었었다. 한 해 유용하게 잘 썼는데 올해 토목공사를 하려면 없애야 한다. 시골은 뭐든 남의 손을 빌리면 고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셀프로 해결하며 배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닐하우스를 해체하고 밭 아래쪽으로 옮겨 다시 세우고 짐 옮겨 정리하는데 이틀이 걸렸다. 그 첫날 오후에 비가 내렸다. 이웃에서 도와주어 다행히 비닐까지는 씌운 상태였다.

후드득 쏟아지는 빗줄기에 비를 맞으면 안 되는 물건부터 하우스 안으로 들여놓았다. 도와준 이웃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해서 다행이라며 감사했다. 다음날 조금 더 단단하게 하우스를 고정하고 내부 정리를 한 후 짐 옮기기까지 마쳤다. 그래도 작년에 한 번 해 봤다고 마무리 작업은 둘이서 거뜬히 해냈다.

이틀 걸려 새로 짓고 이사한 비닐하우스

비 내리는 날 동네산책

비닐하우스 일을 마무리하고 난 다음날에도 또 비가 내린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 앞산은 멋진 운해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낯선 여행지에 선  연신 감탄을 쏟아내게 한다. 비로 인해 일을 멈추고 나니 그제야 촉촉해진 동네 산책도 하고 틀밭에 심은 작물들 살필 여유도 생겼다. 아침 기온은 여전히 추워서인지 상추는 더디 자라고 지난달 씨를 뿌린 적겨자는 소식이 없다 했는데 자세히 살피니 잡초 사이로 빼꼼히 고개 내밀고 있다.

운해로 시시각각 멋진 풍경을 선사해 주는 금당산
추운 지역이라 3월에 심은 상추 모종이 더디 자란다
씨앗으로 직파한 적겨자가 한 달 만에 싹이 올라왔다

비는 오후까지 이어졌다. 책을 읽다가 스르르 졸음이 밀려온다. 잠시 잠이라도 자야겠다 싶은 순간 비는 그치고 햇살 없이 맑아진 날씨! 밭일하기에 이보다 좋을 순 없다며 잠을 밀어내고 밭으로 나간다.


아직 작물을 심지 않은 밭은 온통 쑥대밭이다. 다음에 올 때 뭐라도 심으려면 밭 고르기를 해놓아야 한다. 경운을 하지 않으니 호미와 삽괭이 삽 등의 농기구를 부지런히 움직여 밭을 고른다. 육체적으로는 분명 고된 일이지만 마음은 중독된 듯 즐기고 있다. 밭일하다 보면 하루가 어찌 이리도 빠르게 흐르는지.


토목공사를 위해 분할 측량 하던 날

다음날은 LX한국국토공사에서 분할측량을 하러 오기로 한 날이다. 은근 설렘으로 기다렸다. 적지 않은 측량 수수료를 냈는데 대지, 도로, 밭을 구분하는 빨간 봉 4개를 꼽아주는 게 전부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

 지목 표시를 하는 빨간 봉 달랑 4개가 1,542,200원이라고! 내가 상상한 디테일은 간데없고 참으로 허무하다. 이건 토목 공사를 위한 것일 뿐 집을 지으려면 용도별로 해야 할 측량이 또 남아있다.

LX한국국토공사에서 심어준 빨간봉

대지, 도로, 밭으로 구분한 토목설계 도면 하나 받는데도 300만 원을 지불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딱 맞다 싶을 정도로 시골에 소박한 집 한 채 짓는데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들어간다. 그러다 보니 정작 집 짓기는 내가 그리던 집이 아닌 줄이고 줄여 단순하게 작고 소박한 집이 될 수밖에 없다.


측량을 마치고 장이 서는 날이라 장에 다녀왔다. 대파 양파 치커리 모종과 당근 씨앗을 사 와 심었다. 아침엔 추워도 낮 기온은 28도까지 올라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땡볕에서 고생하며 부지런히 심어 놓길 잘했다. 자고 일어나니 비가 내리고 있다. 이럴 때 내려주는 비는 막 심어놓은 작물에 영양과 수분을 공급해 주고 일손을 도와주는 비라서 고맙기 그지없다. 다음 올 때까지 잘 자라주렴 안녕!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길

그렇게 며칠을 농부로 생활하다가 새벽길을 나서 다시 도시로 돌아온다.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틀어놓고 적당한 드라이브 속도에 맞추어 크루즈 컨트롤을 세팅한다.


터널을 벗어나니 짙은 안개가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깜빡이를 켜고 차량 속도를 줄인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 지나는 구간마다 달라지는 날씨에 지루할 틈이 없다. 농담을 달리하며 몽글몽글한 초록 나무가 숲을 이룬 산들이 수채화 풍경처럼 싱그럽게 펼쳐진다. 운전은 절로 차분해지고 마음은 평화롭고 맑음으로 가득 채워 돌아왔다.

비요일 동네 산책길에서 만난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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